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시인 박인환 문학관
언제 : 2019년 10월 26일 토요일
어디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415-1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가슴에 있네"
아마도
대한민국 중장년은 이 시와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성 통기타 가수 박인희 씨의 감성적인 목소리로 부른
"세월이 가면"
이 명곡은 시인 박인환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작품이다.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박인환문학관을 방문했으나 월요일 휴관이라 보지 못하고
먼 거리를 찾아간 허탈감에 한계령 넘어 낙산 해변에서 눈 시리게 시퍼런 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걷다가 귀가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천지가 단풍으로 물든 가을 깊은 날 다시 박인환문학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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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문학관
지금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며 자세히 보니 시인의 빈 가슴에 앉아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사진 찍어도 좋았을 것을
왜 그날은 저 품을 보지 못했는가!
그의 대표적인 시
"세월이 가면" 그리고 "목마와 숙녀"가 문학관 유리창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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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박인환 문학관을 들어서니
뜻밖에도 옛 명동 거리를 재현해 놓았는데, 너무 어둡고 협소하며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너무 짧은 거리였다.
이왕
명동 거리를 재현하려면
그 시절 주막 풍경과 양주 카페 그리고 서점 등을 보다 실감나게 표현했다면 좋았을 것을
서늘한 바람 부는 골목길을 지나온 느낌이다.
최소한 문학관 내에는 박인희씨의 "세월이 가면" 노래가 잔잔하게 흐르고.
"목마와 숙녀"를 읽던 박인희씨의 차분한 목소리가 있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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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명동 거리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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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
박인환이 경영했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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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옥
파전에 막걸리를 즐겨 마시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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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카페 포엠
박인환은 특별히 위스키 죠니워커를 좋아했다더만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명동성당 쪽으로 비스듬히 뻗어간 명동길을 걷다보면
세월의 이끼가 낡고 앙상하게 묻어나는 3층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의 2층에는 놀랍게도 딜레탕트 박인환의 흔적을 기억이라도 하듯 「세월이 가면」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바로 이곳이 6.25 전쟁후 명동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명동싸롱」이었다
박인환은 이곳에서 문우들과 어울리다가
계단을 내려와 죽음이 휩쓸고 간 세월의 쓸쓸함을 술로 달래기 위해 맞은편 대폿집
(은성: 당시 새로 생긴 술집이었다.)으로 향했다.
동석했던 가수이자 배우인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자
끝내 빼는 바람에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박인환의 친구 이진섭이 제안을 했다
"인환이 니가 시를 쓰면 내가 곡을 붙이겠다."고
그리고
시가 나오자
이진섭은 즉석에서 샹송풍의 곡을 붙여 흥얼거렸다
이렇게 「세월이 가면」은
명동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누구나의 가슴 속에 있지만 미처 명확한 단어로 규명하지 못한
"그 눈동자와 입술"을 발굴해 냈다
세월이 가면
If time goes by
- 박인환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Now, though I forgot your name
The eyes and the lip Still remain in my heart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밖 가로등불의 그 밤을 잊지 못하지
Even when it winds And it rains
I can't forget the night With the street lamp outside of that glass-window.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의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Love goes by but memories remain
Lakeside in the summer days, the park in autumn
On the bench Leaves fall The leaves turn to the soil, Our love is covered with the leaves
Though it fades away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Now though I forgot thy name The eyes and the lips Still remain in my heart
Still remain in my cool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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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탄생 시킨 술집 "은성"
배우이자 탤런트 최불암 선생 어머님이 1950~60년대 운영하시던 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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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 대하여 강계순은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p. 168-171)
1956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포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 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 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먼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히 얘기하고 싶었다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쓰고나서 한동안 흥분으로 세월을 보냈다
부지런히 원고도 써서 몇 푼 원고료를 받지만 집에 떨어진 쌀을 살만큼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하염없이 쓸쓸한 얼굴로 명동 백작으로 불리던 이봉구와
‘신라의 달밤’을 잘 부르는 임궁재 등과 함께 국수 한 그릇에 술잔을 비우곤 했다.
