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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북 여행

(익산) 사적 제318호- 김대건 신부와 나바위 성당

 

사적 제318호- 김대건 신부와 나바위 성당

 

 

 

 

언제 : 2018년 8월 13일 월요일

어디 :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9-2

 

 

 50초반에 한 친구를 만나 가깝게 지냈는데,

고향은 전북 익산인데 익산보다 다리만 건너면 충청도 강경이라 강경에서 학교를 다녔다며

나바위성당에 대해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나바위성당을 찾아가기 위해 영등포역에서 07:27 목포행 무궁화 열차를 타고

 10:10 강경역에 내렸다.

 

오늘같은 날은 구름이라도 끼어 햇볕을 막아주면 좋겠더만, 얼씨구 좋다는 듯 벌써 숨이 턱 막힌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까지 이동하였으나 시간표도 없어

 역전 앞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덥지 않으면 걸어가도 되는 곳을 택시를 타고 나바위 성당에 내리니 정오가 가깝다. 

  

바위 성당은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중국에서 조선 헌종 11년(憲宗 - 1845)에 조선인 처음으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블뤼신부와 함께 황산나룻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6년에 지은 건물이다.

 


 

 


07:27

영등포역을 출발

10:10

강경역에 도착했으니 2시간 43분이면 KTX로는 서울에서 부산에 닿는 시간이다.




 

무궁화열차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옛날로 말하면 완행열차가 되어 먼저 보내야 할 기차는 다 보내고 철커덩 철커덩 달리는 무궁화열차의

차창으로 내다 보는 끝없는 안성과 논사 초록 들판 그리고 이글거리는 태양의 하늘

다행히

 냉방 시설은 잘 되어 다행스럽다. 

 

 

 


11:30

친철한 택시 기사는 성당 앞에 내려 주며 나올 때 필요하면 자기를 불러라며

명함을 건넨다. 


 날 좋으면

기차를 대절하고 혹은 단체버스로 성지순례하는 사람이 대단하다는데,

올 여름 워낙 더위가 최고점을 넘나드니

순례자들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 한군데 공사를 하고 있는데, 2025년 계획도를 보니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겠다. 

 ▽

 


나바위 성당은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있는데,

"화산"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송시열이 조그만 동산에서 바라본 금강과 주변 풍경이 절경이어서

지은 이름이며,

조선인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께서 이 화산 한 곳에 첫 발을 딛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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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성당이나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본체 양 옆에 회랑이 있어

더욱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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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중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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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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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가운데 기둥은 옛날 남자와 여자의 자리를 구분하였다고 함

 

  

제단  

아직 종교를 갖지 못하였음에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무언가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운에

두손을 모아 기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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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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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에서 본 내부 모습

천정 가까이는 팔각창이 있고 그 아래 아치형 창문과 유리창엔 한지에 예수님의 고난을 담은 그림들이

 붙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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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 마당 예수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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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자는 내부에 들어갈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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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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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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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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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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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의 상

 

 

 

 

 

 


 

1845년 10월12일 나바위에 입국한 김대건신부는

다음해인 1846년 5월14일 서해 해로를 통해 최양업과 이 메스트로신부를 영입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연평도 조기잡이배에 접근해서 편지를 전달하고 돌아오다가 순위도에서 체포되었다.

김대건 신부는 옹진, 해주감옥을 거쳐 서울로 압송되었다.


조정은 강경한 쇄국정치를 주장하며

김대건신부를 통외(通外)의 위험분자로 몰아서 마침내 군문효수형을 내렸다.

1846년 9월16일

한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서울 성 밖 새남터에서 김대건신부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참수치명했다.

(현재 용산구 서부이촌동 한강 철교 옆 - 복자의 집 기념관이 있음)
김대건신부는 처형을 받기에 앞서

 “여러분 나의 말을 들으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교제한 것은 오직 우리 교를 위하고 우리 천주를 위함이었으며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는 것이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천주를 믿으시오!”라고 믿음과 신념에 찬 말을 외치고

외연하게 순교의 피를 흘렸다.

