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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제주 여행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과 산방산 용머리 해안

 

곶자왈 도립공원과 산방산 용머리 해안

 

 

 

 

어디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곶자왈)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해안 : 천연기념물 제526호)

 


 예전에는 용머리 해안의 중요성을 잘 몰랐는지 여행사를 통해 두 번이나 산방산 동굴까지 갔는데,

용머리 해안은 간 적이 없다.

 

1박 2일 여정이라 곶자왈을 포함하지 않았는데, 곶자왈을 방문하게 되었으나 도중에 나온 아쉬움에

용머리 해안을 한바퀴 돌아야 겠다는 의지로 용머리 해안 입구에 내려가니

오늘은 날씨 관계로 용머리 해안은 통제되고 있다.

 

 

 




 




 

곶자왈은 수풀이 우거져 원시림 지대를 형성하며

빗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수를 만들기 때문에 제주 생태계의 ‘허파’로 불린다.

 

 

 

곶자왈(Jeju Gotjawal)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과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란 뜻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인데,

제주어로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 같은 암석 덩어리를 의미한다.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자리한 지대에 형성된 숲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서식지로서

독특한 생태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이다.

 


 




 




 

제주도 동부, 서부, 북부에 걸쳐 원시림의 모습으로 넓게 분포하며,

 보온, 보습 효과가 뛰어나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신기한 숲으로 알려져 있다.

용암제방, 용암수형, 용암돔, 부가용암구 등 특이한 지질구조들이 다양하게 분포하여

제주도만의 독특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전체적으로 높이 10m 내외의 키를 지닌 종가시나무가 높은 밀도로 서식하고,

녹나무 등의 상록수가 주로 서식하여 늘 푸름을 간직한 숲이며, 숲에 자라는 나무의 대부분은 과거 숯이나 땔감 등의 목적으로

벌채한 후 밑둥에서 새로운 줄기가 자라서 형성된 것이다.



 


한라산에서 날아든 풀씨와 꽃씨로 형성된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소개되었고

아무리 비가 내려도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유입되는 토질 등을 형성되어 지하수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하수가 풍부하고 보온ㆍ보습 효과가 뛰어나 많은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예컨대 천량금을 비롯해 개가시나무, 가시딸기, 제주고사리삼 등 희귀 특산물이 자생하고 있다.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의 동물

곶자왈은 예로부터 노루와 오소리를 비롯하여 야생조류의 피난처로 이용해오던 지역으로서 지금도 곶자왈에서는

 노루가 먹이를 찾는 모습과 울음소리와 배설물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의 숲 속에는

직박구리, 섬휘파람새, 박새, 동박새, 꿩, 멧비둘기 등의 텃새와 뻐꾸기, 두견, 팔색조, 긴꼬리딱새, 흰눈썹황금새 등의

 여름철새도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더불어 북방산개구리, 청개구리를 비롯하여 도마뱀, 줄장지뱀, 쇠살모사,

누룩뱀, 유혈목이, 비바리뱀 등 양서 파충류의 좋은 서식처이기도 하다.

 

 

 

 

 


 

솔직히

곶자왈은 내 여정에 있지 않았는데 방문한 곳이라,

곶자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 아쉽게도 가치를 모르고 중간에 돌아 나와버렸다. 



 


날씨도 후덥지근한데 곶자왈 숲속은 더욱 습도가 높고 벌레도 많아 끝까지 돌아보지 못하고 나와

산방산 용머리로 향한다. 


  

 

산방산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수월봉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지형 중 하나로 재미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산방산은 한라산 백록담과 인연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 사슴을 사냥하던 사냥꾼이 화살을 쐈는데 하필이면 옥황상제 엉덩이를 맞췄다고 한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서 던졌는데 그게 산방산이 됐다고 전해진다.
 또 제주의 어머니라 불리는 설문대할망이 빨래를 하다 빨래 방망이를 잘못 휘둘러 한라산 봉우리가 날아가 바다에
떨어져 산방산이 됐다는 전설도 있다.

실제로 산방산 둘레와 백록담의 둘레에 자라는 식물이 비슷하다.

 


 

용머리해안 - 천연기념물 제526호

이 곳은 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 중 하나로, 해안 절벽을 모진 파도가 때려서 만들어 놓은 해안 절경이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이나 드넓은 암벽의 침식 지대가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얼마 전부터 제주의 새롭게 소개되는 관광코스 중의 하나이다.


용머리라는 이름은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졌다.

 전설에 의하면

용머리가 왕이 날 휼륭한 형세임을 안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내어 용의 꼬리 부분과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 버렸는데

이때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은 괴로운 울음을 며칠째 계속했다고 한다.


