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70호
퇴계의 영혼이 깃든 도산서원(陶山書院)
언제 : 2017년 12월 25일 일요일
어디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우리나라에서 조선의 맛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안동일 것이다.
안동에는
옛 조상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오늘 방문할 곳은 영남 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퇴계 이황의 혼이 깃든 도산서원이다.
2008년 4월
1박 2일 일정으로 주왕산과 하회마을 그리고 도산서원을 방문하였고,
그 후
개인적으로 안동과 영주 등을 돌며 여행을 하여 이번이 네 번째 안동 여행길인데도
봐야 할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하마비를 지나 물이 없는 안동댐을 따라 구불구불 모퉁이 돌아가면
영지산 골짜기 안에 다소곳이 자리한 도산서원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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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대
천광운영대(천광운영대)
퇴계는 서원 경내를 중심으로 양편 산기슭이 절벽을 이룬 동쪽을 천연대(천연대)
서쪽을 운영대(운영대)라 불렀다.
천연대는 시경(시경)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
(연비려천어약우연 : 연비려천 어약우연)"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고,
운영대는 "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돌고 돈다(천광운영공배회 : 천광운영공배회)"라는 주자의
관서유감(관서유감) 시에서 인용한 것으로
도산서당 일대를 엄숙한 수도의 장으로 꾸며 천리(천리)의 묘용(묘용)을 깊이 사색하고 자연의 심오한 참뜻을
깨우치기 위해 조성한 자연체험장이다.
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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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단(試士壇)
지방 유형문화제 제33호
조선 정조 때 지방별과(地方別科)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1792년(정조 16) 왕은 퇴계 이황(李滉)의 학덕을 추모하여
규장각 각신 이만수(李晩秀)를 도산서원에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또한 그곳 송림에서 과거를 치러
영남 인재를 선발하게 했는데, 이때 응시자가 7천 명에 이르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796년 여기에 단을 모으고 비와 비각을 세웠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 번암 채제공(蔡濟恭)이 썼는데, 1824년(순조 24) 비각을 개축하면서 비석을 새로 새겼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서 지상 10m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비각과 비를 옮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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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도산서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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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명에 의해 심어진 왕버들
마치 용이 꿈틀대며 승천할 준비를 하는 듯한 수양버들나무가 서원 앞 마당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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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명에 의해 심어진 왕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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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정문
입구 현판이라도 있을 법 한데 덩그렇게 빈 문이 서 있다.
입구에 들어서 본 서원 전경
도산서원 현판이 있는 전교당까지 계단길을 따라 좌우엔 모란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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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당
퇴계가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는 "완락재(玩樂齋)"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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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漢字)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時習齋)'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觀瀾軒)'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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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우사(節友社)
선생께서 매화,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몸소 심어 가꾸시던 화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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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로서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동 . 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염(光明)은 "많은 책이 서광(瑞光)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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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典敎堂)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된 대강당이다.
건물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閑存齋 : 한존재)으로
구성되었다. 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
대청의 윗부순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선조가 하사한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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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당 뒤에서 본 도산서원
정문 좌.우에는 광명실이 있고 마당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도산서원(陶山書院)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으며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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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상덕사 부 정문 (陶山書院 尙德祠 附 正門)
보물 제211호
상덕사는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되었으며,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祀)를 지내는 곳이다.
도산서원의 제일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문을 두었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든 돌로 4단을 쌓은 후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홑치마 맞배집이다.
건물의 구조는 전교당과 비슷하여 네모기둥에 공포(供包)를 두지 앟은 간략한 굴도리집이며부연(附椽)이 없ㄴ느
홑처마로 꾸며 매우 검소하게 지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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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덕사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祀)를 지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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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직사(庫直舍)
사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으로 상 . 하에 고직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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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직사에서 본 좌측의 옥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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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진각
선생의 유물과 기록물들의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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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락서재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 때 정사성(鄭士誠)을 비롯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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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 ·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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