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제40호
은일과 사유의 공간 소쇄원(瀟灑園)의 겨울
- 소쇄처사 양공지려 -
언제 : 2018년 1월 2일 화요일
어디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지곡리 123) 등
소쇄원은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첫손으로 꼽힌다.
젊어서부터 소쇄원을 보고 싶었는데,
반백의 장년이 되어 2018년 신년 초이튿날 그렇게 그리던 소쇄원을 찾아간다.
가는 길목에
광주호반의 한방정식 집에서 한우떡갈비로 늦은 점심을 드니
인상 고운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은 것이라며 진하디진한 복분자 한 잔을 권하는데,
그 맛이 입에 짝짝 달라붙어 다시 한 잔을 더 마시니 석 잔은 마셔야 한다며 한사코 한 잔을 더 권한다.
기분 좋게 소쇄원 대나무 숲길을 걷는다.
소쇄원은 기능과 공간의 특색에 따라
애양단구역(愛陽壇區域)·오곡문구역(五曲門區域)·제월당구역(霽月堂區域)·광풍각구역(光風閣區域)으로
구분할 수 있다.
소쇄원(瀟灑園)
중종의 신임 속에 신진사류를 대표하는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기묘사화로 남곤(南袞) 등의 훈구파에게 몰려
전라남도 화순 능주로 유배되자,
당시 17세였던 젊은 제자 양산보(梁山甫 : 1503~1557))는 유배지까지 따라와 그를 모신다.
그해 겨울 스승 조광조는 사약을 받고 사망을 하자
이때 큰 충격을 받은 양산보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현세에서의 공명과 현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별서를 짓고 은거생활을 시작한다.
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숨어살면서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소쇄원의
‘소쇄’는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양산보는 이러한 명칭을 붙인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 하였다.
소쇄원의 조성사상을 보면 주자(朱子)가 중국(中國)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계곡의 경승지인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현실(現實)을 도피하여 은둔하는 행동양식이 깔려 있다.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80년쯤 전에 중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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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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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입구
양 옆에는 늘 푸른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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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단구역(愛陽壇區域)
이 원림의 입구임과 동시에 계류쪽의 자연과 인공물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애양단이란 김인후(金麟厚)가 지은 「소쇄원사팔영(瀟灑園四八詠)」 가운데 있는 ‘양단동오(陽壇冬午)’라는 시제를 따서
송시열(宋時烈)이 붙인 이름이다.
왕대나무숲속에 뚫린 오솔길을 따라서 올라오면,
입구 왼편 계류쪽에 약 18m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방지(方池)가 만들어져 있고, 과거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이것은 장식용으로 오곡문 옆 계곡물이 홈대를 타고 내려와 위쪽 못을 채우고,
그 넘친 물이 도랑을 타고 내려와 물레방아를 돌리게 되어 있어,
이것이 돌 때 물방울을 튀기며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의 약동을 건너편 광풍각에서 감상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위쪽 옆에는 계류 쪽으로 튀어나온 대봉대(待鳳臺)라는 조그마한 축대 위에 삿갓지붕의 작은 모정(茅亭)이 있는데,
이것은 근래에 복원한 것이다.
대나무 숲을 지나면
좌측에 계곡에 물이 흐르고 위교라는 다리를 건너면 광풍각과 제월당으로 연결되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올라가면 애양단과 오곡문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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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과 제월당
두 건물의 이름은 송나라 때 명필로 이름난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이야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의 맑음이 마치 비가 갠 뒤에 해가 뜨면서 부는 청량한 바람(光風)과도 같고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霽月)과도 같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은일생활을 하는 양산보가 스스로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모습을 뜻하고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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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다리를 건너지 않고 좌측 언덕길을 올라가면 발아래 연못 두 개가 조그만 수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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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대(待鳳臺)
봉황을 기다린다는 이름의 대봉대는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양산보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는 곳이다.
김인후는 〈소쇄원 48영〉에서 대봉대의 풍광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작은 정자의 난간에 기대어
小亭憑欄
오동나무 대에 드리운 한여름의 녹음을 보네
桐臺夏陰
해 저문 대밭에 새가 날아들고
叢筠暮鳥
작은 못에 물고기 노니네
小塘魚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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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문(五曲門)
담벼락 매화나무 옆에는 오곡문이라는 글씨가 있다.
