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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북 여행

(충북 보은) 정이품 소나무와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는 1400년전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24년째인 진흥왕 14년

(서기 553년)에 의신조사가 세웠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3대 불상전 가운데 하나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 전, 능인전, 조사각, 
진영각, 삼성각 등 8개의  전각과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종고루, 부도전 등 5개의 
부속건축물, 그리고 선원, 강원, 염불원 등 3개의 원과  또한 염화당, 용화당, 
미룡당, 응주전, 사리각,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어 도합

30여동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요문화재>


           팔상전(국보 55호)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때에 의신이 세웠고, 776년 병진이 중창하였고, 1597년 정유
           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상전은 1984년에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전체 높이가 상륜까지 22.7m 이며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중 제일 높은 것이다.

           석연지(국보 64호)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굄과 한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구름 위에 둥둥 뜬 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쌍사자 석등(국보 5호)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중의 하나로 그 조성년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양식
           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대 방석을 모두 하
           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패불(보물 1259호)

법주사 대웅보전 내에 소장되어 있는  대형불화로 1966년에 화성  
          하였는데, 이 불화는 천장보살 즉 노사나 불화로  적, 록, 황, 청색의 색채가 곱고 보
           존상태가 양호하다.
   
           사천왕 석등(보물 15호)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수법으
           로 보아  혜공왕(765-780재위)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던 때의 작품으로 추정
           하고 있다. 
  
 정이품 소나무   

                                               

       


종   목   천연기념물   103호
명   칭   속리의정이품송(俗離의正二品松)
분   류   노거수
수   량   1주7,700㎡
지정일   1962.12.03
소재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17-3
소유자   법주사
관리자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에 말티고개를 넘어 조금 더 가면 정이품 소나무가 길가에 있다.
정이품 소나무의 유래는 1464년 세조대왕께서 법주사로 들어가실 때
대왕이 타신 가마가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하시어" 연(輦 )걸린다" 말씀하시자
이 소나무가지가 번쩍들려 무사히 통과하셨다는 사연으로 "영걸리 소나무"라고도 하며
대왕께서 이앞을 지나시다 비를 피하셨다는 전설도 있다.

이런사유로 대왕께서
이소나무에 정이품(正二品)의 벼슬(지금의장관급)을 내리셨다고하여
정이품 소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으로 볼때 이소나무의 수령은 약540여년될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소나무는 천년기념물로 지정되여 보호되고 있으며
나무의 높이는 약15m이고
법주사 소유로 되어있다.

 


 

보은시내에서 속리산 가는 버스를 타고 말티고개(해발 430m)를 넘어 종점에 내려 약 10분정도 걸어야

법주사 입구에 닿는다.

그 사이 그 넘치는 상점들과 식당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매표소에서 3,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서 법주사까지는 약 오리정도 된다고 오리숲이라고도 한다.

 


 

법주사 일주문 바로 앞 약수암(바위속에 구멍으로 물이 흐른다.) 

 

 

법주사 일주문

 

 

호서제1가람 속리산 대법주사

 

 

 

 

 

 

 

 

 

 

 

 

 

 

다리를 건너면 금강문이다. 

 

 

금강문

 

 

사천왕문

 

 

당간지주

 

 

석연지 

석연지(국보 64호)는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굄과 한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구름 위에 둥둥 뜬 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한때 3,000신도의 물을 저장했던 석조 

 

 

 

 

 

 

 

 

금동 미륵 대불

 

 

팔상전(국보 55호)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 있다 해서 팔상전 

이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때에 의신이 세웠고, 776년 병진이 중창하였고, 1597년 정유
           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상전은 1984년에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전체 높이가 상륜까지 22.7m 이며 현존하
           는 한국의 탑파중 제일 높은 것이다 

 

 

스님이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계셨다.

