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143) 썸네일형 리스트형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부상 -10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부상 도망간 아버지(선조)와 왜군에 항전한 아들 선조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의 파천(播遷), 즉 피난 행위다. 전시에 왕이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나섰다는 것은 엄청난 치욕이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 후대 평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조 -9 후대 평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조 학문 꽃피웠지만 당쟁의 발단 제공 목릉성세(穆陵盛世) 선조 시대 학문과 문화의 전성기를 뜻하는 말이다. 조선 14대 왕 선조(1552~1608년)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목릉성세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학문과 문화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라는 평도 .. 어머니 그늘에 가려 존재감 없었던 명종 -8 어머니 그늘에 가려 존재감 없었던 명종 아들도, 남편도 외롭게 만든 문정왕후 조선의 13대왕 명종(1534~1567년) 하면 그다지 떠오르는 이미지가 별로 없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훨씬 강한 인상으로 와 닿는다. 12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후 명종은 문정왕후의 수.. 중종이 가장 아꼈던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 연유 -7 중종이 가장 아꼈던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 연유 정치적 길이 달랐던 위험한 동반자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개혁지향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조광조(1482~1519년)가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왕도정치와 도덕정치의 실천을 추진했던 젊은 개혁자 조광조는 결국 정.. '흥청망청'이란 말이 왜 생겼나 했더니 -6 '흥청망청'이란 말이 왜 생겼나 했더니 -6 연산군 독재정치를 조롱하고 비판 우리 역사상 최악의 폭군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사람을 꼽는다. 바로 연산군(燕山君, 1476~1506년)이다. 두 차례의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사림파가 화를 입음)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선의 4대 사화 .. 폐비 윤씨와 어우동의 공통점 -5 폐비 윤씨와 어우동의 공통점 -5 성리학 이념 확립 본보기로 여성 처형 조선시대 폭군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연산군(1475~1506년). 연산군이 폭군으로 바뀐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평가받는 것이 생모 윤씨의 비극적인 죽음이다. 성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한때는 시어머니 인수대비와 성종의 .. 성종이 최고 권력자인 장인(한명회)을 몰아낸 사연 -4 성종이 최고 권력자인 장인(한명회)을 몰아낸 사연-4 화려했던 압구정(鴨鷗亭), 추락의 빌미로 한명회(韓明澮)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조선 전기 대표적인 '권모술수의 달인'이었다는 점이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세조)의 대표적인 참모이자 지략가로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세조의 독특한 술자리 정치 -3 세조의 독특한 술자리 정치 -3 음주습관 따라 벼락승진에 참수까지 세조(世祖) 하면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비정한 군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1453년 10월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성공하면서 실질적으로 권력의 1인자가 된 수양대군(세조)은 2년 후인 1455년 6월 단종을 압박해 왕..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