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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영주) 내 마음을 두고 온 2021년 부석사의 만추(浮石寺 晩秋)

 

부석사(浮石寺)

 

불교에서 "안양"은

마음을 편하고 몸을 쉬게 함 혹은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이다.

정토는 부처와 보살이 사는 곳으로, 번뇌의 구속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을 말하니 

안양은 극락이라 안양문은 극락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부석사이다.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으로

신라 문무왕 16년(6760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펼쳐지는 은행나무길 따라 계단을 올라 천왕문을 지나고 범종루를 지나 다시 숨찬 계단을 올라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에 닿는다.

 

스치며 바라보는 기둥 하나, 문창살 하나에도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 쉬며, 모자람이 없는 균형과 충분하게 절제된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신비로운 설화와

무량수전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 보물 등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는 곳!

 

2021년 10월 31일

눈물나게 고운 부석사 만추를 바라보며

바람에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오색 단풍과 하염없이 날리는 낙엽에도

내 마음도 함께 담는다.

 

 

절간에 곶감이 달려 정감 어리고

건물 양쪽에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된 덧문과 창살이 그리고 안방은 가리게로 가린

어렸을 적 우리가 드나들던 방을 연상케 한다.

 

 

석축(石築)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비탈을 깎고 평지를 고르면서 만든 것으로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잘 짜 맞추어 쌓은 것이 특징이다.

 

 

범종루를 지나

이제 안양루 높은 계단을 바라만 보아도 목이 마르다.

물 한 모금이 빈 속을 자극한다.

 

 

- 부석사 현판이 걸린 안양루 -

아빠와 두 딸이 무량수전으로 올라가는 안양루 계단을 바라본다.

계단을 올라 안양문의 가랑이 사이를 고개 숙이며 올라서니 무량수전이 눈앞에 버티고 서 있다.

불자가 아니어도 스스로 고개를 숙이어 법당을 찾는 기본 예의를 저절로 갖추며

무량수전을 올려 볼 수 있게 만든 기법이 훌륭하다.

 

 

 

안양루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있고,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 안양루 내부 -

안양루의 내벽엔

비운의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가 있다는데 내부를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움에 시만 적어본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많은 사람 중 스님 네 분이 모습이 부석사와 잘 어울린다.

저 스님들이 머무는 절에도 부처가 있을 터인데, 가슴에 어떤 기원을 가지고 부석사를 왔을까?

나처럼 부석사 단풍 보러 왔다가 부처님께 절을 올리려는 것일까?

 

 

 -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

 

- 무량수전 편액 -

 

극락세계에서는 수명이 무량하므로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한다.

 

편액(扁額)은 통상 건물의 얼굴로 불린다.

그래서 예부터 당대를 대표하는 명필이나, 임금 등 고위직에 이른 권력가가 직접 쓴 글씨를 판각해서 걸어왔다
무량수전에 걸린 ‘무량수전(無量壽殿)’ 편액이 바로 고려 공민왕이 쓴 어필(御筆)이다.

이 편액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략으로 인해 안동으로 피난해 있을 당시에

안동에서 가까운 영주 부석사를 찾아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다시는 이러한 침입이 없도록 막아줄 것을

기원하는 한편 부석사의 무량수를 비는 뜻’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금의 글에 낙관이 없었던 관례에 따라 이 편액에도 낙관은 없으나,

어필을 상징하는 금자(金字)로 되어있다.
- 출처 법보신문 -


 

배흘림기둥

배흘림기둥은 단면이 원형인 원기둥 중

기둥의 허리 부분을 가장 지름이 크게 하고 기둥머리와 기둥뿌리로 갈수록 줄인 항아리 모양의 기둥을 말한다. 

서양권에선 엔타시스(entasis)라고 부른다.

 

 원근과 지붕의 양감/무게감에 의해 기둥이 밑에서 보는 사람에게서도,

크기 비교 대상인 지붕에 대해서도 멀어 얇게 보이고, 무거운 지붕에 의해 눌리는 느낌이 있어 약하게 보이는

지붕 중간을 보강함으로써 건축물이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 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 -

 

 

 

 

- 국보 제45호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

 

 

 

 

 

이 한 장의 사진 속에

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 -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 보물 제249호 부석사 삼층석탑이 있다.

 

무량수전 좌측 후방으로 돌아가면

그곳에는 부석사라는 절의 이름을 가져온 부석(浮石)이 있다.

 

 

- 부석 - 

 

 

 

- 보물 제249호 부석사 삼층석탑 -

 

- 보물 제249호 부석사 삼층석탑과 무량수전 -

 

 

 

천 년 고찰 부석사 무량수전은 

나이는 들어 노색이 완연하나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으로

함부로 내딛는 내방객들의 발걸음 소리에 안에 모셔진 부처님께 들릴까 두렵다.

 

세월의 내공으로 매력있는 미소와 묵언으로 내방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천 년 지나며

어찌 비바람에 천둥번개가 없었을까만,

멀리 앉은 소백산이 또한 묵언의 벗이 되어 무량수전을 지켜보고 있다.

내 마음이 극락이면

내가 어디에 거하던 그곳이 극락이 아니던가!

 

부석사 오면

무량수전 옆 삼층석탑 부근에서 부석사 가람을 넣고 소백산 능선을 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아간 날의 날씨는 허락을 해 주지 않아 한 번도 소백산 능선을 담지 못해 그 절경을 보려고

아래 사진을 소박한 마음으로 모셔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