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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청송) 2월의 방호정(方壺亭)

-퇴적암 절벽 위의 방호정

 

언제 : 2022년 2월 26일 토요일

어디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방호정로 126-26 

 

방호정(方壺亭)

 경북민속자료 제51호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51호로 지정된 방호정은

1619년(광해군 11) 9월 함안인 조준도(趙遵道. 1576∼1665)가 지은 정자로, 낙동강 상류 절벽 위에 있다. 

조준도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이다.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생모 안동(安東) 권씨(權氏)의 묘가 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도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水堂)’이라고 하였다. 

 

건물은 ㄱ자형의 평면 구조이며, 측면은 팔작이고 전면은 맞배지붕이다.

이준(李埈)·조형도(趙亨道)·권익(權翊)·신집(申輯)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講論)하고 산수(山水)를 즐겼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方壺文集)》의 판각(板刻)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학자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이 걸려 있다.

 

 

방호 조준도(1576~1665)는 청송 출신으로 퇴계 학맥을 계승한 유학자로,

그는 1627년 정묘호란 때 사재를 털어 군수자금을 보탰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운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산소 아래 정자를 짓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했는데,

지금 경북도 민속자료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는 방호정이 그것이다.


기존 암석이 잘게 부서진 것을 퇴적물이라 하고, 퇴적물이 쌓여서 굳은 암석을 퇴적암이라 한다.

퇴적물은 주로 흐르는 물에 의해 이동하다가 흐름의 속도가 느려지는 곳에 쌓인다.

이후 지하 깊이 묻혀 딱딱한 암석이 된다.


방호정의 퇴적암 :사암, 이암, 셰일 등으로 구성된다.

원래는 퇴적물들이 수평으로 쌓였으나, 암석으로 고화된 이후 지층이 융기하면서 기울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울어진 지층의 상부가 편평하게 침식되었고,

지층이 침식된 면 위에 방호정이 놓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구불구불 감입곡류천

감입은 물체에 형상을 새겨 넣는 것을 의미하고

곡류는 물이 구불구불 휘어진 상태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방호정 감입곡류천은 평야 지대를 자유롭게 흐르던 하천이 땅의 융기로 생긴 경사를 따라

원래의 구불구불한 모양을 유지한 채 흐르며,

마치 조각칼이 암석에 형상을 새기듯 하천 바닥을 파내어 만들어졌다.

 

 

 

 

 

 

 

 

 

 

다리를 건너 방호정으로 들어간다.

 

 

 

 

 

뒤에서 본 방호정 

 

 

 

 

 

 

 

 

 

 

 

방호정 자료를 찾다가 tk게릴라 뉴스에 방호정 사진이 아름다워 모셔왔다.

 

 

사실 

이번 청송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바라 방호정이다.

당연히

카메라 렌즈의 영향이 있었지만,

이렇게 풍광이 아름다운 곳의 정자를 찾아 거닐며 앉아 생각에 젖어 이곳에 왜 왔는가?를 물어보고

아직 찬기운 머금은 바람맞으며, 푸른 하늘 떠가는 구름과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의 여울지며 바삐 달리는 것들을 보며

나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렇다.

사진에서 본 아름다운 방호정 마루에 앉아보려 했는데

나그네가 다리 좀 쉬어갈 마루가 없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