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詩 감상 (320) 썸네일형 리스트형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 우체국에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 는지도 모른다 3월 - 오세영 3월 오세영 흐르는 계곡 물에 귀 기울이면 3월은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 숲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 띄우는 대지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술보다 독한 눈물 - 박인환 술보다 독한 눈물 박인환 눈물처럼 뚝뚝 낙엽지는 밤이면 당신의 그림자를 밟고 넘어진 외로운 내 마음을 잡아 보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렇게 이별을 견뎠습니다 맺지 못할 이 이별 또한 운명이라며 다시는 울지 말자 다짐 했지만 맨 정신으론 잊지 못해 술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버린 당신이 뭘 알아 밤마다 내가 마시는 건 술이 아니라 술보다 더 독한 눈물이 이었다는 것과 결국 내가 취해 쓰러진 건 죽음보다 더 깊은 그리움 이었다는 것을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고정희(高靜熙) 길을 가다가 불현 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위에 쓰러져 따스한 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것이다 새 아침에 - 조지훈 새 아침에 조지훈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를 잃을지라도 성진(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 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잘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 지었던가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恨은 태초 이래로 있었나 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의 결의를 위하여 새 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의와 불의를 삶과 죽음을 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송년 엽서 - 이해인 송년 엽서 /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들길에 서서 - 신석정 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거니……. 강(江)- 신근 강江 신근 여기 서면 태고의 숨결이 강심에 흐려 어머니 당신의 젖줄인 양 정겹습니다 푸른 설화가 물 무늬로 천년을 누벼 오는데 기슭마다 아롱지는 옛님의 가락 달빛 안고 하얀 눈물로 가슴 벅차 옵니다 목숨이야 어디 놓인 들 끊이랴마는 긴 세월 부여안고 넋으로 밝혀온 말간 강심 어머니 당신의 주름인 양 거룩하외다 길어 올리면 신화도 고여 올 것 같은 잔물결마다 비늘 지는 옛 님의 고운 가락 구슬로 고여옵니다 이전 1 2 3 4 5 6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