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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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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고정희(高靜熙) ​ 길을 가다가 불현 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위에 쓰러져 따스한 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것이다
새 아침에 - 조지훈 새 아침에 조지훈 ​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를 잃을지라도 성진(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 아침이 열려오누나 ​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잘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 지었던가 ​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恨은 태초 이래로 있었나 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의 결의를 위하여 새 아침은 오는가 ​ 낡은 것과 새것을 의와 불의를 삶과 죽음을 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송년 엽서 - 이해인 송년 엽서 /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들길에 서서 - 신석정 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거니…….
강(江)- 신근 강江 신근 여기 서면 태고의 숨결이 강심에 흐려 어머니 당신의 젖줄인 양 정겹습니다 ​ 푸른 설화가 물 무늬로 천년을 누벼 오는데 기슭마다 아롱지는 옛님의 가락 달빛 안고 하얀 눈물로 가슴 벅차 옵니다 ​ 목숨이야 어디 놓인 들 끊이랴마는 긴 세월 부여안고 넋으로 밝혀온 말간 강심 어머니 당신의 주름인 양 거룩하외다 ​ 길어 올리면 신화도 고여 올 것 같은 잔물결마다 비늘 지는 옛 님의 고운 가락 구슬로 고여옵니다
네 눈망울에서는 - 신석정 네 눈망울에서는 신석정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오월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롱초롱한 별들의 이야기가 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종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7월 - 오세영 7월 오세영 바다는 무녀(巫女) 휘말리는 치마폭 바다는 광녀(狂女) 산발(散髮)한 머리칼 바다는 처녀(處女) 푸르른 이마 바다는 희녀(戱女) 꿈꾸는 눈 7월이 오면 바다로 가고 싶어라 바다에 가서 미친 여인의 설레는 가슴에 안기고 싶어라 바다는 짐승 눈에 비친 푸른 그림자
산수국 - 허형만 산수국 허형만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 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자주도 아닌 한 달에 한 번 명시를 블로그에 소개하는데,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지난 1월 이후 거의 올리지 못했다. 삶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슬픔이며, 아픔이다. 여행길에서도 부지런히 돌아다녔는데, 돌아와 정작 사진 정리할 때는 그 자리에 서서 하늘 한번 바라보았으면, 가슴 열고 심호흡 한번 했으면 다르게 보였을 것을 하며 후회를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블로그 친구 집에게 마실 갔더니 허형만 시인의 산수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