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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담양) 한국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산실 - 면앙정(俛仰亭)

 

한국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산실 - 면앙정(俛仰亭)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언제 : 2018년 1월 2일 화요일

어디 :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

 

 

2016년 12월 25일

경남 함안 화림동천과 거창 그리고 밀양을 다니며 영남 정자 문화를 보았는데,

2018년 1월 2일

전남 담양을 다니며 호남 정자 문화를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오전에 관방제림을 돌아보고 담양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면앙정을 첫번째 행선지로 선택했다.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위치한 면암정은

1533년(중종 28) 송순(宋純)이 건립한 정자로 송순선생이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가파른 돌계단길을 올라 다시 한번 틀어 올라 서니 바람도 없는 면앙정이 "어서 오게"

 나를 반긴다.



 △

면앙정(俛仰亭)

 

면앙정은 송순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송순(宋純)(1493-1583)의 성종 24년(1493) 담양군 봉산에서 출생하여,

중종 14년(1519) 별시문과(別試文科) 을과(乙科) 급제, 이후 명종 2년(1547) 봉문사(奉聞使)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이후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거쳐 1550년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되었다.

1569년(선조 2년) 대사헌(大司憲),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議政府 右參贊) 겸 춘추관사(春秋館使)를 지내다 77세 사임하였다.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면앙정 짓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비롯해 강호제현(江湖諸賢)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선생(新平先生)이라 불렀다.

 

그의 문학작품을 보면 가사(歌辭)인 『면앙정가』를 비롯하여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 1편, 잡가(雜歌) 2편, 『면앙정단가』 등과 『오륜가(五倫歌)』

5편 등이 그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너른바희 우히 松竹을 헤혀고 亭子를 언쳐시니 구름탄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
두나래 버렷난듯 玉泉山 龍泉山 나린 믈리 亭子압 너븐들히 올올이 펴진드시
넙거든 기디마나 푸르거든 희디마나 


 





면앙정 삼언가


俛有地 仰有天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亭其中 興浩然 이 중이 정자 스니 호연한 흥취 이네
招風月 挹山川 풍월을 부르고 산천을 끌어드려
扶藜杖 送百年 명아주로 지팡이 삼고 한평생을 보내려네  


 


면앙정(俛仰亭)

특징이라면 꾸밈이 없는 단조로움 속에 가운데 한칸 온돌방을 두고 사방 둘레는 마루이다.



면앙정 마루에 앉으니 맞은편에 보호수 한그루가 서 있는데, 마치 면앙정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참나무종의 면나무, 수령은 200년, 수고 25m, 둘레는 2.3m



 

정자 근처에는 사철 푸른 소나무나 대나무가 적격이다. 





아직 단정짓긴 어려우나

언뜻 영남지방 정자는 계곡의 흐르는 물가에 있다면, 호남지방 정자는 산 허리나 높은 곳에 자리하여

눈 아래 넓은 풍치를 볼 수 있어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 면앙정에 모인 문인들을 '면앙정가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렇게 부른 것도

 이곳에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송순이 관직에 나아가 있는 50년 동안에는 4대 사화가 일어나는 등 혼란한 시기였다.

그러나 단 1년의 유배생활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인품이 뛰어나고, 사람들과 교류가 좋았음을 의미한다.


'가단(歌壇)'이란 노래를 부르는 장소를 말한다.

가단은 가대(歌臺), 가소(歌所), 가당(歌堂) 등의 명칭으로도 불렀는데,

이는 송순이 중심이 되는 면앙정의 '면앙정가단'과 정철이 중심이 되는 '성산가단' 등이 유명하다.

이 가단이라는 것은 문인들이 상호교류를 하면서 시가활동을 하는 특수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조를 통해서 당시 면앙정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면앙정은 한 칸의 조그마한 초정이었다.  


