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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종로) 사적 제121호 - 사직단(社稷壇)

 

사직단(社稷壇)

 

 

언제 : 2023년 8월 26일 토요일

어디 :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내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면 조정 회의가 벌어지는 장면에서 왕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신하들이 "종묘와 사직을 잘 모시어..." 하는 대사가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 나오는 사직이 바로 사직단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함께 만들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사직단(社稷壇)은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에 지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그리고 풍년을 비는 기곡제들을

이 곳에서 지냈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단의 임무를 맡는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다.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이다.

 

 

 

 

 

 

종묘도 공사 중이었는데, 사직단 역시 공사중이다.

학창시절

등하교길 허구헌날 이곳을 지났었는데, 그땐 사직공원이라 불렸으며 특별한 건물도 없고 너른 운동장 가운데

단이 두 개 있는 그저 어른들이 활 쏘는 곳 정도로 알았는데,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사직단을

거의 58년 만에 찾는다.

 

 

 

 

 

 

 

 

 

 

 

 

 

 

 

 

 

 

 

 

 

 

 

 

 

 

 

 

종묘가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라면,

사직은 토지의 신(사社)과 곡식의 신(직稷)을 위해 제를 지내는 곳이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는 기치를 내운 조선 왕조답게

농업에 있어서 땅과 곡식은 조상을 모시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 중에서는 사직이 더 우위였으며,

어떠한 사정이 생겨 종묘에서 지낼 제사를 생략하더라도 사직에는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대한제국 시절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만들기 전까지는, 사직이 조선왕조에서 가장 격이 높은 제사장소였다.

(다만, 조선의 임금들은 사직보다도 자기 가문의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제사에 심정적으로 더 기울었다.)

종묘사직=국가=조선와 같은 말이었을 만큼 사직은 국가의 정신적 근간과 정통성을 이어가는 중요한 시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1922년에 공원을 만든다며 제단 주변 13개 주요 전각들을 심하게 훼손하거나 철거했다.

이는 당연히 조선의 전통과 국격을 깔아뭉개기 위한 정책이었다. 해방 후에도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부지가 축소되고, 수영장 도서관 등 각종 근대시설물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2015년 문화재청은 사직단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회복하기 위해

복원정비계획을 마련해 제례공간인 전사청 권역 등 핵심영역 발굴 조사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주요 전각 13동을 복원하고 3동은 보수할 계획이다.

 

 

 

사직단을 떠나 다시 경복궁을 향해 걷는데, 오랜만에 서촌을 걸어보았다.

이곳 통의동은 학창시절 거의 매일 지났던 골목길이었는데,

오늘 더운 날씨임에도 고운 한복을 입은 내국인, 외국인들이 아름답게 골목길을 채운다.

 

 

 

 

 

 

 

 

 

점심을 들어야 할 시간이라 햇볕도 제법 강한데,

서촌을 지나 고궁박물관을 둘러보러 가는 길에 경복궁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많은 인파와

아름다운 한복이 고궁을 더욱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