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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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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의 애석한 부자관계 -26 영조와 사도세자의 애석한 부자관계 조선시대 왕실에서 벌어졌던 최대의 비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무엇일까? 아마도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직접 뒤주에 들어갈 것을 명하고 결국 절명시킨 사..
영조의 청계천 준천 사업 -25 영조의 청계천 준천 사업 "100년 홍수 막겠다" 위민(爲民) 철학 담겨 2005년 많은 논란 끝에 복원된 청계천. 청계천은 조선시대 집권자의 통치력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 태종은 1406년 처음으로 청계천 골격을 만들었으며 1760년 영조는 본격적인 청계천 준천 사업을 펼쳤다. 영조는 왜 이 사업..
철저히 백성을 위했던 군주 '영조' -24 철저히 백성을 위했던 군주 '영조' 양반과 신흥지주에 세금 더 부담시켜 83세에 승하했던 영조(1694~1776년, 재위 1724~1776년)는 조선시대에 가장 오래 살았던 왕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왕의 평균수명이 47세 정도임을 감안하면 83세까지 살았던 영조의 장수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왕으로 ..
영조의 즉위와 탕평책 -23 영조의 즉위와 탕평책 어찌해 같은당파 사람을 다 죽인단 말인가 조선 21대 왕 영조(1694~1776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정조와 더불어 조선 후기 정치, 문화의 중흥을 이룩한 군주라는 점이다. 영조는 1694년 아버지 숙종과 무수리(궁중에서 청소 일을 맡는 여자종) 출신 후궁인 어..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안타까운 운명 -22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안타까운 운명 세자만 30년에 어렵사리 왕위 올랐지만 조선의 20대왕 경종(景宗·1688~1724년, 재위 1720~1724년) 하면 별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그러나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라고 하면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진다. 사약을 받은 장희빈의 아들이 어떻게 왕이 됐을..
국방 강화에 애쓴 숙종 -21 국방 강화에 애쓴 숙종 영·정조 르네상스 기틀 마련한 철혈군주 숙종은 조선 후기 당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를 살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46년간 장기 집권하는 동안 신권에 맞서 싸우면서 왕권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의 의리론과 명분론..
숙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 -20 숙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 노산군 단종으로 올리고 사육신 복권 숙종(1661~1720년) 46년간 재위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중점을 둔 왕이었다. 숙종 시대는 조선사회 지배 이념으로 자리를 잡은 성리학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는 시기였다. 정치와 사회의 모든 기준점은 성리학 의리..
왕권 강화의 대명사 '숙종' -19 왕권 강화의 대명사 '숙종' 3번의 환국(정치국면 전환) 일으켜 신권 철저히 눌러 조선의 왕 중 정통성 측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왕은 누구일까? 먼저 적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왕을 들 수 있다. 조선 왕 27명 중 적장자로 왕위를 이어받은 왕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