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던 석주 이상룡 생가 - 임청각(臨淸閣)
보물 제182호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언제 : 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어디 : 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53 (법흥동)
임청각!
나름 어지간히 여행을 하며 안동을 네 번째 방문하면서 이제야 임청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2017년 8월 15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라고 일컬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신 석주 이상룡님의 생가이다.
국무령이란 대통령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국회의원 시절에 이곳을 방문하여 3시간 여 머물며 깊은 사색에 잠겼고,
대통령이 되려는 결심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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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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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청각 정침 군자정[安東臨淸閣正枕君子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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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君子亭)
보물 제182호
정자의 평면은 丁자 모양이며, 서쪽으로 1칸 크기의 온돌방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두 개 연이어 있다.
다음 1칸 크기의 마루방을 두고 그 북쪽으로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일렬로 늘어선 방과 마루에 연이어 동쪽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큰 대청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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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 내부
여기의 사진은 군자정 실내에 걸린 사진이며 글은 홈페이지에서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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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퇴계선생의 친필
석주 이상룡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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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독립장
대청인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의 친필인 임청각 현판을 비롯하여
농암 이현보, 제봉 고경명, 백사 윤훤, 송강 조사수의 현판이 걸려 있다.
훤칠한 누각 초여름 더위 식혀 신선하니 조망이 새롭고
산에 머금은 축축한 이슬비는 나를 다시 머물게 하는구나.
회갑 잔치 주야로 이어지니 즐겁기 그지없고
경사가 겹쳤으니 즐거움이 진진하도다.
운수가 마을을 에워싸니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이요
갖은 악기 빠른 가락 손님들 흥을 돋운다.
시를 지은들 소용없고 주인 이름 다 아는데
옛날 천태산 신선도인 하계진임에랴.
- 의병장 제봉 고경명 -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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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의 유고를 안고 귀국한 아들 이준형은 일제의 끈질긴 고문과 협박 그리고 변절의 요구를 받자
"일제 치하에서 하루를 더 산 다는 것은 하루의 치욕을 더 보탤 뿐이다."라는 유서를 아들 병화에게 남기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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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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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과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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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선생의 아들, 손자 등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하는 등 3대에 걸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의 산실입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여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으며,
1925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아 독립운동계 분파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망명 직전에는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선생은 망명 직전 임청각에 있는 사당으로 올라가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고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하였습니다.
만주 망명길에 오른 2년 뒤인 1913년 6월에는
아들 이준형을 통해 임청각을 매매하게 한 후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 신주와 위패를 땅에 묻어버렸기에 현재 사당에는 봉안된 신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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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와 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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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방 = 영실(靈室)
정자의 몸채는 정자 서쪽에 있는데 정승이 세 사람이나 탄생한다는 영실(靈室)이 있고, 임청각 출신 9명의 독립유공자
모두 이 방에서 출생했다.
그 평면은 양택론에서 길형으로 말하는 用자형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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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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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관리인과 문화해설사
임청각을 떠나면서
문 대통령이 임청각을 언급하면서 복원사업이 큰 힘을 얻고 있다.
대궐같이 크고 아름다운 집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지만,
광복 후 희생의 대가는 친일파에 의한 또 다른 폭압과 가난뿐이었다.
이상룡 선생의 국적은 2009년이 되어서야 회복되었고, 마당엔 여전히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놓은 철로가 지나고 있다.
임청각 복원사업의 핵심은
일제하에 허물었던 것을 복원하고, 마당을 가로지르며 독립운동의 맥을 끊고자 했던 철도이설일 것이다.
복원은 원형을 되살리는 사전적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의미의 되살림 두 가지가 있다.
현재의 임청각 복원사업의 핵심은 철길을 옮기고 원래 있던 건물을 다시 짓는 것이다.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임청각을 일제가 훼손하기 전의 본래의 모습대로 되돌리는 것이 후손들에게는
적잖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길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면서까지 독립운동의 맥을 파괴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한 행태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는 ‘경북선 철도이설사업’이 마무리되더라도,
철길 일부라도 임청각 한 쪽에 보전하는 것도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자는
역사적 의미로서의 복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좌측 : 임청각 - 도로 - 우측 ; 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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