十年을 經營야 草廬 한 間 지어니
半間은 淸風이요 半間은 明月이라
江山은 드릴듸 업니 둘너두고 보리라  


 “십년을 경영하야 초당삼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대 업스니 돌려두고 보리라.”

 

 

 

1728년 부사(府使) 임광필(林光弼)이 면앙정 주인에게 쓴 시. 갑신년 8월에 고쳐 달았다고 되어 있다.

면앙집 7권에 실려 있는 시.


贈主人

亭號緣何意 浮生俛仰間 前開萬馬地 遙挹幾州山
莽闊眞難狀 逍遙定不還 寄言府中老 須借片時閑

戊申 八月 本府使 林光弼


주인에게 주다

정자 이름은 무슨 뜻일거나 천지간 떠도는 인생이란 게지
앞에는 너른 땅이 열려있고 멀리 몇 개 고을 산을 마주해
넓기는 참 형언하기 어렵고 노닐다 돌아가지도 못 했구려
들어 보소 담양 노인들이여 조금만 한가해야 되지 않겠소

무신 8월 본 부사 임광필

 

 

 

소쇄원(瀟灑園) 주인인 양산보(梁山甫)가 송순의 원운시 3수에 차운한 시 3수.


崱崱群山混混川 悠然瞻後忽瞻前 田墟曠蕩亭欄斷 松逕逶迤屋砌連
大野燈張皆我月 長天雲起摠人煙 淸平勝界堪收享 綠野東山笑漫傳

큼직큼직한 산들에 출렁대는 하천까지 느긋하게 뒤도 보다 문득 앞도 보나니
정자 난간은 크고 넓은 들판을 향하고 구불구불한 솔숲길로 섬돌 이어졌구나
큰 들에 걸린 등불은 다 나의 달 같고 하늘에 이는 구름은 다 인가의 연기라
저 청평의 좋은 경치는 누려볼 만한데 우습구나 녹야 동산이 더 알려졌다니


丹丘何恨訪尋難 眞界分明此一巒 曠占乾坤寬納納 恢收山水引漫漫
風霜幾歲松筠老 詩酒當年筆硯乾 徒倚曲欄流顧眄 世緣消息絶來干

신선의 경지 찾기 어렵다 뭐 한탄하랴 그곳도 분명 이와 같은 산하일 것인데
천지간 넓게 차지한 듯 넉넉히 들이고 산수도 널리 걷는 양 넘치게 이끄는데
여러 해 풍상에 소나무 대나무 져가고 그 해 풍류는 붓과 벼루처럼 말라버려
그저 난간 기대 하염없이 감상 하자니 세상사 소식도 끊어져 오질 않네 그려

 

 

 

송순이 면앙정의 뜻을 삼언시로 지어 풀어 놓은 삼언가.

俛有地 仰有天 亭其中 興浩然 招風月 揖山川 扶藜杖 送百年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
그 가운데 정자 지으니 흥겹지 않겠나
풍월도 맞이하고 산천마저 둘렀으니까
명아주 지팡이 짚고 백 년을 보내리라

 

 

 

1610년에 동악 이안눌(東嶽 李安訥)이 면앙정 원운시에 차운한 시 3수와 오언율시 1수.

 면앙집(俛仰集) 7권에 차운시 3수가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수의 미련에 청운(靑雲)이 문집에는 천추(千秋)로 되어 있거나,

두 번째 수에는 구의 순서가 약간 바뀌어 있거나 하는 등의 오차가 있다.


名利關人勇退難 廣平黃髮臥巖巒 凭欄尙想懷全曠 題壁偏驚字已漫
山日欲沈嵐彩合 野花初綻雨痕乾 九原可作鞭堪執 高義千秋直上干

인간사 명리에 과감히 물러나기 어려운데 백발 재상에서 여기 바위산에 누워있구려
난간 기대며 마음 비운 그 모습 상상한데 놀랍구나 벽 위 글이 너무 여유로운 것이
서산의 해가 안개 속에 잠기려 하는 차에 빗자국 마른 곳에 들꽃 이제 갓 피었는데
공이 살아난다면 말고삐라도 잡고 싶거니 천추에 그 의리 하늘에 오를 듯 높으니까

광평은 당(唐)의 현상(賢相)으로 송경(宋璟)의 봉호인 광평군공(廣平郡公)의 약칭이다.

