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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그리움 - 이용악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 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백무선은 두만강 무산 근처의 목재를 동해안 백암 쪽까지 실어 나르던 삼림철도였다.

험한 벼랑을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기차 검은 지붕에 쏟아지는 함박눈,

그리고 관모봉을 필두로 연달은 산과 산들! 이 장중함이 분단 이전엔 한반도 겨울 풍경의 일부였다.

그 두만강변 처가에 두고 온 식구들을 그리워하며,

해방 무렵 서울 어느 하숙방에서 30대의 함경도 사내가 곱은 손을 불어 가며 시를 적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의 간절함이 사무쳐와 목이 메일 듯하다. 겨울은 꽃피고 열매 맺는 철이 아니라, 깊이 묻어두는 계절이다.

씨앗들의 겨울잠이 그렇듯, 죽음 같은 잠과 자기 지양을 거치고야 새 봄도 좋은 꽃도 있게 되는 섭리라고 한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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