 

 

범종각

 

 

 

 

 

무쇠로 만든 솥(철확)

 

 

팔상전과 대웅전

 

 

팔상전의 풍경소리가 바람에 울리고

 

 

국보 5호 쌍사자 석등(팔상전과 대웅전 사이에 있슴)

 

쌍사자 석등(국보 5호)은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중의 하나로 그 조성년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양식
           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대 방석을 모두 하
           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속리산 품속에 자리한 법주사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보물 제216호) 

 

법주사 경내에 있는 마애여래의상은 높이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옆 바위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이다.
불상의 머리는 바위에 새긴 것들에서는 보기 드물게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촘촘하게 새겼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에는 크고 긴 코와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과 함께 두꺼운 입술이 잘 표현되어 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여기에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왔고 목에 있는 3줄의 주름이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반듯하면서 넓은데 비해 잘록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면을 보여준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친 형태로 가슴에서 다리 사이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 들어서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와 맞대었다.

왼손은 앞에서 수평으로 들어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이 불상은 화사한 연꽃 위에 걸터 앉고 큼직한 연꽃잎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어,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불상의 오른쪽 바위면에는 짐을 실은 말을 끄는 사람과 말 앞에 꿇어 앉은 소를 새겨 놓았다.
이것은 의신조사가 불경을 실어 오는 모습과 소가 불법을 구하는 전설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법주사의 창건 설화와 관계되는 암각화로 추정되고 있다.

 

 

 

 

 

문경새재를 구경하고 버스를 타고 내일 일정을 감안하여 상주까지 갔다.  

처음으로 와 보는 상주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여행의 묘미는

낯선 곳에서 하루밤 지내며 술 한 잔 마셔보는 것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상주는 곳감의 고장이라고 하더니

집안이나 밭에는 감나무가 많았고 

하물며

냇물의 뚝에도 감나무를 심었고 곳곳에는 특산물 상주곳감을 판매하고 곳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상주를 벗어나 충청북도에 진입하니 멀리 속리산이 보이고 보은에서 속리산 가는

버스는 수시로 있어 보은의 어느 해장국집에 들러 해장국으로 어제밤 술로 쓰라린 속을 달랬다.

 

보은에서 속리산 가는데 말티고개(해발 430m)가 스릴 넘치는 길이었다.

꾸불 꾸불 돌고 돌아 고개몰랑을 넘어 속리산 입구 가기 전

길가에 정이품 소나무가 고귀한 자태로 나를 반긴다.

 

세월에 약이 있으랴!

사진에서 봤던 소나무와 다르게 정이품 소나무는 노쇠한 모습이 역력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속리산 버스터미널에 내려  상가와 식당이 즐비한 지역을 걸어

약 10분 걸으니 법주사 입구의 입장료(3,000원) 내는 곳에 도착하였다.

 

오리숲길을 걸어 일주문 바로 앞 우측에 바위의 구멍을 통해 약수가 흐르는

약수암에서 한 바가지를 약수를 받아 마시며 어두운 마음을 씻어 내리고

일주문앞에 서니 호서 제 1 가람(湖西 第 一 伽藍)이라는 현판이 가슴을 내민다.

 

고목들의 숲을 지나니 저 앞에 다리가 보이고 다리 너머 금강문이 보인다.

 

속리산 품안에 자리한 천년 고찰 법주사는 평지에 세워졌고 넓은 터에 큰 건축물들과

금을 입힌 금동미륵불상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진에서만 보았던 팔상전은 늘 보고 싶었던 건축물이었다.

지금이야 큰 건물들이 많지만 옛날에 이런 5층 목조 건축을 할 수 있슴은 뛰어난 조상들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또한

팔상전 우측에 금동미륵상은 법주사를 내려다 보고 찾아온 모든이들에게 복을 내리고 계시고

불상 아래는

박물관과 기도실로 꾸며져 있었다.

 

대웅전을 둘러보다 문득 부처님께 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베낭과 등산화를 벗고

대웅전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10배정도 절을 올렸다.

무슨 이유가 있거나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 무심한 마음으로 넙죽 넙죽 절을 드리고 법주사 곳곳을 잘 구경하였다.

 

어느덧 해는 오후로 들어서고 다음 여행길을 재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