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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순천) 사적 제507호 - 2018 첫 여행지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사적 제507호 

2018 첫 여행지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언제 : 2018년 1월 1일 월요일

어디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2017년 마지막 여행길은 경상북도 안동이었다면,

2018년 첫 여행지는 전라남도 순천과 담양을 선정하여 영. 호남지방 문화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1월 1일 06:30

새해 첫날부터 집을 나서기 쉽지 않았으나

앞으로 여행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 무리하여 여행길에 나섰다.

 

오늘 목표는 순천 낙안읍성이나

낙안읍성 가는 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꽃이 많고, 해우소로 유명한 태고총림 선암사가 있어

먼저 들른다.

 

10:30

선암사에 도착했다.

 

 

마지막 휴게소인 황전 휴게소에서 바라본 지리산 노고단

 


 

 

선암사에는

선암사승선교(仙巖寺昇仙僑, 보물 제400호)·선암사삼층석탑(仙巖寺三層石塔, 보물 제395호)·

선암사삼층석탑내 발견유물(보물 제955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선암사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선암사북부도(보물 제1184호)·

선암사동부도(보물 제1185호)·선암사괘불(보물 제1419호)·선암사대웅전(보물 제1311호)·

선암사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전도선국사직인통(傳道詵國師職印筒,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선암사팔상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선암사중수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선암사일주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선암사삼인당(仙巖寺三印塘,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선암사원통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

선암사마애여래입상(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7호)·선암사각황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

목장승 등이 있다.



 △

조계산 장군봉(884m)

선암사와 송광사를 안고 있는 조계산은 소나무가 거의 없고 잡목 뿐인데, 그 이유는

1948년 1월 여수반란사건과 6·25전쟁으로 조계산 일대에 무장공비들이 잠입하자, 공비 토벌을 위하여

국군은 작전상 절 주변의 나무를 벌채하였다.

 

 

 

- 아래 부도 -



 

 

 


 

옆으로 선 부도

맨 앞줄 왼편에서 세 번째 부도가 방향이 틀어진 것은

상월대사는 일생의 대부분을 선암사에서 기거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 스님이다.

그러나 그가 입적한 곳은 선암사가 아닌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

이 부도비가 바로 보현사 방향을 보고 세워졌단다.


 그가 입적하자 3개의 사리가 나왔다고 전해지는데 보현사를 비롯한 세 곳에 부도탑을 만들었고

그 중 하나가 선암사다.

즉, 입적한 보현사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매우 인상적인 부도이다.




제 1홍교

1월 1일라서인지 가족 나들이가 많고 보기도 좋다.


 

 △

승선교와 강선루

 

  

선암사 승선교 :仙巖寺昇仙僑(보물 제400호)


선암사 승선교(仙岩寺 昇仙橋)는 길이 14m, 높이 4.7m, 폭 4m로

숙종 39년(1713) 호암화상이 6년 만에 완공한 다리로,

기저부에 별다른 가설이 없고 홍예(虹預) 전체의 문양은 반원형을 이루고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다.

 

다리 중심석 아래에 석재가 조그맣게 돌출되어 있다.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

강선루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 온다는 뜻으로 손님을 높여 부른 의미이다.

 


 △

고목

세상의 온갖 시름과 번뇌를 짊어진 사람처럼 이 고목의 생김이 그러하다.



 △

선암사 삼인당(仙岩寺三印塘)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46호

 ‘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뜻한 것으로,

 이 연못은 불교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삼인당’이라는 명칭과 독특한 양식 등이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야생 녹차밭 




백나무

 

선암사 전경


 

 △

선암사 일주문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

현판이 걸려 있어 이 절의 옛 산이름과 옛 절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육조고사 = 만세루 

서포 김만중의 부친 김익겸(金益兼·1614~1636)의 글씨로 알려진 육조고사


부처의 진리가 제1조인 마하가섭, 제2조인 아난존자, 3조 상나화수, 4조 우바국다, 5조제가다.....등으로

법맥이 이어져 마침내 28대조인 보리 달마대사에 이르니

그는 부처님의 전리를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져온 중국 선불교의 초조(初祖)인 것입니다.

 

  보리달마대사는 소림사에서 머물러 벽을 향해 면벽수도를 한지 7년만에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혜가(慧可)에게 전해주니 혜가는 부처님 29대제자이자

중국의 2대제자가 되는 셈입니다.

중국선법은 초조(1조)가 달마대사,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에게로 전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암사는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보리달마대사 그리고 6조혜능까지 선법을 그대로 계승한 절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육조고사라 한 것입니다.

 


선암사 대웅전(보물 제1311호)과 삼층석탑 2기(보물 제395호) 


 

 ▽

대웅전 내부 불상 

 

 

조선 역사상 왕권이 가장 강했던 시기는 태종 이방원이 집권했을 때이고,

신권이 가장 강했던 시기는 조선 말 안동 김씨의 김조순이 세도정치를 할 때라고 한다.

