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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안동) 명승 제82호 : 2월의 만휴정(晩休亭)

만휴정은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2021년 12월 11일 ~ 2022년 5월 1일 -32부작 마지막 회에 태종의 부인 민씨가  머물던 곳으로
태종이 행적을 감춘 부인을 찾아와

돌다리에서 재회하고 너럭바위에서 태종이 용서를 바라던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라 
2022년 6월에 다시 적다.

 

 

언제 : 2022년 2월 27일 일요일

어디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어제 청송 주왕산과 주산지 그리고 방호정을 둘러보고

 내일 일찍 묵계서원과 만휴정을 보기 위해 안동으로 올라와 하룻밤 묵고

 안동 역전 식당에서 조반을 들었는데 어제 주왕산 인근에서 들었던 식사보다 어찌나 맛깔스럽게 차려주어

정말 맛나게 순두부찌개를 들었다.

 

사실

만휴정은 진즉부터 찾아보고 싶은 정자였다.

그 이유는 

심심산골 개울 건너 아담한 정자 

돌담 아래 개울물 흘러 수십 길 폭포를 이루며 물보라에 무지개가 서는 곳

반백 중년

 다리 건너 정자를 찾는 상상을 자주 했다.

 

조선시대에는 학문을 닦은 후 조정에 출사해 유생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선비들은

 나이가 들면 고향에 돌아와 속세를 잊고 유유자적하고자 했다.

만휴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말년에 지은 정자다.

김계행은 17세에 진사가 되고 50세 되던 해 식년시에 급제하여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아가 

연산군 때 대사간에 올랐으나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한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인 안동으로 낙향했다.

 

안동 김 씨 묵계 종택과 묵계서원에서 만휴정이 있는 앞 산 골짜기를 담았다.

 

 

 

마을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낙동강 지류인 길안천 다리 건너 산기슭에 닿아도 해가 비추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계곡 산길 따라 약 10여 분 오르니 저만치 숲 사이로 하얀 물체가 보여

 서둘러 올라 보니 

아담한 정자 아래 계곡 따라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얼음 언 송암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사실

인천에서 안동 묵계 만휴정까지 온 이유가 바로 이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단 말인가!

 

- 송암폭포 -

 

송암 폭포에서

 

겨울이 아니었으면

만휴정 계류가 너럭바위 가슴 안고

여름밤 은하수 쏟아질 듯 송암 폭포 수 십 길 소(沼)에 떨어지며 무지개 피웠을 터

한여름 더위는 물소리 좋겠지만

삭풍에 얼어버린 지금은 은백의 고요가 더 좋아라

 

 

 

보백당 김계행은 사림파의 영수인 김종직과 평생에 걸쳐 교유하였다.

이 인연으로 무오사화 때 어세겸(魚世謙), 성희증(成希曾) 등 10명과 함께 금부(禁府)에 갇혔다가

장형(杖刑)을 치르고 풀려났다.

 

이 일은 뒤에도 수시로 그를 괴롭히는 빌미가 되었는데,

심지어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금부에 끌려가 형벌을 치르는 곤혹을 겪기도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아한 만휴정

 

연산군 초기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 잡을 것을 몇 번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여 있다가

68세 되던 해(1498)에 풍산 사제(提)에 있는 집 곁에 서재를 짓고 ‘보백당(寶白堂)’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보백당이라는 이름은

“우리 집에는 아무런 보배가 없으니, 오직 청백의 마음가짐만이 보배일 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唯淸白]”라고 한

자신의 시구에서 따왔다.

 

김계행은 또 30대 젊은 시절부터 길안(吉安)의 묵계촌의 풍광에 심취하여 별장을 지었는데,

특히 71세 되던 해 송암(松巖)의 폭포 위에 지은 만휴정(晩休亭)은

“만년에 휴식을 취하다.”는 이름 그대로, 벼슬에서 완전히 물러난 후 은거하면서 자연을 벗삼던 장소였다.

 

만휴정 현판 뒤로 마루 안쪽 쌍청헌의 현판이 걸려 있고,

 

만휴정이란 이름은

이돈우(李敦禹)가 지은 “무진년 여름 선생이 조상의 시호를 계승한 때 김맹실, 김사행, 유계호와 더불어 차운하다.

(歲戊辰夏先生延諡時與金孟實金士行柳季好謹次板上韻)”라고 하는 시에

“관직을 그만두고 저녁에 물러나 앉았다(休官晩退坐).”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만(晩)’과 ‘휴(休)’를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극한 즐거움을 산수에 부치고, 행함과 그침을 천기에 따르며, 세상 밖에서 노닐며

세상사를 뜬구름처럼 가벼이 보았다.”는

보백당의 맑고 깨끗한 경지를 상상할 수 있는 명칭이다.

 

 

 

좌 우측 방문 위에는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내 집에는 보물이 없으며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

 持身謹愼 待人忠厚겸손하고 신중하게 몸을 지키고 충실하고 후하게 대하라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持身謹愼 待人忠厚

 겸손하고 신중하게 몸을 지키고 충실하고 후하게 대하라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내 집에는 보물이 없으며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

 

 

 

 

- 너럭바위 -

 

너럭바위에 새겨진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

만휴정 정자에서 바라보이는 계곡의 깨끗한 바위에 “寶白堂晩休亭泉石 “이라고 쓴 암각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문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가훈 등은

김계행의 청백리 사상을 시대적 교훈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6월에 다시 적다.

KBS 토일드라마 "태종 이방원"(2021년 12월 11일 ~ 2022년 5월 1일 = 총 32부작) 최종회 방영에서

만휴정과 위 사진 너럭바위와  사진 중앙 돌다리가 방송에 나와 반가움에 적는다.

 

만휴정을 떠나며

 

비록

만족하지 못해도 이 순간을 감사하라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것 없으니 이 또한 바람처럼 사라진다.

인연은

언제 오고 언제 가는지 아무도 모르니 이 순간은 이 순간대로 기억하라

혹여

더 좋은 날을 만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