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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일본 규슈) 혼자 떠난 규슈 기차 여행 -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 天滿宮)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 天滿宮)

 

 

 

언제 : 2017년 4월 25일 화요일

어디 : 후쿠오카 니시테쓰 덴진 역에서 열차로 약 45분 다자이후 

 

 

7박 8일 규슈 기차 여행 마지막 날

16:55 - 후쿠오카 출발 - 18:20 인천 도착해야 하기에 오늘은 착오가 생기면 안된다.

 

08:00

조식 후 호텔에서 나와

어제 다자이후 가는 길을 니시테쓰 텐진 역에 나가 미리 확인하였기에 오늘은 여유 있게 배낭은 코인라커(사물함)에 맡기고

오무타행 급행을 타고 후스카미치에서 내려 다자이후행 사철로 환승했다.

 

다자이후는 500년 이상 규슈를 통치했던 정부청사가 있던 곳으로 일본의 고대 유적을 많이 품고 있는 곳이다.

 

다자이후 역에서 나와

텐만구 가는 길 양쪽에는 잘 정리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다자이후텐만구는

학문이 뛰어난 스가왈 집안의 대표적인 학자인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를 기리는 신사로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의 본산이라

입시 철에는 일본 각지에서 합격 기원 부적을 사려고 2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리기도 한단다.

 

1591년에 지어진 본전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오무타행 특급

 

 

오무타행 특급

 

 

 

 

 

 

09:55

다자이후 역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이 적다.

다지후역에서 텐만구로 가는 신도에는 일본의 전통 공예품과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학업 성취나 합격을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합격 떡 "우메가에모찌"가 명물이다.

 

 

 

길 위의 도리이(鳥居)가 다른 신사보다 많이 세워져 있다.

 

 

 

 

 

 

 

 어느 집 문 앞 항아리

이것이야말로 일본인의 기질이며 환영하는 마음의 의미로 받아드리면서 한참을 바라 보았다.

 

 

 

지인들을 위한 성의있는 선물을 사고 싶었으나 나오면서 사기로 했다.

 

 

 

 

 

 

 

S커피숖의 특별한 꾸밈

일본의 건축가이자 교수인 쿠마켄고가 설계했는데 크고작은 목재가 서로 얽히고설켜 새 둥지 같은 모습이다.

 

 

 

지금까지 일본 여행에서 본 어느 신사보다 입구가 웅장하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 天滿宮)

 

 

 

고신규(御神牛)

 

스가와라의 유체를 싣고 장지로 향하던 우마차가 갑자기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는 소의 동상

 

악한 기운을 쫓아내 주는 영험한 황소란다.

몸이 아픈 사람이 소의 똑같은 부위를 쓰다듬으면 악한 기운이 빠져가가면서 병이 낫는다고 알려져 오가는 사람들이

 만지는 바람에 반질반질하니 빛이 난다.

 

 

 

 

 

 

텐만구 안내도

 

 

 

다리를 건너면 텐만구

 

 

다이코바시(太鼓橋)

 

넓은 경내에는 매화나무, 녹나무, 창포 등 아름다운 꽃이 계절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않고 봐야 할 것은

스가와라의 유체를 싣고 장지로 향하던 우마차가 갑자기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는 소의 동상과

연못에 아름다운 반영을 보여 주는 아치형 다리인 다이코바시(太鼓橋) 등이다.


 

 

 

 

 

 

고목에 기생하는 식물이 마치 팔뚝이나 다리에 난 털 같다.

 

 

 

 

 

 

 

 

 

 

 

 

 

 

 

도리이 뒤로 텐만구 본전 입구가 보인다.

 

 

 

일본의 국보 등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호모쓰덴, 스가와라노미치자네의 삶을 하카타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는

 스가코 역사관이 있지만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서기 660년쯤 이곳은 엄청난 긴장에 쌓여 있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멸망하면서 많은 유민들이 규슈 북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을 다스리던 사이메(齊明) 여왕은 백제를 구원하려고 긴키(近畿) 지방에 있던 수도 아스카(飛鳥)에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규슈로 진군한다.

그러나

사이메 여왕은 661년 병으로 죽고,

아들 나카노오에(中大兄) 태자가 유언을 받들어 하카타에 도착한 후 백제에 구원군을 보낸다.

 

663년에 2만7000여명의 병력이 백제 부흥군과 연합해 백촌강(白村江, 금강 하구)에서 대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만다.

왜 그들은 이렇게까지 백제를 부흥하기 위해 노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