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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자작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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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말 잊었던 말 뼛속까지 바람이 분다. 가로등 새벽까지 퉁퉁 부은 눈 껌벅거리면 춥다는 것은 무디어진 삭신의 알량한 안부. 식혜처럼 묵힌 말 헤프게 보일까 몇 번이고 입 단속했는데, 해 질 녘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달짝지근하게 말해버렸다. 명치 끝이 그렇게 아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나목(裸木) 나목(裸木) 그래요 당신이 왜 그리 고개 돌렸는지 알겠어요. 누군들 더 높은 곳 향해 오르고 싶지 않겠습니까만, 때 되면 스스로 잎 내려 마디마디 오그라드는 깊은 골 울리는 복종의 카타르시스. 누군들 그 잔 들고 싶겠습니까만, 허우적거린 어둠 속 뒤척이다 독배 든 삭정이 순종의 카..
농월정(弄月亭)에서 농월정(弄月亭)에서 암반 고인 물 은은히 달 떠 있고 길손 술잔에도 기운 달이 있구나. 월연암 농월정 카랑카랑 시 읊으며 잔 기울이시던 지족당, 달빛에 백발 날리시며 달과 교감하신 경지(境智) 뵐 수 없어 이리 훌쩍 저리 훌쩍 암반 건너니 금천 가슴 들랑이는 맑은 물가 허연 너럭바위 ..
새벽잠 깨어 새벽잠 깨어 어쩔라고 새벽 잠 깨니 멀리 빨간 모텔 네온사인 흩날리고 24시 국밥집 하얀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머들 거린 눈 깜박이며 새벽길 걷고 싶은데 문득, 때 묻지 않던 날 첫 경험처럼 죄지은 듯 놀라는 것은 그 사람 새벽기도 나가는 시간이다. 헌날 빗소리 들으면 잠도 잘 오더만..
거연정(居然亭)에서 거연정(居然亭)에서 더 갈 곳 없으면 좋겠다. 굴곡진 바위 걸터앉아 검푸른 소(沼) 바늘 없는 낚싯대 드리우고 육십령 오가는 목마른 길손에게 세상 물정 물어 듣고 눈 부라리는 은어 초장 찍어 틉틉한 막걸리 너 한 잔 나 한 잔 걸쭉하게 나누고 싶다. 정말로 오늘은 더 가고 싶지 않다. 거..
눈 내리는 밤 눈 내리는 밤 눈 내리는 밤 사랑하는 일은 죄 아니다. 세상 천지 이 나이에 아직도 가난한 가슴 안아 줄 사람 없는 삶과 인연의 간극. 삭풍 핡키고 달아난 지붕 아래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의 유희, 빈 잔 속 헝클어진 뇌. 언젠가 애타게 불렀던 이름 기름진 등허리 비틀거린 두 줄 흔적 돌담 틈 틈 숨어버린 붉은 동백 그 위 눈 날리고 눈 내리고. 황량한 아라비아 사막 건너는 젖은 낙타 검은 눈 파란 눈 하얀 눈 훨 훨 기억할 수 없는 숨찬 카타르시스의 아련한 기억. 눈 내리는 밤 사랑할 수 없는 자 죄 되고말고.
송정을 떠나며 송정을 떠나며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몰라. 내 아픈 젊은 날 너를 만났던 기억 지울 수 없어 패기 잃은 가슴으로나마 돌아왔는데, 밤새, 끝없이 넘실대는 파도의 핥음에 사위던 불꽃 일어 송일정(松日亭) 암벽에 산화되고 싶었다. 기억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잊지 못한다는 ..
잃어버린 미소 잃어버린 미소 천 년 지나도록 가을 봄 여름 겨울 달 별 해 벗하며 허기진 산 짐승 상처 난 날 짐승 짓밟힌 날 벌레 자비로 굽어 안으시다 천 년 고웁던 미소 잃어버린 당신 오 오 태안 백화산 중턱에서 먼 바다 바라보며 누굴 기다리시나요. - 시작노트 - 충남 서산시와 태안읍에는 백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