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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유네스코 세계유산 : 사적 제3호 - 화성(華城)의 봄 - 장안문(長安門)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적 제3호 - 화성(華城)의 봄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정하지만,

조선시대 당시 임금이 한양에서 부터 수원으로 오실때 가장 먼저 맞이하는 문이 북문(장안문)이었기 때문에

북문을 정문으로 정했다.


 1794년 2월 28일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완공하였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장안문은 서울의 국보 제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서안시)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1920년대 수원시의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렸으며,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화홍문

화성의 북쪽 수문이며, 남쪽 수문은 최근에 다시 세웠다.










화홍문 - 방화수류정 - 동북포루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을 출발 이제 명실공히 수원화성의 대문인 장안문으로 향한다.



북동적대에서 본 풍경



북동적대

장안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2개의 홍이포가 설치된 북동적대와 북서적대가 있다.







장안문(長安門)

서울 남대문 보다 더 크고 위용이 있다.

장안문 일몰





장안문(長安門)

옹성 홍예 위에는 오성지(五星池)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다섯 개의 구멍을 갖춘 큰 물통으로,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국보 제1호인 남대문에 비해

옹성·적대와 같은 남대문에는 없는 새로운 방어용 시설을 갖춘 점이 독특하다.


1920년대 수원시의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렸으며,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장안문 야경

 




옹성 내에서 담은 장안문(長安門)

 

 







장안문 2층 누각 내부



성 안에서 담은 장안문





장안문 옹성(長安門 甕城)

장안문은 화강암으로 세웠는데, 옹성은 벽돌로 쌓고 누각을 올렸다.






 장안문

 





북서적대

수원화성은 장안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북동적대와 북서적대가 위치한다.


북서적대 홍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