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제58호 -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언제 : 2018년 1월 2일 화요일
어디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후산길 103
자미화(刺微花)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명승 제58호 명옥헌 원림을 찾아가는 날은
새해들어 둘째날.
마을 밖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마을에 들어서니 조그만 저수지에는 얼음이 얼었고, 저수지 뚝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왕버들 너뎃그루가 오돌오돌 떨고 있다.
자미화의 농염함을 보려면 당연히 여름에 찾아야 하지만,
꽃의 농염함보다 더 색정적인 몸매의 미끈함을 보려고 일부러 한겨울에 명옥헌에 온 것이다.
명옥헌(鳴玉軒)이란
계곡물이 흘러 하나의 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자미화 = 배롱나무꽃 = 목백일홍 = 간지럼나무
마을에 들어서니 오른편에 얼음이 언 조그만 저수지 둑에 왕버들 너댓그루가
먼길을 왔다며 맞이한다.
마을 곳곳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일손이 부족하여 감을 따지 못했다며 아주머니 두 분께서
마음대로 따 먹으란다.
명옥헌 가는 길 안내판
조그만 대나무 숲 지나니
얼음이 언 연못 주변의 배롱나무 사이로 명옥헌 지붕이 두 눈에 딱 들어온다.
여름철이었다면
온갖 애교를 피우며 나그네를 반겼을 자미화가 나신이라 창피한지 몸을 움추리고,
산허리에 선 명옥헌이 담담히 나를 반긴다.
명승 제58호 명옥헌 원림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정원이다.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만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 명옥헌(鳴玉軒)이라고 한다.
주위의 산수 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자연에 순응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반영한 전통원림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순천 송광사 대웅전 앞 희뿌연 살결의 자미화는 나그네 새벽잠을 설치게 하더니,
안동 병산서원 울퉁불퉁한 굵은 가지의 자미화는 남성스러워 마음에 들었는데,
담양 명옥헌 자미화는 비스듬이 누운듯 요염한 자태로 나그네 발길을 잡는다.
자미화 잔 가지 사이로 보이는 명옥헌이 이를데 없이 그득하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로 소쇄원의 중심건물인 광풍각과 동일한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호남 지방 정자의 전형이다.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 수도 있다.
명옥헌은 이와 같이 거처나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에 알맞은 구조를 지녔다.
△
다른 정자엔 수십 개씩 걸려 있는 현판도 ‘명옥헌(鳴玉軒)’ ‘삼고(三顧)’라고 적혀 있는 두 개가 고작이다.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모각하여 만든 명옥헌 현판과
인조가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후산마을을 세 번 찾아왔다는 의미의 삼고(三顧) 현판
▽
오희도는 1602년(선조 35)에 사마시와 1614년(광해군 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큰 뜻이 없었다.
이는 당시 광해군 재위기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 후산마을에 정착해 산기슭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공부에 매진했으며,
때때로 고개 너머에 있는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
정철의 아들 정흥명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에는 명옥헌을 오희도의 손인 오대경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자를 오른쪽으로 하고 돌아 계류를 거슬러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썼다는 ‘명옥헌 계축(鳴玉軒 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 ‘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멀리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조는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때 만난 선비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의 명옥헌기
송강 정철의 4남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요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겸 수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守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명옥헌에서 본 풍경
△
명옥헌 후면에서 본 모습
남들은 이곳에서 책을 보면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겠다고 하지만, 나는 마루에 앉아 남도 창(唱)이나 목청껏 부르다
동동주 몇 사발 들이키고 취하여 덩실덩실 춤추다가
낮잠을 자고 싶다.
연못의 물은 어디서 오는가?
궁금하여 뒤로 돌아 올라가니 조그만 개울에 물이 흘러
명옥헌 후면 상지(上池)로 흘러들어 물이 차면 저절로 넘쳐 수로를 따라 넓은 연못(하지:下池)로 흘러 드는
인공미가 가미되지 않은 아주 자연스러운 두 연못이다.
그래서
계곡물이 흘러 하나의 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명옥헌이다.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안에는 둥근 모양의 섬이 조성된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상지에도 얼음이 얼었고 하지에도 얼음이 얼었는데, 상지에서 하지로 내려가는 수로엔
풀이 제철인 듯 푸르게 자라고 있다.
몇 천 년
참고 견디다 토해낸 몸짓인가
섣달
삭풍
무던히 험하던 날
내게
감춘
슬픈 사연 있어
널
볼 때마다 가슴 싸르르
무너진다
△
옆면에서 본 명옥헌
주인은 자미화를 손질하지 않고 멋대로 자라게 했다.
이렇게
온 삭신을 다 보려고 동지섣달에 찾아왔는데, 이젠 꽃 피우는 널 보고 싶구나.
나 다시 오리라
너
꽃 피우는 날
△
봄을 기다리며
△
명옥헌 원림을 돌아보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마을 뒤 부부송이 인상 깊다.
항상
느긋하게 다녀야지 하면서도 일정에 쫓겨 여행에서 돌아와 후회를 하면서도 오늘 일정 역시 쫓긴다.
물론
한겨울이라 해가 짧아 그렇긴 하지만.
명옥헌 원림에서 나와 이번에는 담양 여행의 하이라이트 소쇄원으로 발길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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