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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26)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루(Belfries of Belgium and France; 1999)

세계문화유산(254)/ 프랑스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루(Belfries of Belgium and France; 1999) 

 

1999년 벨기에의 플랑드르(Flanders)와 왈로니아(Wallonia)에 있는 32개의 종루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먼저 등재되었으며,

2005년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왈로니아 지방의 장블루(Gembloux)에 있는 종루 23개가 추가로 등재되었다. 11~17세기에 걸쳐 오랜 시기에 만들어진 종루들은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 등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표현하고 있다. 종루는 시민의 자유가

승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유산이다. 이탈리아・독일・영국의 도시들이 공회당(Town Hall) 건설에

주력하는 동안, 북서 유럽의 일부 도시에서는 종루 건설에 힘을 쏟았다.

도시 경관에서 성탑[봉건 영주의 상징]과 종탑[교회의 상징]에 비해 제3의 탑인 종루는 시의회의 권력을

상징하며, 수세기 동안 도시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였다.

종루는 유럽에서 민간 공공 건축분야에서 대표적인 걸작인 건축물이다.

다양한 ‘기능성(functional)’과 시간을 두고 변화된 부분은 13세기 이후 민간 건축 분야에 있어

중요한 측면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종루는 중세 이후 플랑드르 역사 속에서 발전된 시민의 권위를

나타내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종루는 원래 군사 포위 작전에 사용되는 이동식 목탑을 의미했다.

이 용어는 나중에 강가나 촌락을 둘러싼 언덕에서 높은 곳에 설치된 목재로 된 감시용 탑으로 기능이 변했다. 종루는 부분적으로는 주택의 종이나 종탑의 옆에 붙어 있는 건축물을 말하기도 한다.

높다란 언덕, 종이나 종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는 도시 생활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플랑드르와 왈로니아의 32개 종루와 프랑스 북부에 있는 23개의 종루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바로 종루이다. 종루는 일반적으로 공회당과 연결되어 있으며,

중세에 기원을 둔 교회와 연결된 종탑을 의미하기도 한다.

 

종루는 탁월한 예술적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중세 후기 봉건 유럽 사회의 발전에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 상업적 도시 사회로의 전환을 강하게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종루는 중세 최고조기 이후 주권을 가지고 있던 수도원이 해체되면서 시민의 자유가 획득되었음을 뚜렷하게 증명하는 민간 건물이자 상징이었다. 13세기와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초기 종루는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때때로 몇 층이나 되도록 상당히 높게 건축되었으며 둥근 천장으로 디자인한 면 때문에 ‘영주의 성탑’을 연상하게 하였다. 중심축은 망루 사이에 걸쳐 있는 지붕 난간과 벽에 높게 설치되어 있고,

중앙의 첨탑은 일직선으로 된 종탑 지붕과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코너의 꼭대기 장식과 중앙의 작은 탑은 공동체를 보호하는 상징적 동물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13세기에 건축된 예페르(Ypres; Ieper)의 종루는 이러한 유형의 좋은 본보기이다.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이 종루 주변에는 공회당이 건설되고

시장 건물 단지도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상징적인 인상을 갖게 해준다. 대부분의 종루는 14~17세기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스타일 면에서 노르만 고딕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바뀌었고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14세기와 15세기의 종루는 덴더몽드(Dendermonde), 리에(Lier), 알스트(Aalst)에서와 같은 정교하고 큰 탑을 가진 모델은 더 이상 짓지 않았다. 나중에 탑에 첨가된 좁다란 모양의 수직 통로는 기본적인 모양의 종탑에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기념비적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지붕 자체는 좀 더 둥글어졌으며, 때때로 17세기의 뷔르네(Veurne)에서 보듯 선을 확장하였다.

시장 건물과 종루가 시의회의 회의 장소로 이용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는 의견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건물, 곧 시청[공회당] 건물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15세기와 16세기 이후 행정 조직에 따라 계획되었고, 브뤼셀과 오데나데의 예에서 보듯 종루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도시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건축은 종종 몇몇 단계를 걸쳐 수행되었지만 항상 전체적으로 아주 질서 있게 유지되었다. 가끔은 전쟁으로 일부분이 파괴되긴 했으나 일반적으로 동일한 형태로 재건되었다. 이들 중 독립적인 형태이거나 건물의 일부분 또는 광장이나 도시의 한 부분이든 모든 것은 기념물로 등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