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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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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먼저 알아 - 한용운 꽃이 먼저 알아 한용운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서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라서 아득한 옛터에 이릅니다 지팡이는 푸르고 푸른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따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여 근심을 잊을까 하고 앉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이슬..
의심하지 마셔요 - 한용운 의심하지 마셔요. 한용운 당신과 떨어져 있는 나에게 조금도 의심을 두지 마셔요. 의심을 둔대야 나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으나 부질없이 당신에게 고통의 숫자만 더할 뿐입니다. 나는 당신의 첫사랑의 팔에 안길 때에 온갖 거짓의 옷을 다 벗고 세상에 나온 그대로의 발가벗은 몸을 당신..
고독 - 김소월 고독 김소월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 시만 늘 저무누나 바젭의 모래밭에 돋는 봄풀은 매일 붙는 벌 불에 타도 나타나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은요 봄 와도 봄 온 줄모른다더라 잊음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
귀로(歸 路) - 이정하 귀로(歸 路) 이정하 돌아오는 길은 늘 혼자였다 가는 겨울해가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내 마음도 무너져왔고, 소주 한 병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시외버스를 타는 동안에 차창 밖엔 소리없이 눈이 내렸다 그대를 향한 마음을 잠시 접어 둔다는 것 그것은 정말 소주병을 주머니에 넣듯 어딘..
그리움 - 이용악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 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저녁눈 - 박용래 저녁눈 박용래(1925~80)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간명하게 제시된 단 네 문장. 그것도 얼핏 보면 ..
늦은 꽃 - 김종태 늦은 꽃 김종태(1971~ ) 남몰래 조금은 늦은 것들이 있다 늦게 온 것들은 고요하고 스산하다 철쭉도 다 간 시절에 자줏빛 등불 밝힌 자목련이 지키는 이슬 내린 화단에 앉아 내 생애 너무 일찍 사라진 인연과 때로 너무 늦게 찾아온 인연을 생각한다 꽃의 소식에 밖을 향한 눈을 감는다 사랑..
명중 - 이용현 명중 이용헌(1959~ ) 빗방울이 툭, 정수리에 떨어진다 가던 길 멈추고 하늘 쳐다본다 누구인가 저 까마득한 공중에서 단 한 방울로 나를 명중시킨 이는 하기야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단 한 번의 눈빛으로 나의 심장을 관통해버린 그대도 있다 존재는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치고 축적된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