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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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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류(支流)에 서서 - 신석정 어느 지류(支流)에 서서 신석정 강물이 아래로 강물이 아래로 한 줄기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검은 밤이 흐른다 은하수가 흐른다 낡은 밤에 숨 막히는 나도 흐르고 은하수에 빠진 푸른 별이 흐른다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못 견디게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빛나는 태양이 다다를 무렵 이 강물 어느 지류에 조각처럼 서서 나는 다시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리......
사랑한다는 것 - 안도현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湖水)에 힌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서요 나와 가치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山) 비탈 넌즈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힌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서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羊)을 몰고 돌아옵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五月) 하늘에 비..
신록 - 서정주 신록 서정주 어이 할 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 가졌어라!
오월의 노래 오월의 노래 산허리 감아 도는 안개숲 너머 어딘가 살고 있을 사람아! 햇빛 향기롭게 내리는 푸른 오월 들판으로 가 눈물 나게 싱그러운 이름 모를 들꽃 보며 한 쌍 나비 동무하여 그 들길 우리 걷자 사람아! 하얀 눈꽃 넘실대는 푸른 오월 숲으로 가 선연(嬋姸)의 그대 손잡고 돌연 대지 꺼지고 하늘 깜깜해지는 키스도 하자 햇살 머리 위에 비추고 영롱한 눈빛 향그런 내음 가난한 가슴 부풀어 감추지 못한 밀어 사람아! 오월 초록 풀밭에 누워 조약돌 하늘 바다에 던져 동그라미 아련히 여울지는 마지막 사랑 불사르고 하늘로 오르자 사람아, 사람아, 온유와 자비 가득한 오월이 다 가도록 부르고 싶은 사람아 아직도 여울지는 아카시 향기처럼 네가 그리워 나는 운다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 우체국에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 는지도 모른다
3월 - 오세영 3월 오세영 흐르는 계곡 물에 귀 기울이면 3월은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 숲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 띄우는 대지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술보다 독한 눈물 - 박인환 술보다 독한 눈물 박인환 눈물처럼 뚝뚝 낙엽지는 밤이면 당신의 그림자를 밟고 넘어진 외로운 내 마음을 잡아 보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렇게 이별을 견뎠습니다 맺지 못할 이 이별 또한 운명이라며 다시는 울지 말자 다짐 했지만 맨 정신으론 잊지 못해 술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버린 당신이 뭘 알아 밤마다 내가 마시는 건 술이 아니라 술보다 더 독한 눈물이 이었다는 것과 결국 내가 취해 쓰러진 건 죽음보다 더 깊은 그리움 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