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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 - 21) 카르카손 역사 요새 도시

세계문화유산(249)/ 프랑스

카르카손 역사 요새 도시(Historic Fortified City of Carcassonne; 1997)

 

카르카손은 랑그도크루시용 주[Languedoc-Roussillon] 오드 현[Aude]에 위치하며,
이 도시의 언덕에는 로마시대 이전부터 요새화된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중세시대에 건축된 성을 둘러싼 거대한 방어벽,
주거 건물, 거리, 고딕 성당 등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서 중세의 요새화된 주거지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지역은 현대 보존 과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비올레르뒤크(Viollet-le-Duc)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복원되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카르카손 역사 도시는 중세 요새 도시의 전형적인 예로 거대한 성채들이 고대 말기에 세워진 성벽 안에 건설되어 있다.
19세기 말에 비올레르뒤크가 수행한 복원 작업은 이후의 복원 이론과 실제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카르카손 지역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로 당시 원사시대(原史時代) 요새[오피둠]가
이곳의 바위 언덕에 세워졌다. 
카르카손 역사 도시가 자리 잡은 곳은 오드 강 골짜기와 멀리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고,
이베리아 반도와 나머지 유럽 지역을 연결하는 고대 도로를 굽어보는 요새였다.
기원전 1세기 카르카소 볼카룸 텍토사굼(Carcaso Volcarum Tectosagum)이라 불리던 이 요새는 로마 제국에 흡수되면서
기원전 27년 라틴 콜로니아 룰리아 카르카소(Latin Colonia Iulia Carcaso)로 개명되었다. 3세기 말부터 4세기 초에는
약 1,200m의 성벽이 건설되어 도시를 방어했는데 천연 요새로 둘러싸인 성벽 2개와 성 하나로 이루어진 이 요새는
총 연장 길이가 3㎞가 넘는다. 새로 세운 성벽은 주로 로마시대에 세워진 방어벽을 따라 지었으며,
두 성벽은 전체 길이의 ⅔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시대의 성벽은 편자 모양의 보루를 중간마다 세워
강화시키는 등 돌을 쌓은 방식에서 로마 후기 양식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이는 콘크리트 위에 벽돌 층을 쌓고
장식한 마름돌과 잡석을 가로 세로로 겹쳐 쌓는 방식이다. 동쪽에 있는 나르본 문[Porte Narbonnaise]과 서쪽에 있는
오드 문[Porte de l'Aude]은 특히 정교한 방어 시설로 유명하다. 
카르카손 역사 도시는 셉티마니아(Septimania)의 북쪽 경계의 변경 도시였기에 5세기에 서고트 족의 통치를 받았고
프랑크 족의 계속된 침략에 저항하게 되었다. 724년 아랍 인들이 침략했지만 759년 페핀 더 쇼트가 주도한 포위 공격으로
몰아냈다. 서고트 족 시대인 6세기경에 이곳에 주교직이 생겼으며, 지금의 로마네스크 성당이 있는 자리에 성당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096년 6월경으로 추정된다. 생 나제르(St Nazaire)와 생 켈세(St Celse)에 봉헌된 대성당의 본당은
단속적인 반원형 아치 천장으로 덮인 중앙의 6개의 네이브(nave)와 비슷한 높이의 완벽한 아치가 솟아오른 2개의
좁은 측면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반원형 아치의 가로 빔은 깊이 박힌 사각 기둥과 원주에서 번갈아 솟아올라 있다.
정통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가대석은 13세기를 압도한 하이 고딕 양식으로 변화되었는데 동쪽 끝에
육각형의 애프스(apse)가 있는 커다란 수랑(袖廊; 십자형 교회당의 좌우 날개 부분)에서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북부의 하이 고딕 성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러한 양식은 수랑을 강조하는 로마네스크의 전통과 달리
성가대석 자체를 강조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을 고딕 양식화한 것이다. 외관은 프랑스 북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고딕 양식 교회 건물과 마찬가지로 플라잉버트레스(flying buttress)가 없어서 내부의 아치로 안정성을 유지한다.
이곳에 있는 조각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3세기의 라둘프 주교의 무덤이며,
애프스와 수랑의 창문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뛰어난 수준의 작품이다.
시기는 13세기 말, 14세기 초, 16세기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