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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안동) 국보 제16호 -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국보 제16호 -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언제 : 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어디 :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8-1



임청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통일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탑이 우뚝 서 있는데,
자세히 보면 사알짝 기울어져 있다.
 
신세동 7층 전탑.
전탑은 석탑이나 목탑이 아닌 흙으로 구운 작은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린 벽돌탑을 일컫는다.
 
주소는 법흥동인데 탑의 이름은 왜 신세동 7층 전탑이 되었을까?
1962년 이 탑을 국보 제16호로 지정할 적에 동네 이름을 옆 동네 이름으로 잘못 붙인 이유라는데 무슨 이유로
바로잡지 않은 것일까?

신세동 7층 전탑 자리에는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법흥사라는 절이 있었고
법흥동은 이런 연유에서 유래된 것이며,
천 년을 이어온 탑이 일제에 의해 중앙선이 이곳을 지나며 탑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불안한데도 문화재청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현재 임청각 복원 및 중앙선 복선 공사로 철로가 사라지면 기울어진 탑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까만,
다행이다 싶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린 탑신은 1층 몸돌에 감실을 마련하였고,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보수를 한다는 명목하에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엉망으로 발라 놓은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이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탑인데

기단부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시멘트로 덧칠을 엉망으로 하여 국보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는데,

엉망으로 덧칠된 시멘트를 제거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까?










기단부에는 네모꼴로 팔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양각한 판석(板石)을 세워 축조했다











아무리 생각 없는 짓거리일지라도

기단부에 형상물이 새겨져 있음에도 형상물에 시멘트 덧칠을 했으니 형상물은 형태를 잃고 말았다.





안동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영가지』에는

 본부의 비보사찰로 성화 23년(성종 18, 1487)에 개수하였고 당시까지 법흥사가 3간 정도 남아 있었다고 했으며,

이 탑 상륜부의 금동장식은 임청각을 창건한 이명(李?)의 아들 이고(李股, 淸風郡守 역임)가 철거해

그것을 녹여 객사(客舍)에 사용하는 집기를 만드는데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번지수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국보 제16호 신세동 7층 전탑 옆으로는 중아선 철길이 있다.
쉼 없이 오가는 요란한 기차의 울림에 석탑도 아닌 흙으로 빚은 벽돌이 천년 몸살을 앓으며, 일제에 의한 중앙선 공사 이후
75년을 그렇게 버티고 있다.

1942년 중앙선 철로가 놓였는데,
철로 공사 때 탑이 훼손되어 제 모습을 잃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기단부를 돌아가면 감싸고 있는 판돌에는 신장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신장을 새긴 판돌의 위치가 바뀌었고 시멘트로 듬성듬성 보수한 흔적도 애련하다.

지붕엔 듬성듬성 남은 기와의 모습이 애처롭다.
석탑이 아닌 전탑이었으니 세월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배려가, 세월에 씻겨나간 채 생채기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 이후
안동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임청각 원형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2014년 1억 원을 들여 임청각 주변 시설정비에 이어
지난해부턴 4억3000여만 원을 들여 보수 사업 등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참에 임청각 뿐만 아니라
생채기 난 몸으로 천년을 버텨온 국보 제16호 7층 전탑의 몸살도 치료하여 온전한 모습을 찾아야 하고
틀린 지명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다.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85호


본채는 조선 숙종 30년(1704)에 좌승지 이휴식이 지었고, 북정(북정)은 영조 51년(1775)에 진사 이종주가 지었다고 한다.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정자와 연못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나중에 방앗간 채, 사랑채, 외양간채가

더 지어졌다. 사랑마당에는 연못이 있고, 안채의 동쪽에는 3칸 크기의 사당이 있다.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6칸으로 높은 자연석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이 집은 숲이 우거진 야산과 계곡에 흐르는 물을

건물과 잘 조화시켜 사대부 가옥의 전통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