그는 천성이 고결하고 마음이 철석과 같이 곧았다 한다. 《唐書 卷96 宋璟傳》 여기서는 문맥상 재상의 대유적 표현으로 보았다.

송순는 관직생활 50년 만에 재상직에서 물러났다.



湖南形勝此山川 九邑峯巒一檻前 謝屐平生頻夢想 習池暇日好留連
沙禽暝帶溪橋雨 岸樹秋凝野店煙 不用老夫初着句 相公歌曲至今傳

亭主強要留題故云


여기 산천은 호남에서 경치 좋은 곳이니 정자 앞엔 아홉 고을 산봉우리 벌려있어
사극처럼 살기를 평생 자주 꿈꾸던 터라 습지 마냥 한가히 머물기를 좋아했던 곳
물새는 어두운 시내 다리에서 비를 맞고 들 주점 연기 저 언덕 나무에 머물 때라
애초 이 노부가 쓴 글은 필요 없을 게야 면앙공의 노래가 지금껏 전해 오는데 뭐


평생을 …… 꿈꾸고 : 사극(謝屐) : 사공극(謝公屐)의 준말로, 등산용 신발을 말한다.

남조 송(南朝宋)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명산을 유람할 적에 산을 오를 때에는 나막신[屐]의 앞 굽을 떼어 버리고

산을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떼어 걷기에 편리하도록 했다는 고사가 있다.

《宋書 卷67 謝靈運列傳》 여기서는 송순이 사영운처럼 살기를 희망했다는 의미이다.


습지 …… 좋아했지 : 습지는 습가지(習家池)의 준말로,

진(晉)나라 산간(山簡)이 양양(襄陽)에 있을 적에 항상 그곳에 찾아가 만취(滿醉)했던 고사에서 유래하여,

흥겨운 주연(酒宴)을 비유할 때의 표현으로 쓰게 되었다.

《世說新語 任誕》 여기서는 면앙정을 가리킨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차운시 세 수와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의 차운시 세 수가 함께 판각되어 있다.

모두 면앙집 7권에 실려있다.

七曲高低控二川 翠鬟無數迥排前 縈簷日月徘徊過 匝域瀛壺縹緲連
村老夢徵虛宿昔 使君資築償風煙 傍人欲識亭中樂 光霽應須別有傳

두 강 흐르는 곳에 높고 낮은 일곱 구비 정자 앞 멀리 푸른 산 무수히 벌려 있다
처마를 도는 일월은 갈 듯 말 듯 지나고 여길 감싼 영주산은 멀리로 이어 졌거니
사군이 건축 도와 경치 감상하는 것이니 이 곳 즐거움을 속인이 알았으면 한다면
맑고 밝은 기상은 특별히 전해야 하리라


두 강이 …… 일곱 구비 : 제월봉으로부터 면앙정 기슭에 이르기까지 산이 일곱 구비임을 말한다.

두 시내는 백탄(白灘)과 여계(餘溪)이다

영호(瀛壺) : 영주산(瀛洲山)으로, 모양이 마치 술병과 같이 생겨서 영호라 한다.

여기서는 면앙정 주변 산의 대유적 표현이다.

촌노의 꿈 징조는 옛적에 허사 되었지만 촌노의 꿈 :

옛날 이 동네에 곽성이 살고 있었는데 꿈에 금의 옥대를 한 선비들이 그위에 놀기에 그 집이 흥할 징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영험이 없어 송순에게 팔았다 한다

사군이 건축 도와 : 이 정자를 지을 때 담양부사 오겸(吳謙)이 재물을 보조했다.