1836년 12월, 15세의 나이로 조국을 떠나 마카오에서 사제 수업을 마치고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1845년 1월 선교사들의 입국통로를 개척하고

그들이 거처할 집을 마련코자 서울에 입국하였다. 그리고 1845년 4월 선교사를 모셔 올 목선을 구입하여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

그 해 8 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8월 31일,

11명의 교우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타고 갔던 배편으로 귀국 길에 올라,

풍랑으로 제주도로 떠내려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끝에

 1845년 10월 12일 밤 8시경 강경에서 좀 떨어진 ‘황산포 나 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다.


나바위로 정박한 이 일을

페레올 주교는 그의 편지에서 ‘하느님의 섭리’라고 하였다.  

 

 

 △

화산의 끝자락에 넓은 바위가 있어 나바위라 불린다.

금강의 강변에 자리한 화산은 산 밑 서북쪽으로 물이 닿았고 갈대숲이 우거졌다.

이곳에 나바위 성당이 설립된 후 초대 대구 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가 해마다 5 ,6월이면 연례피정을

화산 정상에 있는 나바위에서가졌다.


개인피정 장소로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를 감탄하며 피정을 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베로모렐 신부는 1915년 정자를 지어드렸다.

이 정자를 드망즈 주교는 망금정이라 이름붙였다. (望錦 바랄망, 아름다울금 )
금강을 바라보며 세분 성직자의 아름다운 영혼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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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 천정 대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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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삼존불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과 망금정은 큰 바위들로 이뤄진 화산 몰랑에 세워졌는데,

큰 바위에는 아주 오래된 삼존불이 모셔져 있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예수를 모시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은 매우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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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몰랑은 이렇게 큰 바위들로 이뤄져 있어 조선 송시열은 이곳에서 금강을 내려다 보며

절경이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암 괴석이 많은 곳에는

절이나 암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곳에도 불교 시설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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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일행이 도착한 지점을 가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가자 마자 수탉바위

 


화산을 내려오면 십자가의 길이다.

지금은 완전한 농토이지만, 아주 옛날에는 이곳까지 금강이 흘러 주변엔 아직도 갈대들이 자란다.

이곳 어느 한곳이 김대건 신부 일행이 도착한 곳이다. 

 

 





 

 

 

  

김대건 신부 일행의 착지인 십자 바위

 


후면에서 본 나바위성당

▽  



올여름은 

우리나라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04년 이래 사상 최고의 무더위이며 아직도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인데

나바위성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정오에서 오후 2시까지였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로 심판을 당하는 듯한 말세기적 현상을 보면서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아도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더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은

 결코 불의 심판을 피할 것이라는 얄팍한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단지

그렇게 사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오늘

이곳 나바위성지에 걸음한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김대건 신부 일행이 과연 화산 어느 곳에 내렸다는데,

 그곳을 보고 싶었고,

옛날엔 화산 밑까지 배가 닿았다는데 과연 화산과 금강과의 주변 형세는 어떠한지 그리고 50초반에 만난

친구의 고향이 그곳이라는 것이었다.


그간

김대건 신부가 조선인 최초의 신부이며, 순교자라고 어린날 학교에서 배웠던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 곳에서 무덤까지 다녔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면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충남 당진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가 신부로 반도에 첫발을 디딘 이곳 나바위 성지,

김대건 신부가 체포 당한 백령도,

순교를 당한 새남터 성지

그리고

그가 순교를 당한 후

1846년 9월 16일 이민식 미리내 청년이 서울 한강 새남터 형장에서 관헌 몰래 김대건 신부 시신을 모시고

야간을 이용 200리 길 걷고 애덕고개를 넘어 미리내에 안장한 

안성 미리내 성지를 찾아 보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불편함에도 찾아 다니게 지켜 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열심히 다른 곳도 찾아 다닐 수 있게 건강을 지켜 주시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대중교통 오시는 방법 


열차 

강경역 하차 → 대흥시장 정류장에서 333번, 50-1번 버스 → 화북 정류장에서 하차 (약 15분소요)
* 강경역에서 택시 이용시( 시간 : 5분), 요금 : 5000원
* 강경역에서 나바위성지까지 도보 (약 한 시간 소요)


고속버스

서울남부터미널 → 익산고속버스터미널(약 2시간 40분 소요) → 333번 버스를 타고 화북정류장 하차
(익산에서 버스로 1시간 가량 소요되므로 서울에서 오실 경우 기차가 편리.)

부산종합버스터미널 → 익산고속버스터미널 (3시간30분 소요) → 333번 버스를 타고 화북정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