 

태종이야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그가 왕이 되기 위해 형을 죽이고,

그의 정적들을 모두 숙청 보내고, 그의 아버지 이성계와도 등을 지고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신권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초를 열었던 김조순은 과연 어떤 인물이고,

그의 세도가가 어느 정도였기에 그런 평가를 받을까.

 

-IMG_2736.JPG

신권정치의 최고봉으로 불리우는 안동김씨 김조순의 세도를 짐작케하는

선암사 대웅전 현판 우측 상단에 있는 金祖淳書.

 

김조순은 1785(정조 9)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규장각대교를 지냈다.

1789년 동지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에 다녀와서, 이조 참의‧이조 판서‧선혜청제조 등을 거쳤다.

1802(순조 2)년 딸이 순조의 비(순원왕후)가 되자,

영돈녕부사가 되고, 영안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어 훈련대장‧호위대장‧금위대장 등을 거치면서 군권을 장악하고,

1826년 양관대제학이 됐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초가 마련됐고,

순조가 죽고 어린 철종이 왕이 되면서부터

60여 년 간 순원왕후를 비롯한 그녀의 외척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본격 열렸다.

 

선암사 각황전

전라남도 문화제자료 제177호

각황전의 다른 이름은 장육전으로 석가여래의 몸이 보통 사람보다 두 배로 큰 1장6척으로 하여 일컫는 말이다.

석가여래의 모습을 장륙존상이라고 일겉는데서 따온 것이다.

신라 경문왕 원년(861)에 대각국사가 새롭게 고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현종 원년(1660)과 영조 36년(1760) 두 차례에 걸쳐 고쳐 지은 후 순조 1년(1801)에 다시 지은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원통각(圓通각) : 전남 지방 문화재 제169호

원통전의 관세음보살님은 호암스님이 조계산 배바위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100일 기도를 하였으나

친견하지 못해 떨어져 죽으려 하는데, 홀연히 누군가 나타나 대사를 구해 주었는데

그가 바로 관세음보살님이었고 원통전 주전으로 모신단다.


원통각 내부에는 또다른 내부가 있다.

바로

대복전(大福田)


대복전 = 순조 어필

원통전 내부에는 대복전이라는 순조 친필 현판이 있다.

 이는 정조가 후사가 없자 선암사 원통전과 대각암에서 100일 기도를 하게하여 순조를 낳자

금병풍, 은향로등을 포함하여 순조께서 선암사에 하사한 것이란다.

순조어필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田)"의 친필 편액을 순조가 하사하였는데, 현재 원통전에 "대복전" 편액이 걸려있고,

"인(人), 천(天)" 편액은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이곳에서 100일 기도 후 조선 제23대 순조를 낳았다는 말에 얼떨결에 빨간 방석 위에서 절을 삼배 드리고 나니

그곳은 스님이 절 하는 곳이고

일반인들은 마루바닥에서 절을 하는 것을 알고 스님께 사죄드린다.



원통전 문의 장식은 다른 사찰에서 보기 힘든 화려함을 자랑한다. 장식 아래에는 달에서 절구 찧는 토끼 조각 그림과 계수나무와 새 두 마리 조각 그림이 있는데 다산을 의미한다.


 

 

밖에서 본 원통각 

 

 

순천 선암사 선암매 =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사 선암매는 원통전.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위치한다.

춴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 부터 약 600여년 전에

천불전앞의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하고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화 꽃이 필 때면 매화를 보기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통전 뒤 백매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매화나무는 네 그루인데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강릉 오죽헌 율곡매(栗谷梅), 구례 화엄사 화엄매(華嚴梅) 

 

 


곳간의 문이 아주 안정적이며,

벽의 하얀 회칠 그리고 곳곳의 나무 기둥이 인상적이다.

 

선암사 와송



뒤깐에서 나온 스님이 무량수전 앞의 샘물로 걸어가는 모습




선암사 해우소

도지정 문화재 자료 제214호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정호승의 詩 ‘선암사’ 전문 -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지은 지 300년이 넘는 해우소다.

뒤깐을 나와 본 외부의 모습



 

 

선암사 경내를 벗어나 조계산 오르는 편백나무 숲을 조금 지나면 좌측에 마애불을 볼 수 있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仙巖寺 磨崖如來立像)

전라남도 문화제자료 제157호

높이가 5m에 달하는 거대한 입상으로 불상 아래쪽에 갑진3월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연호가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없으나 고려 중 후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전남 순천의 조계산 도립공원 양옆으로 천년고찰 선암사와 송광사가 자리 잡고 있다.

송광사와 선암사로 접어드는 길은 둘 다 이미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대상을 받은 족보 있는 길이다.

 

더욱이 조계산 일원은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1998년 12월23일)됐다가 문화재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송광사와 선암사 경내는 사적으로,

송광사와 선암사를 둘러싼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은 명승지역으로 재분류됐다.

 

절을 포함한 산 자체가 사적 2곳(제506호와 507호), 명승 1곳(제65호)으로 지정된 곳은

한국에서 몇 군데 없다.

그만큼 유서 깊고 경관이 뛰어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