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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부산+경남 여행

(통영) 사적 제402호 -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적 의의

 

사적 제402호 -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적 의의


 

 


 

새벽

통영 남망산 동백

걷는다

 

 

밤새

멍게처럼 달라붙은

붉은 상념

 

 

스러지는 이슬처럼 

산화

시켜

 

 

발걸음

가벼이

중앙시장 지나

 

 

세병관 기둥에 기대어

얘기 듣는다

 

 

에메랄드

통영

노래 부른다


 

 


 

 

 △

삼도수군통제영 전경

 






느티나무

둘레는 5m로서 수령은 400년 이상 추정되며, 통제영 창건 당시 심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음

 

 

백화당(百和堂)

선조 36년(1603)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중국 사신 등의 손님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裨將)청인데, 비장은 지방장관 및 중국사진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도 맡았으며 지방장관이 임의로 임명하였다.

 

 

 




마당에 물 저정소

 

 

야장장(冶匠房)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 및 각종 철물을 주조하던 곳으로 19세기 초기에는 연마장, 도자장 등으로 구성된

연마방이 별도로 있었다.

 

 

 




선자방(扇子房)

단오절에 임금이 하사하던 부채를 제작하였던 공방으로

 부채의 형태에 따라 단선과 접선 그리고 별선으로 구분하였다.

1894년 "통영지"에

진귀한 공물 중 부채가 800개로 기록되어 있어 통영에서 대규모로 부채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운주당(運籌堂)

인조 23년(1645) 제21대 이완(李浣) 통제사 때 경무당과 함께 창건하였다.

운주는 "운주유악지(運籌唯幄之)" 중에서 나온 말로 군막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것을 말함이니,

 즉 통제사가 통제영 군무를 보는 집무실이다.

운주당 내부 

 

 

 

 

 

 




 




출입문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적 의의

1593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산섬에 본영이 설립되었고 1604년 두룡포에 정착한 이 후,

1895년 갑오개혁으로 패영되기까지 300년 이상 존재하였던 통제영은 조선의 군사력을 결정적으로 입증해 주는

 조선 최대의 병영이자 군사 제도였다.

 

백화당과 세병관만으로 처음 건설이 시작된 후 통제영은

조선 후기 기록인 "통제영지" 상에는 110여 동의 건물이 열거된 대형 군사계획도시로 꾸준히 발전했다.

이순신의 혼이 깃든 충렬사와 힘들게 임진왜란을 이겨낸 증표 명조팔사품

또한 오늘날 한국 전통 공예의 대명사가 된 12공방 등 통제영이 보여주고 지켜낸 것은 300여 년이 지나

평화와 국토 수호의 의지 그리고 조선의 자존심과 문화였다.

 

 

 







 

 




사부유서(賜符諭書)

보물 제1564-6호 - 선조 30년(1597) - 현충사소장

1597년 7월 23일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되면서 받은 유서이다.

이순신은 칠천량 해전으로 흩어진 조선 수근을 수습하기 위하여 남해안 연안을 가는 중

 8월 3일 진주 수곡에서 이 유서와 기복수직교서를 함께 받았다.

 

 

충무공 증지교지(忠武公 贈諡敎旨)

보물 제1564-12호 - 인조 21년(1643) - 현충사 소장

이순신이 전사한 지 45년 만인 1643년에 이순신의 생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지이다. 시호는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 또는 덕이 높은 선비의 사후에 내린 호이다.

 

 

전함도(戰艦圖)

작자 미상 - 조선후기 추정 인천시립박물관  소장

삼도수군통제사 예하 군선들을 통제영 앞바다에 집결시켜 훈련하는 모습을 그린 10폭병풍,

해진도,  수조도, 포진도라고도 하며, 진의 형태가 한자인 첨자와 같다고 하여 첨자도라고도 한다.


 

 △

통영지도


통제영전경도 

 

 

살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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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한당(得閑堂)

"휴식을 얻는 곳"이라는 뜻으로 통제사가 휴식을 취하던 곳

 

 

 

 

 


 △

읍취헌(揖翠軒)

통제사가 풍경을 조망하며 휴식을 취하던 곳

 

 

 △

황간발(篁間髮)

이 일대가 대나무 숲이었다고 하는 작은 정자

 

 

 




 △

의두헌(依斗軒)

1805년 제 153대 류효원 통제사 때 세웠던 작은 정자이다.

 

 

 △

육의정(六宜亭)

정조18년(1794)에 제148대 이득제(李得濟) 통제사 때 세웠던 정자

 

 

 

 

 

 △

통제영 내아군과 남망산 공원


 △

세병관과 통영항

 

백화당과 12공방

 

 

삼도수군통제영

객사인 세병관을 중심에 두고

좌측에는 내아군을 두어 통제사 근무처와 살림집으로 사적공간을 두었고,

우측에는 백화당과 12공방을 두어 손님을 접대하고, 병사들의 무기와 진상물품을 만드는 공간을 두었으며,

내아군 후면에는 통제사가 바다를 전망할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두어

명실공히

통영은 이렇게 조선조 유일한 "계획군사도시"로 출발하여 꾸준히 발전했음을 볼 수 있는

교육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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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남망산 이순신장군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