맑고 밝은 …… 하리라 :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여 가슴속이 깨끗해서 마치 온화한 바람과 맑은 달빛 같다.

[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 한 데서 온 말이다.


松竹蕭槮出逕幽 一亭臨望岫千頭 畫圖隱映川原矌 萍薺依俙樹木稠
夢裏關心遷謫日 吟邊思樂撫摩秋 何時俛仰眞隨意 洗却從來局促愁

退溪

약간의 송죽이 길을 벗어나 그윽한데 정자 하나가 많은 봉우리 굽어본다야
넓은 산천이 그림처럼 은은히 비치고 풀들은 빽빽한 수목 속에 아른대는데
선산에 왔던 날 꿈결처럼 생각해보면 시 읊으며 가을날을 즐기기도 했지요
언제나 그대 마냥 진정 뜻 가는 대로 종래의 자질구레한 시름 씻어 볼런지


次俛仰亭韻

蠶頭斗起壓平川 一望風雲几席前 春半雜花紅亂映 秋深列岫翠相連
寒松不廢千年色 芳草渾凝三月煙 問却桑麻邀野老 怡然時復數觴傳

누에머리처럼 우뚝 솟아 큰 냇물 압도하니 앉은 자리 앞 경치가 한 눈에 바라다 뵌다
봄이 한창인 꽃들에 붉은 빛 널리 비칠 제 뭇 산엔 가을 깊은 듯 푸른 빛 연이었거니
외로운 소나무는 천년의 빛깔 버리지 않고 향그런 풀엔 뭉게뭉게 삼월 연기 끼었는데
시골 노인 마주쳐서 농사일 여쭈어 보자니 환한 안색으로 가끔씩 술잔도 건네네 그려


內杖追隨會二難 小亭高爽帶林巒 風傳曉寺鍾聲遠 雲接長空雁路漫
好月臨昏山更靜 疏篁搖曙露先乾 蕭然自占閑中趣 萬事悠悠莫我干

지팡이 들고 뒤따라서 이난을 만나고보니 산 가까이 높고도 탁 트인 정자였네 그래
새벽 산사 먼 종소리 바람에 실려 오는데 허공의 구름이 기러기 나는 곳에 떠갈 쯤
저물녘 이쁜 달 뜨니 산은 더욱 고요하고 새벽녘 대숲 요동할 제 이슬 먼저 마른다
이렇듯 느긋한 정취 홀가분하게 차지하니 만사가 아련하여 나랑 상관없는 듯하구나


이난(二難) : 현주(賢主)와 가빈(嘉賓)을 말한다. 어진 주인과 좋은 손을 둘 다 얻기 어렵다는 말이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藤王閣序)》에, “四美具 二難幷”이라 하였다.

 


 

보기엔 평범함 면앙정이

한국의 고전 문학사에 커다란 의미를 두는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한 면앙정가단 때문일 것이다.

 면앙정가단의 장소답게 면앙정 여기저기 걸린 각종 글을 적은 게판들이 제법 많다.


면앙정 벽면에는 여러 게판이 걸려 있으나 대체로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사진과 같이 볼상사납다.

천리길을 마다하고 찾아간 면앙정의 게판 상태가 좋지 않아 다 담지 않고

그렇게 찾아간 내 발걸음이 무겁고 무색하다.

 

 



면앙정이 더 유명한 것은 바로 이곳에서 배출해 낸 많은 인물들 때문이다.

 송강 정철을 비롯하여 기대승, 고경명, 임제 등이 송순이 이곳에 정자를 지은 후, 이곳을 통해 이름을 떨쳤기 때문이다.


기대승 선생의 면앙정 기문이 아직 걸려 있다면 좋았을 걸, 중간에 유실되어 아쉬움이 크다.


