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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강화도 조약 150주년 - 인천, 세계의 바다에 뛰어 들다. -2

 

 

모호한 조약문과 엇갈린 해석

강화도조약 제1관은 "조선국은 자주지방(自主之邦)이다."라 규정했다.

이는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이지만 그에 대한 양국의 해석은 엇갈렸다. 일본은 이를 근대적 "돌빅국"으로

해석해 조선을 청의 영향권에서 분리하려 했다.

반면 조선은 전통적인 조공 질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국왕이 행사해 온 자주적 통치 권한을 확인하는 의미로

이해했다. 이처럼 의미의 한계와 모호함을 남겨두었지만,

근대적 국제 조약에서 조선을 "자주국"으로 표현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1. 이노우에 가오루

전권대신 구로다 기요타카를 보좌하며 강화도 연무당에서 진행된 조선과의 실무 협상을 주도했다.

메이지유신의 핵심 인사로서 이후 일본의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2. 구로다 기요타가

강화도 조약 체결 당시 일본 측 전권대신으로 파견된 인물이다. 

군함 6척과 8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여 조선 정부에 강력한 개항 압박을 가했다.

조약 체결 이후 일본의 제2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는 등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근대 정치사에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1900년대 초 인천항 - 화도진도서관

 

조선 병사들에 쫒기는 하나부사 공사 -1882년

인천으로 도주한 하나부사 요시모토 공사 일행의 탈출 장면을 묘사한 석판화이다.

불타는 공사관을 뒤로하고 인천항에서 작은 배를 얻어타고 황급히 바다로 나서는 공사 일행과 이를 쫓는

조선 군병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