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자작詩 (771)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가 꽃이라면 내가 꽃이라면 차츰 잃어간다는 것은 나이 듦이다 나이 듦은 욕망에서 멀어지는 초연(超然)이며 강물 같은 자유이며 농밀한 삶의 절절함이다 겨우내 동토의 시련을 견디어 낸 생명은 햇살에 찬란하게 꽃 피운다 꽃이 기다림과 외로움의 상처라면 징한 그리움의 절규이며 고개 돌린 마지막 용서의 카타르시스 둥근 밤 봉창에 휘청거리는 대나무의 향락이다 고목에 핀 꽃 향기 밀려오는 오밤중 차마 눈 뜰 수 없어 정좌한 등 굽은 노승처럼 골 깊은 삶 부질없다는 것 알고 스스로 사위는 황혼의 애틋한 석양처럼 사랑할 수 있을 때 절절히 사랑하다 감사히 지리라 조령관에 서서 조령관에 서서 흰 머리칼 날리며 옛길 걸으니 삼월 초 새재 넘는 바람 아직 차건만 상처 난 솔향 그윽하여 낯설지 아니하네 지나온 삶 회한 많아 어지러운 맘 달래려 얼음 속 백수령천(百壽靈泉) 한 사발 마셨더니 사지 얼어 움직이지 않네 본디 이곳 경계 없었는데 이곳 저곳 어이해 지명.. 개꿈 꾸던 날 개꿈 꾸던 날 지난 밤 비 내리더니 일부러 기억마저 지워버렸던 사람 뜬금없이 등 뒤에 서 있다 숨 고르며 고개 돌리니 웃는 모습 빙그레 옛 그대로 다 그날 방에 박혀 꿈쩍하지 않는 나에게 누군가 그 사람 소식 물어 죽기 전엔 다시 못 볼 거라 했는데 느닷없이 적색분자 지명수배 내렸다며 외출 삼가라는 개꿈 꾸던 날 나 있는 곳 어찌 알고 찾아와 내 허리 감싼 두 손 차가와 애닯다 먼 타국 이민 가 죽기 전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 사라지기 전 비 그친 아침 답신 없을 줄 알면서도 농밀하게 살고 있다는 문자 보냈다 개꿈인 줄 알면서 미련 갖고 산 동백꽃 산 동백꽃 지금 산비탈 어딘가 어슴푸레 피어있을 노란 꽃 산새 우는 낮엔 환히 웃다가 달 뜨면 스산한 외로움에 혼자 우는 꽃 유치원 봄 방학 끝나 친구 만나면 환한 웃음 방긋방긋 날리며 붉은 입술 조잘대다 살여울 지는 조약돌처럼 관심 주지 않으면 속상해 혼자 우는 내 손주 처럼 산비탈 어딘가 어슴푸레 피어 철없이 울고 있을 노란 꽃 -시작 노트 - 철없이 - 남들은 아직 싹도 틔우지 못했는데, 혼자 꽃 피우고는 찾아오는 이 없다는 선몽대에서 선몽대에서 안개 자욱한 날이면 내성천 회룡대 올라 천지개벽하는 용트림을 보고 빛 좋은 날이면 선몽대 솔바람에 책장 넘기다 솔향에 묵상하리라 만나 이별하는 것을 서러워 마라 본디 만남과 이별은 하나이니 달빛 좋은 밤이면 내성천 십 리 백사장 걸으며 마음 비우고 강물에 몸 여미는 달님 솔밭에 불러 송엽주 주고받다 먼동 트면 덩실덩실 한바탕 춤추고 싶어라 봄 오는 소리 봄 오는 소리 아롱 아롱 피어 나는 아지랑이처럼 골 골 눈 녹아 내리는 물소리처럼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옷 벗고 옹기종기 병아리처럼 재잘대는 놀이터 한낮 친구 몰래 봄님이 뽀뽀 했나 연분홍 복숭아 닮아 이쁜얼굴 송골송골 땀 맺힌 내 손주 희성이 콧등 - 시작 노트 - 외손주 이름이 희성이다. 이제 여섯 살이라고 하는데, 9월이면 만 다섯 살이 된다. 3월6일 오늘은 12절기 중 경칩으로 동면하던 개구리 알을 까고 생물들이 지상으로 나오는 이젠 완연한 봄날이다. 나에겐 유일한 손주인 희성이가 두꺼운 옷 벗어 버리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재잘대는 소리에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안다. 섣달 그믐날 섣달 그믐날 누구는 고향 가고 누구는 친구라도 만나러 마실 가는데 섣달 그믐 되어도 가슴 열고 찾아갈 곳 없네 꾸부정 머리 허옇도록 어떻게 살아 금의환향 꿈 처참히 무너진 바람 드샌 강화도 염하 길에서 올 리 없는 누굴 기다리네 누굴 만나 마음 얻는다는 일 지금 어디서 누구의 할머니 되어있을 첫사랑도 내 고향 가까이 누구의 아내가 되었다며 어쩌다 그곳을 지날 때 날 생각하겠다던 그 사람도 가난한 가슴에 머물지 못함은 그 사람 일생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서산 해 지고 섣달 그믐 칠흑 같은 어둠 오니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라는 법구경 말씀 읊조리네 회한(悔恨) 회한(悔恨) 왜 이제야 생각나는지 몰라 숨기에는 너무 늦은 낯 뜨거운 기억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눈물 짜서 내려 보내면 어디 숨었다 나타나는지 또 다른 사슬 깊은 우물 두레박 줄 마디처럼 기다리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삶이라 나이 들면 가난하지만 따스한 가슴으로 살렸더니 알게 모르게 남의 가슴에 못 많이 박은 기억들 좋은 기억 흔적 없어 거미줄 같은 뇌 두리번거려도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 자업자득(自業自得) 가슴치고 용서 빌면 지워질까 바라건데 아직 남아있는 기억은 아무도 보지 않은 밤 살며시 살며시 하늘 올라 극한에도 반짝이는 북극성 같은 별이 되면 좋겠어 살면서 허덕일 때 우리가 울 듯 우리에게 위로 주지 못한 하늘 별들도 눈물 흘릴 때 그 눈물 방울방울 눈송이 되어 너울 너울.. 이전 1 ··· 6 7 8 9 10 11 12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