기대승의 면앙정기

기대승은 스승의 누정 창축을 위해서 이 <면앙정기>를 창작했기 때문이 대단히 조심스럽고

부담도 컸던 것으로 생각한다.

俛仰亭 在潭陽府之西錡谷之里 今四宰宋公之所營也 余嘗從公遊於亭之上 公爲余道亭之故 徵余文爲記 余觀亭之勝 最宜於廣 而(×)又宜於奧 柳子所謂遊之適 大率有二者 亭可兼而有也 亭東山曰霽月峰 峰之向乾方稍迤遽隆 勢如龍首之矯 亭正有其上 爲屋三間四虛 其而比隅極陟 (陡)絶屛以密竹 蕭槮悄蒨東階下廓之構溫室數楹 (四檻) 植花卉繚以短垣 循峰脊延于左右谷 長松茂樹 惹(蔥)瓏以交加 與人烟(煙) 不相接逈然(× ×)若異境焉憑虛以望 則曠然 數百里間有山彦 可以對而挹也 有水焉 可以臨而琓(翫) 山自東比而馳迤邐於西南者 曰瓮(甕)巖 曰金城 曰龍泉 (曰龍泉 曰金城) 曰秋月 曰龍龜 曰夢仙 曰白巖 曰佛臺 曰修綠 曰湧珍 曰魚登 曰錦城 其巖崖之詭麗 烟雲之縹緲可愕而可喜 水之出於龍川者 過府治爲白灘 屈折橫流 汨濦渟洄發於玉川者 名曰餘溪 漣漪澄瀅廻帶亭 麓下 合於白灘 蒼茫大野 首起於(×)秋月下 尾?於魚登之外 間以丘陵林藪 錯如圖盡 聚落之雜襲 丘塍之刻鏤 而四時之景 與之無窮焉 亭之環合窅 足以專靜(靚)謐之觀 其廖廓悠長 可以開活蕩之襟 向所謂宜於曠宜於奧者 其不信矣乎 始公之先祖 解官而居于錡 子孫因(仍)家焉 亭之舊址 則郭姓者居之 得異夢 見衣纓之士頻來盍簪 謂其家之將有慶 托子於山僧以學書 及其無成而且窮 乃我其樹而遷其居 公以財貿而獲之 里之人 皆來賀以郭之夢爲(如)有驗云 其無乃造物者 蓋靈悶祉而遺於公耶 公又築新居于霽月之陽 取其與亭(×)近也 亭之地 得於甲申 亭之起 始於發已 後仍頹廢 至任子重營 而後曠如奧如之適 揭其名亭之意以示客 其意若曰 俛焉而有地 亭于玆(×) 于之丘其興之浩然也 招風月而(×)挹山川 亦足以終吾之餘年也 味斯語也 公之所以自得於俛仰者 盖可想也 噫 自甲申迄于今四十餘年 其間悲歎得喪 古不勝言者 而公之俛仰逍遙者 終不失正 豈不尙哉 余之以托名爲幸而不敢辭者 意亦有以也 於是乎書