불후의 명곡 '세월이 가면'이 완성 되던 날
이진섭과 함께 어디서 그렇게 낮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붉어가지고 당시 단성사에서 상영 중인
롯사노 브릿지와 케서린 햅번 주연의 '여정'을보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못 가고
'세월이 가면'을 애처롭게 술집에 앉아 불렀다
그리고
사흘 후
친구인 김훈한테 자장면 한 그릇을 얻어먹은 박인환은 술에 만취되어 집에 와 잠을 자다가
31세로 아까운 인생을 마감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돈이 없어 못 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은 채 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눈을 감지 못하여
부음을 듣고 맨 먼저 달려온 친구 송지영이 감겨주었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못 사주었다면서
김은성이 조니워커 한 병을 죽어 누워 있는 박인환의 입에 부었고 다들 울었다
그의 상여 뒤로 수많은 선후배들이 따랐고 공동묘지까지 따라 온 친구 정영교가 담배와 조니워커를
그의 관 위에 부어 주었다
모윤숙 시인이 고인의 시를 낭송 하였고 친구인 조병화 시인이 조시를 읽었다
인환이 너 가는구나
대답이 없이 가는구나
너는 누구보다도 멋 있게 살았고 멋 있는 시를 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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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이 운영하던 서점 마리서사 앞에서(1947년)
시인 임호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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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정숙과 결혼(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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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피난지에서 부인 이정숙과 장남 박세형과 함께
(1951년 26세)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 박인환
한盞(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生涯(생애)와 木馬(목마)를 타고 떠난 淑女(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목마)는 主人(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甁(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면 暫時(잠시) 내가 알던 少女(소녀)는 庭園(정원)의 草木(초목)옆에서 자라고
文學(문학)이 죽고 人生(인생)이 죽고 사랑의 眞理(진리)마저 愛憎(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歲月(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孤立(고립)을 避(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作別(작별)하여야 한다
술甁(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燈台(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未來(미래)를 爲(위)하여
우리는 凄凉(처량)한 木馬(목마)소리를 記憶(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稀微(희미)한 意識(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個(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盞(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雜誌(잡지)의 表紙(표지)처럼 通俗(통속)하거늘
恨嘆(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甁(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박인환 문학관 앞에 세워진 목마
시인. /박인환
1926년 강원도 인제(麟蹄) 출신
곧 상경하여 덕수공립소학교 졸업 - 1939년 서울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했으나 1941년 자퇴하고,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했다.
그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945년 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그 뒤 상경하여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를 경영하며 김광균(金光均) 등과 친교를 맺었다.
<<자유신문》 《경향신문》 등의 기자생활을 하였고,
1949년 김병욱(金秉旭)·김경린(金璟麟)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하였으며,
김수영(金洙暎)·김경린·양병식(梁秉植)·임호권(林虎權) 등과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냈다.
1950년 피난지 부산에서 <후반기(後半紀)> 동인들과 함께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55년 그의 작품이 망라된 《박인환시선집》을 냈으며,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1956년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묘지는 망우리에 있다.
작고하기 1주일 전에 쓰여진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려지고 있다.
1976년 장남 세형(世馨)이 《목마와 숙녀》를 간행하였다
무엇을 혹은 누구를 좋아하면 그와 어울린 모든 것이 좋듯
올가을 여행은 유독 기분이 좋다.
그 이유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시인 박인환문학관을 둘러볼 수 있었음이라.
시인이 작고한 나이가 서른 하나
지금
내 나이 예순여덟을 지나는데
젊은 나이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주옥 같은 시어들을 창조할 수 있었음은 가히 천재였으리라
올가을
혹은
다음 가을에도
나는 시인의 주옥같은 시 "세월이 가면"을 혼자 읊조리며
가을 속을 거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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