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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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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약한 왕 '현종' -18 존재감 약한 왕 '현종' 15년 재위기간 내내 예법싸움만 조선의 18대 왕 현종(재위 1659~1674년)에 대해선 별로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조선의 왕 중 존재감이 없는 경우는 대개 재위 기간이 매우 짧을 때가 많다. 2대 왕 정종, 12대 왕 인종, 18대 왕 현종이 대표적이다. 재위 기간이 1~2년밖에 되..
북벌 대신 러시아 정벌 나선 효종 -17 북벌 대신 러시아 정벌 나선 효종 | 북벌은 생각만 현실은 淸 원군 요청 승낙 효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북벌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효종대에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해 들어오고 두 차례에 걸쳐 나선(러시아) 정벌이 이뤄지기도 했다. 1653년 7월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
북벌(北伐)만을 꿈꿨던 효종의 갑작스런 사망 -16 북벌(北伐)만을 꿈꿨던 효종의 갑작스런 사망 삼전도 굴욕안긴 淸에 '復讐雪恥' 꿈 무산 1645년 2월 귀국 후 두 달 만에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봉림대군은 뜻하지 않게 세자로 책봉됐다. 소현세자에게 세 아들이 있었지만, 인조는 기어코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계승시켰다. 1649..
소현세자는 왜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죽었을까 -15 소현세자는 왜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죽었을까. 북학과 북벌을 둘러싼 부자간 갈등 1637년 삼전도의 굴욕 이후,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 부왕 인조 뒤를 이어 왕위 계승을 눈앞에 두고 있던 세자가 8년 만의 인질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국가 공식 기..
청 태종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린 '인조' -14 청 태종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린 '인조' 현실의 힘 무시 명분만 중시 쓰라린 대가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1595~1649년)가 즉위하면서 북인 정권이 무너지고 서인이 실세가 됐다. 정권을 잡은 인조와 서인은 광해군 정책 대부분을 파기했다. 외교도 마찬가지. 광해군이 명나라 신의..
직접 반정에 앞장선 인조 -13 직접 반정에 앞장선 인조 부친·동생 죽음 후 자신 안위도 흔들린 탓 우리 역사에는 조선시대에만 두 차례의 반정(反正)이 있었다. 1506년의 중종반정과 1623년의 인조반정이다. 두 번의 반정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중종반정에선 중종이 반정 세력에 의해 추대되기만 했다. 반면 인조는 직..
명나라와 후금 사이 줄타기 외교 광해군 -12 명나라와 후금 사이 줄타기 외교 광해군 정치보복으로 빛바랜 탁월한 실리외교 광해군은 내정에 대해선 빛과 그림자가 분명했던 왕이었다. 정치 개혁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정통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무리한 정치 보복을 일삼았던 점은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
정통성 시비에 발목 잡힌 광해군 -11 정통성 시비에 발목 잡힌 광해군 걸림돌(영창대군) 없앤다는 게 오히려 화근으로 임진왜란은 조선 왕실의 세력 판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임진왜란 초기 관군의 방어선이 뚫리자 선조는 한양과 평양성마저 버리며 피난길을 재촉했고, 이것은 백성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