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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종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 종묘(宗廟)

 

언제 : 2023년 8월 26일 토요일

어디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참으로 생각하기도 싫은 찜통 더위도 이젠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함을 느끼는 날,

영화나 tv에서 

"마마, 종묘사직을 생각하시옵소서"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자세한 의미를 알아보고저

 종묘를 찾아간다.

 

종묘를 찾은 지가 어언 10년이 지났는데 

예전 정리되지 않았던 종묘 입구는 아주 넓고 잘 정리된 공원이 되어 보기 좋았으나, 

종묘의 주인공인 정전은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조선시대에 ‘종묘사직’을 버린다는 것은

곧 나라가 망하도록 방치해 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을, 사직은 땅과 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비는 제단을 말한다.

종묘와 사직은 나라를 지탱하는 근간이자 안녕과 번영을 비는 가장 신성한 공간이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결정하고,

경복궁보다 종묘를 먼저 세웠다. 경복궁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웠으니,

이들 장소를 돌아보면 조선왕조의 시작을 돌아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묘의 시초는

옛 중화권 국가인 상(은)나라에서 처음 그 개념을 정립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주나라대에 이르러

《예기》에 실린 유교적인 형태의 종묘의 개념이 잡혔다.

 

 

고대의 한국 왕조 또한 전통적인 시조묘(始祖廟)/조상숭배 신앙이 존재했다.

이런 시조묘, 시조상 등은 사서에서 중국의 종묘와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건국자와 천신을 혈연적 관계로 묶은 것에 기초해 신단수를 천신 제사와 더불어

조상 제사를 지낸 성지로 보며, 고조선 때부터 시조 숭배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후 삼국시대 각 나라의 관련 기록에서 초기부터 시조묘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이를 근거로 든다.

'종묘(宗廟)'라는 단어가 한국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고구려였다.

 동천왕 때 위나라의 공격으로 환도성이 파괴되자 평양성을 새로 쌓으면서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외에 3세기까지 종묘에 대한 여러 기록이 나와,

종묘라는 시설의 존재를 확실히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종묘는 이후 왕조처럼 완전한 유교식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시조묘의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왕실이 아닌 유력 귀족 가문에서도 자신들만의 종묘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또 다른 근거로는 647년(보장왕 5년)에 동명왕모의 소상이 3일이나 눈에서 피를 흘렸다는 기록인데,

위패가 아닌 신상을 모셨다는 것 역시 중국식 유교의 종묘는 아니다.

- 나무위키 참조 -

 

- 하마비 -

 

 

- 종묘전교 -

 

 

 

 

- 외대문 -

외대문(外大門)
종묘의 정문으로 창엽문(蒼葉門)이라고도 하며 정면 세 칸의 평삼문(平三門)으로 되어 있고

그 좌우로는 종묘 외곽을 두르는 담장과 연결되어 있다. 원래 외대문은 전면 중앙에 난 돌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조성하면서 노면이 높아져 땅속에 묻히고

한동안 단벌의 장대석 기단만 있었다. 2009년 매몰된 외대문의 계단이 발굴되었다.

지금은 외대문 주변을 전체적으로 낮춤으로써 외대문의 계단을 노출시켰고,

따라서 외대문으로 입장할 때엔 돌계단을 이용한다.

 

 

외대문은 입구와 출구 그리고 가운데 닫혀진 문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홍살문 역할을 나타낸다.

 

 

- 중연지 -

 

 

- 신로(神路)-

 

 

- 향대청 일원 -

 

 

 

 

- 공민왕 신당 -
- 공민왕과 노국공주 -

 

 

 

- 재궁 일원 -

 

 

 

- 전사청 일원 -

 

- 제정 -

 

 

 

 

 

 

 

 

 

 

정전(正殿)
대한민국의 국보 제227호이다.

종묘의 중심건물로서 태조를 비롯하여 임금의 신주 19위, 왕후의 신주 30위 총 49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의 남쪽 중앙에는 혼과 향로를 모시는 신문(神門)이, 동쪽에는 제례 때 제관이 출입하는 동문(東門)이,

서쪽에는 악공, 일무원, 종사원 등이 출입하는 서문(西門)이 있다.

정전의 전면에는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 만든 동서 109m, 남북 69m의 넓은 월대를 조성했으며

그 가운데에는 정전의 신실로 통하는 신로(神路)가 남북으로 나 있어

사묘 건축으로서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낸다.

정전 건물은 맞배지붕 형식이며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단청도 최소화해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길이가 101 m에 달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단일 목조건축으로는 가장 길다. 

신주로 모시는 임금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계속 방이 증축되어서 이러한 길어졌는데,

건축물의 조성 방법 중에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전의 기둥을 잘 보면 미묘하게 오래된 정도가 다르다. 서쪽이 오래된 것.

신위는 가운데에 태조를 모시고 좌우에 후대 임금을 소(昭)와 목(穆)으로 삼아 배치하는

소목 제도가 아니라 서상(西上)의 원칙에 따라 서쪽부터 태조 이하 후대 임금을 모셨다.

 

- 현재 공사 중인 정전의 모습 -

 

 

 

 

 

 

 

 

 

 

 

공신당(功臣堂)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동쪽에 있으며 창건 때는 5칸에 불과하였으나 나중에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로 되었다.
칠사당과 같은 구조 형식으로 매우 간소하게 되어 있는데

왕의 신실과 한 울타리 안에 있어서

일부러 그 형식을 낮추었다고 생각되며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건축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 와서도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다.

 

칠사당(七祀堂)

종묘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서쪽에 있던 것으로

봄에 모시는 사명과 사호, 여름의 사조, 가을의 국문과 공려, 겨울의 국행과 그밖에

중류의 7사에 제사 지내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판문과 격자창을 두고 나머지 3면은

전돌로 벽을 쌓았다.

 

 

 

 

 

-악공청-

악공청

종묘제례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악공(樂工)과 무원(舞員)들이 대기하는 장소이다.

 

 

 

 

 

- 영녕전 전경 -

영녕전(永寧殿)
대한민국의 보물로, 정전에서 옮겨진 제왕과 왕후, 그리고 추존된 제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묘(別廟)로 정면 16칸, 측면 4칸의 건물.

영녕전(永寧殿)이라는 이름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國以永寧 爰及苗裔(나라가 길이 평안하게 후손에게 물려지리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세종 3년(1421년) 5묘제의 관습에 따라 정전에서 나와야 하는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조금 덜 중요한 임금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당시 재위 중인 임금을 기준으로 5대 이전의 임금들의 신주는 영녕전으로 옮기는

것이 원칙이고, 그 중 공적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인정된 임금들만 예외적으로 

정전에 계속 모셔두는 것이다.

영녕전에는 제왕의 신주 16위, 왕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영녕전의 부재 처리나 건물 규모는 정전보다 약간 작지만 전반적인 공간 구성은 정전과 비슷하다.

 

 

 

 

 

종묘는 태조 3년 (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1395) 9월에 완공 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황제와 황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종묘는 제사를 모시는 공간(정전, 영녕전,공신당, 칠사당)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향대청, 재궁, 전사청)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을 종묘라고 불렀다.

정전과 영녕전은 장식과 기교를 절제하여 단조로워 보이지만, 이는 나라의 제사를 모시는 공간으로서의

존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위한 것이다.

 

종묘는 건축의 보편적 가치와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닌 의례공간으로는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엇다.

종묘제례아 종묘제례악 또한 우리 문화의 독창성과 우서성이 인정되어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