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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 -24) 리옹 역사 지구(Historic Site of Lyons; 1998)

세계문화유산(252)/ 프랑스

리옹 역사 지구(Historic Site of Lyons; 1998)

 

론알프 주[Region of Rhone-Alpes] 론 현[Department of Rhone]의 리옹

기원전 1세기 로마인들이 갈리아 지방의 세 나라를 로마의 속주(屬州)로 삼고 그 수도로서 건설한 도시다.

그 뒤로 이곳은 유럽의 정치・문화・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뛰어난 도시 계획과 각 시대에

걸쳐 세워진 유서 깊은 수많은 건물이 리옹의 오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리옹은 거대한 상업적・전략적 요충지에 2,000년 이상 도시가 지속되고

사람이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놀라운 증거이다. 리옹은 유럽 각국의 문화적 전통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통일되고

활기 넘치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 특별한 방식으로 건설된 까닭에 몇 세기에 걸쳐 기획된 도시와 건축술의

발전 과정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리옹 지역은 서쪽의 푸르비에르(Fourviere) 언덕과

동쪽의 크루아루스(Croix-Rousse) 언덕이 둘러싸고 있다. 크루아루스 언덕은 두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퇴적물로 조성된 반도까지 이어진다. 론 강은 알프스 산맥이 본령으로 유속이 매우 빠르다.

이와 반대로 손 강은 유속이 느려 항해하기 좋고, 프랑스 북동부의 평야 지대와 리옹 강을 연결한다.

오늘날의 리옹은 로마인들이 푸르비에르 언덕에 정착하면서 세워졌으며, 두 강의 합류 지역에는

몇 세기 전에 사람들이 살았다. 로마인이 세운 도시는 크루아루스 언덕과 반도로 영토를 확장했으나

소란스러운 3세기에 손 강의 오른쪽 강둑과 푸르비에르 기슭의 두 요새지로 줄어들었다.

푸르비에르 요새는 주교의 장원 근처에 있었으며 반도의 생 니제르 교회와 가까운 상업 지구였다. 

리옹은 15세기 중엽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밀집한 도시가 되었다. 도시는 36개 지구로 나뉘었고 지구마다

상업적 권한이 있었다. 크루아루스 경사지는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아 부유한 독일 상인과 이탈리아 상인들이

시골 별장이나 포도밭으로 사용했다. 인구 과밀과 역병의 위험성 때문에 16세기 중엽부터 확장 정책을

계획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를 종교 조직이 이끌었다.

새로운 지구들은 17세기에 남쪽의 루아얄 광장[오늘날 벨쿠르 광장] 주위의 벨쿠르 지역에 개설했다.

18세기에는 동쪽에 대대적으로 배수 공사를 하고 반도와 인접한 섬을 연결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행했다.

프랑스혁명 때는 종교 조직의 땅을 몰수하여 이곳에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1850년 주변의 몇몇 코뮌을 리옹 시에 흡수했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를 건설했다.

그 결과 오늘날 볼 수 있는 도시 구조, 중세의 거리, 서로 인접하도록 계획한 18~19세기 시가지와

아울러 리옹 발전의 본보기가 되었다. 고대 로마 도시의 모습은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발굴한 건물에서 엿볼 수 있다.

관객 1만 명을 수용하는 대형극장은 1세기 초에 만들어졌으며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세에 재건했다.

대형극장을 따라 관객 3,000여 명을 수용하는 작은 오데온 극장이 1세기 중반 무렵에 세워졌다.

크루아루스 언덕에 있는 원형경기장은 기원전 19년에 로마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헌정된 제단과 함께 건설했다.

3건의 갈리아 의회가 매년 8월에 개최되었다. 그 뒤 몇 세기 동안 리옹에는 수많은 개인 저택이 세워졌다.

창주 광장의 토마생 저택[13세기말에서 15세기 확장], 시인 모리스 세브의 저택[1493년, 17세기에 증축],

고딕 양식에서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 주는 샹베를랑의 저택(1495~1516),

리옹의 매너리즘 저택(1647), 케 라사뉴의 고전적인 건물(1760), 19세기 초의 대표적인 양잠 노동자[canuts]

숙소로 창문 365개가 달린 저택 등이 그것이다. 공공건물로는 11세기말에 세워진 성가대 학교[Manecanteri],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보여 주는 아이네 수도원(1107), 오랫동안 공사를 했음에도 상당한 정도로

균일한 양식을 이루어낸 생장 대성당(1160~1481), 14세기에 착공한 플랑부아 양식의 고딕식 신랑[nave],

고전적인 르네상스풍의 파사드, 신고딕 양식의 남쪽 첨탑을 자랑하는 생 니제르 교회,

17~18세기에 중세 건물터에 세운 오텔듀,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사용하는 로주 뒤 창주(1745~1780),

푸르비에르 대성당(1872~1896), 근대 건축가 토니 가르니에(Tony Garnier)의 작품인

직조 학교[The Ecole de Tissage; 1927~193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