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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자작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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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秋想) 추상(秋想) 늦가을 내리는 비는 가을을 데려가겠다는 하늘 전령입니다 저무는 가을 속절없이 젖어 붉은 앞가슴 누구는 바람에 휩쓸려 떠나고 누구는 데롱데롱 매달려 수정 눈물 내립니다 서성이는 여인의 외로움이 젖고 날 저문 나그네 걸음도 무겁습니다 평생 처절한 사바의 전쟁터에서 살아 남아 본향 가는 길 아직도 못다한 사랑 그리워 파르르 떠는 가난한 중년 가슴의 마지막 카타르시스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행여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 젖어 엎딘 중년의 흐느끼는 기도 소리 들은 적 있습니까
단풍 단풍 오늘처럼 하염없이 단풍 드는 날이면 초록 점퍼 빨강 모자 쓰고 대나무 빗자루로 내 님 오실 길 쓸고 난 후 지난 봄 보내 주신 매화차 한잔 끓여 마시며 내 님 오시는가 기다리는 마음
상상(想像) 상상(想像) 모든 생명은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 순례자이지 태초 하나님이 흙으로 그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기운을 불어넣으니 사람이라 생명의 본향은 하늘이네 산도 나무도 풀도 공중 나는 새도 수천만 년 하늘 닿으려 꼰지발 딛는 저 산은 아직도 닿지 못하고 깃털 잃은 독수리도 하늘 거했다는 말 들은 적 없어 하물며 한 백 년도 치성드리지 못하면서도 하늘 닿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고 말고 그런데 일흔 넘은 가을 어느 밤 문득 하늘 닿는 길을 보았네
호박꽃과 어머님 호박꽃과 어머님 이젠 바람 따라 옛이야기만 유영하는 고향집 돌담길 지팡이 의지하신 어머님 마실 댕겨 오면 행여 넘어지실세라 어머님 그림자 뒤따라와 텅 빈 마루 끄응 앉으시며 "아이고 오살할 놈의 세상 귀신은 왜 데려가지 않고 이 고생시킬까" 무딘 투정 다 듣고야 돌아섰을 심성 엄동설한 봄꽃 지고 삼복더위 지나도 어머님 뵈지 않으니 서울 큰아들 네 가셨을까 부산 막내딸집 가셨을까 행여 밤중에 오실까 호롱불 켜 놓고 밤새 노심초사 기다리는 효심 이젠 바람 따라 옛이야기만 유영하는 고향집 돌담 그 위 노란 호박꽃은 다시 피었는데 경자년 정월 스무여드렛날 작고하신 어머니 어머니
열대야 열대야 어둠 너머 불 켜진 창 이 밤 누가 사랑을 하기에 숨 막힐까 철책선 어둔밤 나 어린 병사처럼 숨죽여 귀 세우니 에어컨 실외기 한숨소리 짧은 밤 꿈이야 오지 않아도 좋은데 봉선화 물들인 고운 손가락 나 너 간극 속에 실 없는 웃음이라도 웃을 수 있어 좋다
6월 숲 6월 숲 하늘 닮은 6월 숲 초록 물결 차고 넘쳐 근심 걱정 잊는데 세상 닮은 숲 속 우로 갸우뚱 좌로 갸우뚱 시궁창 썩는 냄새 진동하네 ---- ---- 골 골마다 밤꽃 향기 날리고 철없는 부엉이 울음에 문득 눈 내리던 밤 적막이 그립네
비 내리는 새벽 비 내리는 새벽 토닥토닥 토토닥 비 내리는 새벽 임 오시는 발자국 소리 지난밤 마실 가신 임 우산 마중하려는데 어디선가 "비의 탱고" 손풍금 소리 들리네 애써 웃어보려 지만 눈 흐려지고 오고 가는 인연 참, 어디로 갈까 토닥토닥 토토닥 어디로 갈까
찔레꽃 찔레꽃 오뉴월 뙤약볕 장끼 울음 서러운데 한무리 흰 무명 저고리 아낙들 바리바리 봇짐 지고 어딜 저리 가시는가 산 넘고 물 건너 보리피리 삐리리 오라는 곳 없는 북간도 유랑의 길 가시다 배고프면 맹아지 새순 꺾어 아근작 아근작 쉬어 가면 좋겠는데 - 시작노트 - 맹아지 - 뿌리에서 나와 싹이 트는 가지 - 찔레꽃 새순 아근작 - "아작"의 전라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