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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 -23) 프랑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세계문화유산(251)/ 프랑스

 

프랑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Routes of Santiago de Compostela in France; 1998)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

프랑스의 아키텐 주[Regions of Aquitaine]・오베르뉴 주[Auvergne]・바스노르망디 주[Basse-Normandie]・

부르고뉴 주[Bourgogne]・상트르 주[Centre]・샹파뉴아르덴 주[Champagne-Ardenne]・

일드프랑스 주[Ile-de-France]・랑그도크루시용 주[Languedoc-Roussillon]・리무진 주[Limousin]・

미디피레네 주[Midi-Pyrenees]・피카르디 주[Picardie]・푸아투샤랑트 주[Poitou-Charentes]・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주[Provence-Alpes-Cote d’Azur]에 위치하며,

중세시대에 셀 수 없이 많은 독실한 순례자가 전 유럽에서 모여들던 성소였다.

 

순례자들은 목적지인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려면 프랑스를 거쳐야 했는데 프랑스에 있는

네 갈래의 순례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네 갈래 길 곳곳에는 중요한 역사적 기념물이 있으며

이것들도 유산에 포함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은 중세 후기에 종교적・문화적 교역과 발달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프랑스에서 순례자들이 지나갔던 길들에 주의 깊게 선정해 놓은 기념물을 보면 여실하게 드러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들의 영적・육체적 필요에 따라 많은 특별한 양식의 건물이 발달했다.

그중 많은 것이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발전되었다. 638년 예루살렘이 칼리프 오마르에게 함락된 후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꺼리면서 예루살렘 순례가 쇠퇴하였다.

순례자들은 이베리아 반도에 기독교를 전파한 위대한 전도자 성 야고보의 묘지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향하게 되었는데 800년경에 이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는 지역의 종교 중심지가 되어 900년경에는

주교 관할구가 되었다. 그 뒤 951년 퓌이(Le Puy)의 주교 고데스칼크(Godescalc)의 방문과 외국 순례자들의 방문이

처음으로 기록된 뒤 급속도로 이름을 떨쳤다. 11세기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성지 순례는 절정에 이르렀다.

각 국의 왕과 주교를 비롯한 순례자 수천 명이 그리스도의 가장 가까운 제자의 무덤에서 기도하려고 먼 길을 여행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의 번영은 성인의 생애와 기적의 소장품을 출간하여 순례지에 대한 경외심을

독려한 클뤼니(Cluniac) 수도원의 번창과 맞물려 있다. 11~13세기 ‘정기 기착지’ 교회들이 프랑스의 순례길을 따라

발달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프랑스의 네 갈래 주요 순례지

파리, 베즐레, 퓌이, 아를에서 각각 시작한다. 각각의 길은 많은 보조 도로로 연결된다.

파리 길은 불로뉴, 투르네, 저지대[Low Countries; 유럽 북해 연안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로 구성된 지역]에서

오는 길들이 만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캉, 몽생미셸, 브리타니에서 오는 길은 투르, 푸아티에, 생장당젤,

보르도[잉글랜드와 브리타니, 노르망디 연안에서 바다를 통해 오는 순례자들을 위한 항구] 같은 중간 기착지에서

하나로 모인다. 퓌이는 론 골짜기와 연결되어 있고 이탈리아에서 오는 순례자들은 아를을 거쳐 건너왔다.

서쪽의 세 길은 이바네타(Ibaneta) 고개를 통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오스타바(Ostabat)에서 합쳐졌다.

아를에서 오는 동쪽 길은 숨포르트(Somport) 고개를 이용했다. 두 길은 에스파냐의 푼테라레이나(Puente-la-Reina)에서

합쳐졌다. 프랑스 영토 안에 있는 순례길을 따라 늘어선 예배 장소들은 툴루즈의 생 세르냉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 같은 대형 건축물에서 교구 교회들까지 다양하다.

 

모든 건물이 어느 쪽이든 서로 포괄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모든 건물이 에메릭 피코(Aymeric Picaud; 페리괴의 성 프롱 대성당 또는

생 레오나르 드 노블라 교회) 신부가 만든 지침에 따라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건물은 모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 여행과 직접 연결되는 중요한 유적이나 기타 요소를

지녔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는 ‘순례 여행 교회’라고 자칭하고 그에 어울리는 건축적 특징을 보여 주기도 한다.

콩크의 생트 푸아 교회, 툴루즈의 생 세르냉 대성당, 특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하나같이 순례자들이

예배하기 편리하도록 설계한 드넓은 앰뷸러토리(ambulatory) 주위에 커다란 트랜셉트(transept)과 애프스(apse)이

있는 예배소를 두고 있다. 중세시대의 성지 순례는 순례자들에게 상당한 고통이 뒤따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료적 처치와 간호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이 건물들 가운데 순례길의 프랑스 영토 쪽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소수의 건물들은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순례자의 다리’로 알려진 다리들도 많이 남아 있다.

생첼리도브락의 보라드 강에 있는 다리에는 한 순례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아니앙의 에로 강 위의 악마의 다리[Pont du Diable]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의 다리로 무척 중요하다.

카오르의 로 강 위에 장엄하게 세워진 14세기 요새 발렌트레 다리도 중요하다. 다양한 길로 이루어진 경로가

일반적으로 알려졌지만 그중 본래 모습을 간직한 길은 아주 적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에 포함된

7개 코스는 모두 퓌이 길에 있는데 이는 전체 길이의 20%가 넘는다.

이 코스들은 상대적으로 짧은데 중세시대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지 순례와 연관하여

십자가와 예배를 보는 경건한 장소들과 같은 기념물이 곳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