오곡은 무이구곡의 오곡을 말한다. 주자가 공부했던 무이정사가 있던 곳이 무이구곡 중 오곡이었다.
구곡 중 가장 중심 되는 곳이니 이 오곡문은 소쇄구곡의 중심인 것이다
지금은 문 없이 트여 있지만 <소쇄원도>를 보면 작은 일각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곡문 옆 담장이 특이하다.
흐르는 계곡물에 천연덕스럽게 발을 담그고 있는 담장 굄돌支石은 소쇄원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구조물이다.
원규투류垣窺透流, 신선 동굴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에 발을 담근 담.
흐르는 자연에 최소한의 인위를 가한 절묘한 장면이다.
오곡문구역(五曲門區域)
오곡문 옆의 담밑 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류와 그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계류의 물이 들어오는 수문 구실을 하는 담 아래의 구멍은
돌을 괴어 만든 높이 1.5m, 너비 1.8m와 1.5m의 크기를 가지는 두 개의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낭만적인 멋은 계류공간의 생김새와 잘 어울린다.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之자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이 부근의 암반은 반반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 앉아서 즐기기에 넉넉한데,
「소쇄원도」에는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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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위
오곡문 담장 아래를 흘러 외나무다리를 지난 계류는 암반에서 십장폭포十丈瀑布라고 하는 폭포수가 되어 떨어진다.
그 아래 푹 팬 웅덩이는 조담槽潭이고, 계류는 지석천支石川인데 증암천으로 흘러간다.
계곡의 좌우에는 달구경하던 너럭바위 광석廣石, 바둑을 두던 평상바위 상암床巖, 자연 속에서 사색하거나
지인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던 걸상바위 탑암榻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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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폭포十丈瀑布
오곡문 담 밑으로 흐르는 계류의 일부는 나무관을 통해 두 개의 연지로 흘러가고,
일부는 바위폭포가 되어 광풍각 계곡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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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瀟灑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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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문 다리에서 본 소쇄원의 풍경
소쇄원은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언덕에 복사나무·배롱나무 등을 심어 철따라 꽃을 피우게 하였으며,
광풍각 앞을 흘러내리는 계류와 자연폭포, 그리고 물레방아에서 쏟아지는 인공폭포 등 자연과 인공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경지를 방불하게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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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慮'
양산보의 5대손 양택지가 송시열에게서 제월당, 광풍각 글씨와 함께 받아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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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霽月堂)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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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구역
오곡문에서 남서방향으로 놓여 있는 직선도로의 위쪽 부분을 말하는데,
주인을 위한 사적(私的) 공간이다.
제월당 앞의 마당은 보통의 농가처럼 비워져 있으며,
오곡문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매대(梅臺)에는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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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 후면에서 본 소쇄원
제월당 담장 너머 서쪽에는 공터가 있다.
'고암정사鼓巖精舍'와 '부훤당負暄堂'이 있던 자리다.
고암정사는 양산보의 둘째 아들인 고암 양자징이, 부훤당은 셋째 아들인 지암 양자정이 1570년경에 세운 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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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에서 본 제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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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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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과 광풍각을 오고 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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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문에서 제월당으로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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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光風閣)
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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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구역
제월당구역의 아래쪽에 있는 광풍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 기능의 공간이다.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방으로
옛날에는 손님을 맞고 보내는 버드나무가 서 있었다.
광풍각 옆의 암반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었는데,
이러한 조경방법은 고려시대의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광풍각의 뒤쪽에 있는 동산을 복사동산이라 하여 도잠(陶潛)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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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죽위교透竹危橋,
광풍각 아래 계곡에는 대나무로 만든 다리가 걸쳐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려면 몸과 마음이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소쇄원은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別墅: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정원이다
정원은 꽃이 피고 초목이 어우러져야 보기 좋다.
꽃과 나무로 치장된 소쇄원보다
발가벗겨진 소쇄원을 보고 싶어 엄동설한에 천 리를 달려 왔다.
다른 정자들도 그러하였지만,
또다른 정자의 맛과 풍경을 보려면 초목이 우거지고 꽃이 피는 시절에 와서 느긋하게 감상하고
생각하며 노닐어도 좋을 듯 싶은데, 오늘도 시간에 쫓겨 느긋하게 머물지 못했다.
머지 않은 날
꽃 피고 새 울면 다시 담양에 와서 소쇄원을 다시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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