용머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멜기념비가 서 있다.

용머리를 관광하는데는 한시간 정도 소요되며 길이 30~50m의 절벽이 마치 물결 치듯 굽어져 있다.

연인들의 산책코스로도 좋으며 차를 세워두고 한바퀴 돌아보는데 30분 정도 소요된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닷가 바로 옆으로 길이 나 있다.

 

 

 

용머리 가는 길에 화산석의 구멍을 통해 본 풍경 

 

 

 

 

용머리해안 가는 길에 너무 더워 카페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노닥거리다 입구에 가니

용며리해안은 기상관계로 오늘은 관람불가이고 하멜 전시관은 관람 시간이 지났단다.

 

 

 

 

 

 

하멜상선 전시관

관람시간이 지나 이곳도 입장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들과 함께 상선인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으로 항해도중 풍랑을 만나

 대정현 지역에 1653년 8월 16일 표착 되었다.


그는 우리날에서의 13년간의 생활을 기록한 하멜표류기를 작성하였고,

유럽 여러 나라의 언어로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나라를 유럽세계에 최초로 알리게 되었다


 하멜상선전시관은 당시 난파된 「스페르베르호」를 재현하고 내부에 관련자료를 전시한 것으로

하멜표착 350년을 기념하여 2003년 8월 16일 준공되어 개관하였다.

 

규모 : 전장 36.6m, 폭 7.8m, 갑판높이 11m(돛대높이 32m)

 상선의 모델 : 네덜란드에 재현된 17세기 상선 「바타비아호

 



용머리해안은

산방산보다 앞서 생겨난 응회환은 수성화산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50m 이하의 완만한 화산체다.

얕은 바다에서 화산 폭발이 있었고

땅이 약하다 보니 화구가 이동하며 세 차례에 걸쳐 폭발한 지형이다.

 화산 폭발로 나온 용암 등의 화산쇄설물이 굳으며 바위가 됐고 파도나 바람과 오랜 시간 접촉하면서

지금처럼 신기한 모습이 됐다.





  

 

 

송악산

 

 

 

형제의 섬

화산재가 쌓여 태어난 섬이다. 물때에 따라 섬의 개수가 3개에서 8개까지 다르게 보인다.

 

 

 


1653년(조선 효종 4년) 8월 16일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상선 스페르버르호가 일본으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제주 해안에서 난파되었다.

당시 승선인원 64명 가운데 28명이 익사했고 나머지 36명은 조선에 억류되었다.

제주에 표착한지 13년 동안 억류되었던 이 배의 서기였던 헨드릭 하멜(1630~1692) 등 8명은 일본으로 탈출했다.

하멜은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에서 겪은 경험담을 기록한 "하멜 표류기"를 남겼는데,

유럽에 조선을 알린 최초의 자료이다.

 

이 표류기에는

관원에게 체포된 경위를 비롯해 제주, 한양, 강진, 여수 등지로 끌려다니며 겪은 군역, 감금, 태형 등을 소상하게 담고 있다.

부록인 " 조선국기"에서 당시 지리, 풍토, 경치, 군사, 교육, 무역 등에 대해 하멜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했다.

 

하멜 일행은 제주에서 10개월 동안 감금되었다가 한양으로 호송되었으며 전라도 여수에서 유배 도중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한 뒤 네델란드로 귀국했다.


 


하멜 기념비 바로 위에는 산방연대가 서 있다.


산방연대

도지정 기념물 제23-21호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산방연대는 사계리의 산방산 남쪽 해안가 '연디동산'에 있으며, 모슬진에 소속된 것으로 대정현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연대는 최근에 보수한 것이다.

동쪽으로 당포연대(직선 5.7km), 서쪽으로 무수연대(직선 6km)와 교신하였다.



 

 

 

 

 

 

용머리 해안

산방산에서 뻗어나온 줄기가 바다로 향해 용머리처럼 고개를 들었다.

웅장한 규모나 거대한 자연의 문양만으로 탄성이 일어나는 무려 80만 년의 시간을 품은 땅의 층위다. 

 

 약 백만 년 전에 얕은 바다 속 환경에서 마그마가 터져 나올 때 바닷물과 반응하여 격렬히 폭발하면서 품어져 나온

화산재가 분화구 주변에 쌓여 용머리 응회환층이 형성되었다.

그 뒤 바람에 날려 온 모래가 응회한 위에 쌓여 사구층이 만들어졌다. 그 뒤 인접한 곳에서 용암이 땅 위로 흘러나와

용암돔이 만들어질 때(약 80만 년 전)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리거나 약하게 폭발하여

돔 주변에 용암조각들이 쌓여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