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문화유산

(프랑스 -28) 프로뱅 지역의 중세 도시 상가 지역

 

세계문화유산(256)/ 프랑스

프로뱅 지역의 중세 도시 상가 지역(Provins, Town of Medieval Fairs; 2001)

 

일드프랑스 주[Ile-de-France] 센에마른 현[Department of Seine-et-Marne]의 프로뱅은 11세기 이 지역에서 강력한 권력을 누리던 샹파뉴 백작 가문의 옛 영토에 속해 있던 중세 시대의 요새 도시로 무역 시장의 설립과 모직 산업의 초기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는 곳이다. 프로뱅의 도시 구조는 특별히 무역 시장과 그와 관련된 행사를 주최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11세기 초에 프로뱅은 북유럽과 지중해 세계를 연결하는 연례 무역 시장이 열리던 곳으로 샹파뉴 백작 가문의 영토에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이 거대한 중세의 교역 도시는 특징적인 건축물과 도시 구조로 유명하다. 갈로로만(Gallo-Roman) 시대에 오늘날의 프로뱅 지역은 북쪽으로 수아송에서 트루아로 가는 길과 남서쪽으로 상스로 가는 길의 주요한 두 축과 연결되어 있었다. 프로뱅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802년 샤를마뉴 대제의 법령에 따르면 당시 이곳에 이미 요새가 건설되어 있었다. 프로뱅의 정치적, 상업적 중요성으로 인해 높은 지대에 세워진 성은 11세기와 12세기에 요새화되었다. 본래의 성벽[카스투룸]은 작았지만 거주지가 놀라운 속도로 요새 밖으로 퍼져나가자 12세기에 이곳에도 방어용 나무 벽을 둘러쌌다. 이때 돌로 만든 세 번째 요새는 13세기 초반에 더 세워졌다. 프로뱅은 이리하여 샹파뉴 백작의 치세 동안 중세 박람회가 열린 4개 마을[트루아, 라니, 바르쉬르오브와 함께]의 하나로서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곳에서 발달했다. 프로뱅은 초기의 중세 도시 구조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프로뱅은 불지(Voulzie) 및 뒤르탱(Durteint) 강의 골짜기들이 합류하는 완만한 언덕 지역에 있는 백악질로 된 브리(Brie) 고원 남쪽에서 발전했다. 프로뱅은 어퍼 타운(Upper Town)과 로어 타운(Lower Town)으로 구성된다. 어퍼 타운은 브리 고원의 돌출부에서 발달했고, 로어 타운은 두 강의 합류점에서 동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다. 로어 타운은 작은 석조 가옥과 목조 가옥이 특징이며 푸른 초원과 정원도 볼 만하다. 프로뱅에는 대형 건물이 2개 있다. 하나는 이른바 ‘카이사르의 탑[Tour de Cesar]’이라 불리는 대형 석탑이다. 12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 3층탑에는 17세기의 원뿔형 지붕이 덮여 있다. 또 하나는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생 키리아스 대성당이다. 대성당의 건설은 12세기에 웅장한 규모의 성가대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320년 프로뱅이 쇠퇴하면서 네이브(nave)의 가로대와 2개의 기둥만 완성되었다. 가로대 위의 아치 천장은 17세기의 화재로 소실되어 이후 돔으로 교체되었다. 프로뱅의 중심지는 주택들로 둘러싸인 옛 시장 광장[Market Square]이었다. 무역 시장과 관련하여 발달된 주택들은 모두 커다란 아치 천장이 있는 지하 저장소를 가지고 있었다. 삼면에서 어퍼 타운을 둘러싸고 있는 12세기의 성벽은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로어 타운의 울타리는 19세기에 무너졌다. 로어 타운 지역에는 생 에울(Saint-Ayoul) 교회, 생트 크루아(Sainte-Croix) 교회를 비롯한 최초의 종교적 건축 구조물들이 있다. 마을이 계곡까지 확장되면서 종교적 질서도 갖추어졌고, 무역 시장의 목적에 맞게 종교 단체가 만든 부지・건물・상점들이 들어섰다. 토지가 지하실을 만들기에 적당치 않아 저장소는 지상에 세워졌다. 지붕은 로어 타운과 마찬가지로 둥근 천장을 사용했다. 개인 주택들은 다용도 주택과 상업용 주택의 두 그룹으로 나뉜다. 두 그룹 모두 12~13세기에 만들어졌다. 복합 건물이든 상업 건물이든 프로뱅의 옛 건물들은 12~14세기에 발달한 아치 천장의 저장소가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장소는 어퍼 타운에서는 완전히 지하 저장소였고, 로어 타운에서는 부분적으로 지상에 세웠다. 모두 넓은 돌계단이 있는 커다란 문이 길 쪽으로 나 있었다. 프로뱅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아마도 12세기에 치장벽돌로 쌓아 만든 메종 로메인(Maison Romane)일 것이다. 이것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옛 유대인 광장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원래 랍비 학교 건물이거나 시나고그[유대 교회]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프로뱅의 로어 타운은 특히 산업화 과정에서 다양한 수공업이 발달한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발전을 보여 주는 장소들은 지금도 남아 있다. 고원의 경사면은 3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모직 축융에서 나오는 유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진흙을 추출한 곳이다. 이 세밀한 지하 회랑들은 몇 단계에 걸쳐 판 것으로 나중에 포도주 저장소로도 사용되었다. 도시 전체는 직접적으로 무역 시장의 기능을 수행하든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든지 정기 시장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