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애사(端宗哀史)
8. 단종의 절규 서린 관풍헌(觀風軒) 과 자규루(子規樓)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언제 : 2018년 9월 26일 수요일
어디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61
떠나면 또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귀가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분명 고속도로는 체증이 심할 것이라 늦은 오후에 영월을 출발하기로 한다.
오늘 첫 일정은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과 낙화암이다.
관풍헌은
단종이 1457년 6월 28일(음) 청령포에 도착하여 유배 생활하던 중
그해 10월 영월 서강이 범람하는 큰 홍수가 나
단종은 청령포에서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겨 지내는데,
경상도 순흥에서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이 사전 발각되어 노산군에서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어
그해 10월
이곳 관풍헌에서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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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하러 시내를 배회하다 만난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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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보름달과 영월대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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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동강대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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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숙취로
시원한 해장국집을 찾았으나
아직 영업하지 않아 중앙시장 국밥집에 있는데, 지난밤 술집에서 만났던 4명이 식사를 하러 오네.
국밥도 반쯤 남기고 관풍헌으로 걸음을 옮긴다.
관풍헌 정문은 공사 중이라
자규루 앞 사잇문으로 관풍헌에 들어서니 관풍헌과 맞닿은 건물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다.
먼저 자규루에 올라서 관풍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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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규루(子規樓)
단종은 이 누각에 자주 올라가 자규시를 지었다고 한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두견새를 가르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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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어제 자규사(子規詞)
月白夜蜀魂啾 (월백야촉혼추) 含愁情依樓頭 (함수정의루두)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제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었노라
爾啼悲我聞苦 (이제비아문고) 無爾聲無我愁 (무이성무아수)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도다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것을
寄語世上苦榮人 (기어세상고영인)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신막등춘삼월자규루)
세상에 근심 많은 분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춘삼월 자규루에는 오르지 마오
- 자규루에 걸린 현판 -
자규시(子規詩)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한마리 원한 맺힌 작은 새가 궁중에서 나온뒤로
외로운몸 짝이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혜맨다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밤이가고 밤이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가고 해가와도 한은 끝도 끝도 없구나
聲斷曉岺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血淚春谷落花紅 혈루춘곡낙화홍
두견새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엔(재) 달빛만 희고
피눈물 뿌린듯한 봄 골짜기에 떨어지는 꽃만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何奈愁人耳獨聰 하나수인이독총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듣지 못하는지
어쩌다가 수심 많은 이사람이 귀만 홀로 밝아 다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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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풍헌(觀風軒)
영월 동헌의 객사 관풍헌과 그 앞의 정자 자규루가 단종의 흔적을 말하고 있다.
관풍헌과 살을 맞대고 있는 건물의 명칭은 난데없는 ‘약사전(藥師展)’ 현판이 걸려 있다.
약사전이란
절의 부속 건물인데, 관풍헌 일대가 사찰 소유란다.
내가 찾아간 추석 연휴는
약사전 옆의 망경헌, 그리고 관풍헌의 솟을대문도 한창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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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풍헌과 약사전
영월에서 가장 역사적인 건물은 관풍헌인데,
관풍헌 바로 뒤에는 커다란 모텔 간판이 관풍헌의 역사적 의미와는 너무 달라
모텔 간판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관풍헌이 조계종 포교당이라던데,
애처롭게 죽임을 당한 단종에 대한 국민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절의 부속 건물인 약사전과 관풍헌이 무슨 관련이 있어 버젓이 살을 맞대고 있단 말인가?
제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이젠
못 살던 때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선조들의 역사와 유물이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는
이미 지났는데도
위정자들의 역사 인식은 아직도 후진국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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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풍헌 마당에 나와 자리를 깔고 한양을 향해 절을 올린 다음
사약을 받았을 17세 단종을 그려본다.
1457년(세조 3) 10월 24일
단종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먹고 또 공생 화득이 목을 졸라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실록은 1457년 10월 21일 “노산군이 자결했고, 예로써 장사지냈다”고 했다.
장릉지(莊陵誌)의 경우
“세조 3년 10월 24일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공생(貢生)이 활끈으로 노산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노산군의 옥체는 청령포의 강물에 던져 버린 것을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거두어
영월군 북쪽 5리쯤의 동을지에 매장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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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풍헌(觀風軒)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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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월 지도
관풍헌 마당에서 단종이 숨을 거두자
단종을 모시던 종인과 시녀들은 모두 낙화암에서 동강으로 뛰어 자결하였단다.
그래서
그들의 흔적을 찾아 숙연한 마음으로 영월 동강 낙화암 가는 길인데,
공원의 솔숲의 아침 솔향으로 기분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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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
단종이 숨을 거두자
단종을 모시던 종인과 시녀들은 모두 이곳 낙화암에서 동강으로 뛰어 자결하였다는데,
암벽 위에 금강정이란 누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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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과 금강정
사진 좌측 영월 동강 암벽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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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낙화암
동강이 흘러 사진 끝 청색 다리에서
청령포를 돌아 나온 서강과 합수되어 "남한강"이란 이름으로 충북 단양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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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은
백제 의자왕과 삼천 궁녀의 부여 백마강의 낙화암만 있는 줄 알았었는데,
영월 동강에도 낙화암이 있음을 알았다.
사실
종인과 시녀들의 죽음은 그때는 대수롭지 않았을지라도,
돌이켜보면
그 죽음은 매우 의로운 죽음이었다.
1453년(계유년)
세종 대왕의 차남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하여
세종대왕과 문종(세종의 장남)의 고명 대신이었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
바로 계유정난이다.
결국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으로 인해
조카(단종)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세조)이 되었으며, 단종은 일단 상왕으로 물러났다.
상왕으로 물러난 후
사육신의 단종 복위 계획이 실패하자,
단종은 아예 상왕에서 폐위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후
순흥(지금의 영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과 일행의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노산군은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어
1457년 10월 사사되었다.
사약을 받은 후
224년이 지난 1681년(숙종 7년)에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다 보니 그간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없어 지금은 정확한
역사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청령포는
단종이 약 2개월 유배 생활했던 곳이고,
정작 단종이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관풍헌 앞마당이다.
- 다음은 단종애사의 마지막 편으로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방문한다. -
영월 낙화암 민충사 순절비와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또 하나의 애석한 죽음을 추모하는 비석,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라 쓰여 있다.
뒷면에는 16살 관기 ‘경춘’의 슬픈 사연이 한문으로 적혀 있다.
사실
관기 ‘경춘’의 사연은
단종애사와 관련이 없어 영월 여행에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일부러 싣지 않았는데,
2019년 1월 24일 다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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