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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자작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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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꿈 몹쓸 꿈 장날 돌아오듯 오가는 것이 인연이라지만 동지섣달 긴긴 밤 행여 감기 들라 등 따시게 군불 지펴 입술보다 더 이글거린 숯불에 고구마 구워 네 좋고 나 좋다며 시커먼 주둥이 오지게 빨았는데 밤새 누가 왔다 갔는지 얼음 꽁꽁 언 아침 한 그림자 훨훨 오금재 넘는다 굽이 굽이 얼음 바람 드세니 쭉지 부러지지 않게 조심히 가거라 나이 들면 쉬 잊는다는데 몹쓸 꿈은 잊혀지지 않아 고독하고 목마르다
고놈 조동아리 고놈 조동아리 고놈 내 딸 뱃속에서 하늘 축복받으며 응애응애 태어나 동네 산후조리원에서 보름간 몸 추스를 때 궁금하고 보고 싶어 날마다 찾아갔더니 간호사 눈치 보여 가지 못할 때 참 힘들었지 퇴원 후 우리 집에서 보름간 지날 때 할 일 없는 백수라 고놈 돌보며 앵두 같이 어여쁜 ..
벌교 장날 벌교 장날 우리 더 나이 들기 전 동백꽃 피는 남도로 가세 무심히 눈 내린 뻘밭 꼬막 배 투덜대는 갯골 철다리 밑 누가 알아 준당가 힘겨운 삶 우리 나이 더 들기 전 정스런 남도로 가세 물때 따라 육자배기 구성진 갯골 꼬막배 바쁘게 들락거리는 벌교 장날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짭짤한 핏물 탱글탱글한 살점 안주 하여 횡게 다리 내려앉게 궁뎅이 흔들고 제석산 무너지게 노래 부르며 찌그러진 가슴 털어불고 한바탕 웃어 보세 없을수록 생각 많은 삭풍같은 삶 잊을 건 잊어불고 묻을 건 묻어야제 덧없이 주름 늘고 눈만 침침 해진디 누가 알아 준당가 얼어붙은 삶 세상 천지 오지게 추운 날 몰라서 그렇지 막걸리 안주로 꼬막보다 더 좋은 것 있당가
12월의 사람 12월의 사람 씻김굿 무녀 같은 삭풍 일고 새아씨 버선발같이 눈 날리던 동짓달 초저녁 들 멀 변전소 아스라한 불빛 더듬거려 징검다리 건너면 산 동네 대나무 숲 부엉이 울음 따라 긴 돌담 모퉁이에서 삼태성 가리키다 호호 불던 조막만 한 손 다시 삭풍 불고 멍애 같이 굽은 산허리 눈 내리니 순수를 잃어버린 가난한 가슴 부질없는 시름에 콧등 아리네
시흥 갯골 시흥 갯골 행여 갯골 놀랄까 숨 죽인 걸음 없던 바람 한 움큼 마른 갈대 숲 내달린다 갯가 휴식 취하던 귀 밝은 철새 검은 갯골 두고 미련없이 저문 서녘으로 날아가 버렸다 해 뜨고 지는 생성과 소멸 굳이 의미 부여하여 울고 웃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먼 빛 잊혀진 입술 닮은 빨간 칠면초..
첫눈 내린 날 첫눈 내린 날 맘으로야 늘 기다리고 있었지만 언제 올 줄은 몰랐다 다만 얼굴 잠시 보이고 돌아갈 거라면 차라리 아랫목 뜨뜻할 때 오시면 좋을 터 초저녁 잠들면 어둑새벽 눈 떠지는 숙명 "무신 놈의 새벽잠은 구신이 삶아 먹었능가" 옛 할머니 구시렁대던 말씀을 이제사 안다 들락 날락 쳐다보는 가정동 철마산 철마산 뚜렷하면 날 좋고 흐리면 날 찌뿌등하던가 미세먼지 많던데 철마산 오늘 뵈지 않는다 다시 부엌 들어가려다가 두 눈 비벼 다시 보니 무엔가 내린다 창문 열고 고개 내미니 펑펑 눈송이 오지게 기다리던 첫눈이다 먼 곳 사람 오신 듯 가슴 벌렁거리고 숨 차 가는 눈 사진 담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을 시집간 큰딸에게 날마다 안부 묻는 먼 곳 사람에게 모처럼 내가 먼저 안부 묻고 사진 보낸다 그제사 찢어지게 하..
11월 11월 저 끝없는 창공 어느 곳에서 와 빛 사위어 가는 찰나 사람은 누구나 한번 이유 없이 앓는 아픔이 있다 인적 없는 늦가을 깊은 골 한 바지기 쏟은 빛의 욕망 차마 부끄러워 지울 양 천 가지 빨강도 만 가지 노랑도 약속도 맹세도 본래는 없었다 무엇이 행복인가 저 한 장 매달려 흔들리는 11월 조차 사윌 유희이며 날리어 묻히는 무상(無常)의 상처일 뿐
당신 환갑 맞이하여 당신 환갑 맞이하여 길 가다 문득 당신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입니다 우리 라일락 향기처럼 진하지 않아도 칸나처럼 붉진 못했어도 솔 향 같고 쑥 향 같은 가난한 가슴으로 오늘에 섰습니다 맑은 영혼 가진 당신 이젠 눈가 골골 세월 흔적 짙은데 여태 허물 많은 날 탓하지 않고 붙들어 주어 고맙습니다 장미처럼 백합처럼 화려하거나 고고하지 않아도 어울려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안개꽃이 우리라면 행복입니다 같은 곳을 향해 동무한 지 어언 37년 나로 인해 눈물 흘린 적도 많았지만 서로 마음 아프지 않고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는 우리로 다듬어 가렵니다 오늘 자랑스러운 우리 두 딸과 아들 더불어 당신 환갑 축하할 수 있음은 진실로 값진 행복입니다 사랑하고 사랑하여 함께 본향까지 가게 건강 잘 챙기시어 아픔없이 남은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