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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자작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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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의 독백 어느 봄날의 독백 동안거(冬安居) 끝나면 나목은 묵언을 푼다 싹을 틔우고 꽃 피워 새들을 부르고 그러나 너의 해맑은 아픔을 볼까 봐 눈을 가리고 너의 구르는 듯 상쾌한 음성 들릴까 봐 귀를 막았다 싹 틔우고 꽃 피우는 일이 그냥 되는 일 아닌 것을 알기에 차마 5월 아카시 향기에 취해 그립단 말 할까 봐 입마저 닫는다
목련 목련 꽃 다 피기도 전에 꽃잎 지는 꽃 꽃 피우며 꽃 지는 꽃 보고 꽃 지면서 꽃 피는 꽃 보는 목련, 참 무상(無想)을 아는 해탈(解脫)의 꽃이다 찬란하고 영롱한 날 그 꽃잎 하나 냇물에 띄워 그 사람에게 보내고 싶다
내 안의 다이아몬드 내 안의 다이아몬드 아내는 당신은 돈은 못 버는 사람이라고 언제가 쉽게 던졌던 그 말 옳은 듯싶어 대꾸도 못했지 이젠 건강도 지키지 못해 자정 넘은 어둔 병실 침침한 두 눈으로 링거액 떨어지는 숫자 이유 없이 똑똑 세는데 어머나 깜짝이야 세상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86 케럿 다이아몬드를 이스탄불 토카피 궁전에서 보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가장 광채가 아름답게 빛난 다이아몬드가 내 앞에 있네 요리조리 두 눈을 가장 광채가 좋은 방향에 맞추니 오묘한 광채의 황홀함에 가슴이 벌렁벌렁 자정 지난 시간이지만 돈 못 번다는 아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며 난 이런 사람이야 거둘 먹거리고 싶지만 안될 일 순간순간 발광하는 다이아몬드는 미련 없이 주사관을 통해 방울방울 내 혈관으로 들어와 내 안에 쌓이기..
겨울 겨울 복잡하지 않아 좋다 산처럼 나를 가리지 않아 좋고 들처럼 거림 낌 없이 바람 지나 좋다 추워 오들오들 떨며 소복이 나리는 눈 속에 서서 누군가 기다리는 것이 좋다 나를 감추지 않아 좋다
정서진(正西津) 정서진 마니산 허리 기대 남긴 노을 한 자락 갯벌 칠면초 가닥가닥 엮어 빚은 핏빛 그리움 이름없는 섬 하나 가슴 안고 이제는 잊어도 될 인연 밤마다 기다리는 그윽한 설움 영종대교 오가는 불빛 처럼 밤새 그리움의 비 내리는 정서진 - 시작노트 - 한국문인협회인천지회 주관 2022년 인천도시철도 1호선 시 출품작
우울한 날의 넋두리 우울한 날의 넋두리 그렇지요 내가 욕심이 많은 거지요 오지던 벚꽃 무심히 꽃비로 내린 후 뙤약볕 덩굴장미 천둥 번개 치던 공포의 밤에 벼락 맞아 피 흘리고 아 어머니! 당신 닮은 들국화는 기러기 울며 날던 밤 찬 서리에 오들오들 떱니다. 그러함에도 나는 아직 남아 눈으로, 귀로, 입으로 그리고 보이지 않게 감춘 마음마저 더 정결치 못해 혼탁하고 아, 흩날려버린 눈송이처럼 먼저 간 내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험한 세상 험한 세상 꽃 피는 4월 처절히 산화하는 자목련은 향기로워라 주인이 버린 10월 언덕배기 서리 맞은 호박은 아름다워라 사람을 등쳐먹으면 험한 세상이라고 하는데 만물의 영장이 모기에게 피 빨리는 세상은 무슨 세상인가 사악함을 감춘 붉은 미소 값비싼 향수의 역겨움 경박스럽게 흔드는 두 팔 짜 맞추고 덕지덕지 발라 반짝거림으로 속이는 순간보다 가난한 내 피 빨아먹겠다고 경보음 울리는 저 몰골의 모기에게 피 빨리는 세상이 더 마음 편하지 않은가 꽃 피는 4월 처절히 산화하는 자목련은 고와라 주인이 버린 10월 언덕배기 서리 맞은 호박은 온유하여라
찔레꽃 찔레꽃 햇살 고운 아침 덩굴진 풀숲 보드라운 줄기 따 허기 달래다 스르륵 또아리 풀던 화사(花蛇)에 놀랐던 어린날 뒤꿈치 그땐 꽃 피어도 향기 몰랐고 흘린 한 방울 붉은 피 아스름한데 이젠 찔레꽃 향기 바람에 날리니 눈물이 난다 생전 고향 떠나 본 적 없이 사시다 남도 땅끝 어느 요양원에 누워 창밖 먼 하늘만 바라보며 천 리 아들 기다리고 기다리다 속으로 속으로 얼마나 울음 삼켰을 어머니 닮은 하이얀 달빛이 피운 꽃 아이야 꺾지 말고 두고 보아라 아이야 울지 말고 가슴에 담아라 - 시작 노트 - 2020년 2월 22일 우리나라에 코로나 19 발병 초기 하나님 나라로 가신 어머님을 기리며 하얀 찔레꽃 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