俛仰亭은 담양부의 서쪽 기곡리에 있는데, 지금 四宰로 있는 宋公의 소영지이다. 내가 일찍이 공을 좇아 정자 위에서 놀았던 적이 있는데, 공이 나에게 정자의 내력을 말하고, ‘亭記’를 지어주도록 청했다. 내가 정자의 경관을 둘러보니 아주 광활하고 또한 오묘함이 매우 뛰어났다. 유자후(柳子厚)가 ‘놀기에 적합하려면 이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더니 이 정자는 이를 다 겸하였다고 할 만하다. 정자의 동쪽산은 霽月峰으로 봉의 활개가 점점 아래로 뻗어서 내려가다가 갑자기 솟구친 산세는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듯한데, 정자는 바로 그 위에 서 있다. 집은 세 칸으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트여 있고, 그 서북쪽은 절벽이 극히 가파르며, 빽빽한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밋밋한 삼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동편 아래쪽에는 몇 개의 나무기둥을 세워서 온실을 지어 그 안에 온갖 꽃을 심어놓고 낮은 담장을 둘러쳐 놓았다. 산봉우리의 등마루는 양편으로 갈라진 골짜기로 뻗어 있으며 낙낙한 장송들과 무성한 나무들이 뒤섞이어 눈이 부시도록 어우러져 있어서 인간세상과는 접해보지 않은 듯한 곳으로 마치 선경과 같다. 난간의 허공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면 넓고 넓은 수백리 사이에 산들이 늘어서 있어서 가히 마주 대하고 끌어들일 만하고, 냇물도 임하여 완상할 만한 곳이다. 산은 동쪽으로부터 달려와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왔는데 옹암산, 금성산, 용천산, 추월산, 용구산, 몽선산, 백암산, 불대산, 수연산, 용진산, 어등산 금성산으로 그 암애의 진기하고 아름다움이 연무와 안개 사이에서 어렴풋이 나타나 보이는 모습이 가히 놀랄 만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물은 용천에서 흘러내려 읍내를 지나 백탄이라는 냇물이 되었다. 굽이친 듯 꺾어진 듯 가로지른 듯 잠겼다가는 숨고 멈췄다가는 솟구치며 흐르고 있다. 옥천산에서 발원한 다른 물줄기는 물결이 유난히 맑고 깨끗한 여계천으로 정자 밑의 산기슭을 감고 휘돌아 아래로 흘러가서 백탄과 합류를 한다. 아득히 펼쳐 보인 큰 들은 추월산 아래서 시작이 되어 어등산을 넘어 이어지는데 그 사이사이에 구릉과 나무숲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여기저기에 부락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구릉과 밭두둑들이 서로 아로새긴 듯하여 사계절의 풍광이 이와 잘 어울리어 그 정경이 다함이 없다. 정자는 그윽하고도 아득하게 보인 정경으로 에워싸여 있어서 너무도 고요하고 평온한 경관은 그 적막함 속에 유장할 뿐인지라 가히 호탕한 가슴속을 열어제칠 만하구나. 앞서 말했던 놀기에 적합함이란 ‘광활함이 적당하고 오묘함이 적합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 사실은 믿을 만하지 않는가. 처음에 공의 선조가 관직을 그만두고 기곡리에 기거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이 곳이 자손들의 집터가 되었다. 정자의 옛터에 곽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꿈에 의관을 차린 선비들이 자주 와서 모이는 것을 보고는 그 집에 장차 경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들을 산승에 기탁시켜 글을 배우도록 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고 곤궁하게 되어 그 곳의 나무를 베어버리고 사는 곳을 옮겼다. 공이 재물을 주고 이 터를 얻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와서 곽씨의 꿈이 징험이 있다고 축하해 주었다. 이것은 아마도 조물주가 신령스러운 복지를 숨겨두었다가 공에게 물려준 것이 아니겠는가. 공이 또 제월봉 양지쪽에 새집을 지었는데 이것은 정자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정자는 갑신년에 터를 얻은 뒤 계사년이 되어서 지었다. 그 뒤 퇴락해지자 壬子年에 다시 중건하니 그 ‘如曠如奧’한 경관이야 부족함이 없었다. 공이 일찍이 정자의 이름을 俛仰亭이라고 한 뜻을 나에게 보여주었으니 그 뜻이 “굽어보면 땅이 있고 우러러보면 하늘이 있다. 이 언덕에 정자를 지으니 흥취가 호연하다. 풍월을 불러들이고 산천을 끌어들여 또한 족히 나의 여년을 마치려네”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음미하면 공이 이 뜻을 俛仰에서 스스로 얻었음을 가히 상상할 수 있다. 아, 갑신년으로부터 지금까지 40년여에 이르렀고, 그 사이 슬픈 일 기쁜 일, 얻은 것, 잃은 것이 진실로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이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소요하고 살았던 것은 끝내 바르게 살아감을 잃지 않는 바이니 어찌 가상하다고 아니하랴. 내가 여기에 이름을 기탁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서 감히 사양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이러한 뜻이 있기에 이에 이 글을 썼느니라.

