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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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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오세영 6월 / 오세영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
봄편지- 이해인 봄 편지 이해인 수녀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
기차를 타요 - 이해인 기차를 타요 이해인 우리 함께 기차를 타요 도시락 대신 사랑 하나 싸들고 나란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서 길어지는 또 하나의 기차가 되어 먼 길을 가요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 공주 금강의 겨울 새벽 -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
눈 내리는 밤 - 유병운 눈 내리는 밤 눈 내리는 밤 사랑하는 일은 죄 아니다 세상 천지 이 나이에 아직도 가난한 가슴 안아 줄 사람 없는 삶과 인연의 간극 삭풍 핡키고 달아난 지붕 아래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의 유희 빈 잔 속 헝클어진 뇌 언젠가 애타게 불렀던 이름 비틀거린 두 줄 흔적 돌담 틈 틈 숨어버린 ..
12월 - 오세영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
11월 - 오세영 11월 오세영 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게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