奇大升은 「高峯集」과 송순의 「俛仰集」에 실린 <俛仰亭記>를 비교하면서 전문을 원문과 함께 번역해서 소개한 것이다.



면앙정 단가 7편

俛仰亭短歌 七篇


① 俛則地兮 仰則天兮
兩位之際兮 從而生我兮居焉
領溪山兮風月 將擧偕兮老云

굽어 땅이오 우러러 하늘이라
두분의 을조차 내삼겨 살아시니
계산에 풍월 거느려 늙은 뉘를 몰래라 (김동욱 판역)

② 廣廣之野兮 川亦修而脩兮
如雪兮白沙 如雲之鋪兮
無事携竽之人兮 曾日落兮不知

넙거나 넙은들에 내도 길고긴 
눈 흰모래이 구름치 펼쳐시니
일업 낙대멘 사 딘줄을 몰라라 (김동욱 판역)

③ 宋籬兮昇月 至竹梢兮轉離
玄琴兮橫按 嚴邊兮猶坐
何許失伴兮鴻鴈 而獨鳴兮云徂

松籬에 이올라 竹梢에 잠간니
거문고 빗기안고 바회에 안자실제
어디서 외기려기 홀로울어 예다 (김동욱 판역)

④ 山作兮屛風 野外兮周置
過去兮有雲 0欲宿兮入來
何無心兮落日 而獨0而去兮

山으로 屛風삼아 들밧게 둘러두니
디나 구름조차 자려고 들오대
어찌타 無心한 落日은 홀로넘어 가뇨 (김동욱 판역)

⑤ 宿鳥兮飛入 新月兮漸昇
時獨木兮橋上 獨去兮彼僧
爾寺何許遠 鍾聲兮入聆

잘새 라들고 달은 도다온다.
외나모 리에 혼자가 뎌듕아
네뎔이 언머나관 먼북소 들리니 (승주본松江歌辭)

⑥ 見山頂兮夕陽 而0遊兮群魚
有無心兮此約等 無以兮剩疑
淸江月將生兮 此間興兮不可友

山頂에 노을지고 뭇고기 노니
無心한 이 낙시야 고기야 잇건업건
淸江에 돋아오니 이이興이야 일러무삼 (김동욱 판역)

⑦ 天地兮帳慕 日月兮燭燭
0彼北海兮 海樽兮是漑
作南極老人星兮 將不知兮有晦

天地로 帳慕삼고 日月로 燭燈삼아
北海를 휘여다가 酒樽에 다혀두고
南極에 老人星對야 늙을뉘를 모롤이라 (해동가요) 


<俛仰亭短歌>는 宋純이 살던 俛仰亭의 아름다운 주변경관과 그 속에서 안분지족을 즐기면서

泉石膏肓을 벗하고 살던 아름다운 전원생활의 모습을 노래한 것으로 7수로 된 聯章體短歌(聯詩調)다.


- Daum 오픈 지식에서 모셔온 글 -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면앙정

차라리 삭풍에 인적이 끊겼다면 좋으련만, 찾아간 날이 하필 미세먼지로 우중충하여 시계가 좋지 않은데도

나목 사이로 내려다 본 넓은 담양 들 너머 추월산이 희미하게 눈에 잡힌다.


면앙정가(俛仰亭歌)

16세기에 창작한 국문시가로 면앙정의 산수에 취해 생활하는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지금은 이렇게 외롭고 쓸쓸히 서 있으나 한땐 수많은 강호제현들이 앞다투며 소리를 하였을 것이다.


만났으면 또 떠나야 하는 것이 나그네의 행보이다.


다음은 송강 정철의 정자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