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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일본 규슈) 혼자 떠난 규슈 기차 여행 - 가고시마 명승 센간엔(仙巌園)

 

명승 센간엔(仙巌園)

 

 

 

 

 간엔(仙巌園)

 

 일본을 대표하는 다이묘(번주) 정원으로 1658년 당시의 번즈 시마즈 미쓰히사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사쿠라지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인기가 많은 곳이다.

 

번주들은 보통 성에 살았지만,

가끔 이곳에 머물면서 눈 앞에 펼쳐진 바다와 웅대한 사쿠라지마의 모습을 보면서 즐겼다.

일본 다이묘 정원은 연못과 축산을 반드시 만들지만 센간엔에는 바다와 화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센간엔의 특징으로 1958년에 국가 중요 정원으로 지정되었다.

 

1658년 이곳의 영주였던 시마즈미쓰히사(島津光久)의 정원과

개인 별장으로 꾸미기 시작한 곳으로 현재도 그의 별장이었던 고텐(御殿)을 비롯한 옛 건물과 연못 등이 남아 있다.
이소테이엔(磯庭園)이라고도 불리는 이 정원을 꼼꼼히 둘러본다면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티투어 버스가 이곳까지 운행하기 때문에
가고시마 시내와 함께 센간엔까지 구경을 할 계획이라면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센간엔 입구

입장료 1,000엔이면 제법 비싸다.

 

 

 

 

일본 근대화의 선구 '집성관 사업'

에도막부 말기의 사쓰마 번(현재 가고시마)은 구미 열강의 아시아 진출과 식민지 정책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번 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중심이 되어 적극적으로 서양기술을 도입해, 군비와 산업 근대화에 힘썼다.

이것이 집성관 사업이다.

이곳 이소지구에는 집성관 사업의 중핵을 맡은 공장들이 있었는데, 초기에는 수차 동력과 재래기술을 살려 양서를 참고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함선 건조와 증기기관의 제조, 반사로에 의한 철제 대포의 주조에도 도전했다.

 

1863년의 사쓰에이 전쟁을 거쳐 더 많은 서양의 증기기관과 기계류를 도입, 메이지 유신 이후,

그 기술이 각지로 전해지며 집성관은 일본 산업혁명의 선구가 되었다.

 

가고시마 추오 역 앞 "젊은 사쓰마의 군상" 생각난다.

 

 

 

사진 가장 뒤에 센간엔이 있고 앞에는 집성관 사업채들이 있었다.

 

 

 

철제 150파운드 포/복원품

 

 

집성관 사업과 반사로터

 

석축은 대표를 주조하기 위한 반사로의 기초 부분이다. 이곳에는 사쓰마 도자기 기술로 구워 낸 내화벽돌을 사용해

축조한 서양식 반사로가 있었다. 구미 열강의 함선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위해서는 대형 캐논포를 배치한 포대 요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쓰마 번은 네델란드인 휴게닌의 도면을 참고하여 자력으로 반사로 건설에 착수했다.

반사로는 돔형태의 용광로 천장에서 불길을 반사시킨 강한 열로 철을 녹여 대포의 주형에 흘러 넣는 시설이다.

1호 용광로는 실패로 끝났으나 완성한 2호 용광로에서는 대표를 제조했다.

 

 

 

기념품 및 식당가

 

 

 

 

 

 

 

센간엔 정문

이것은 1895년에 만들어진 센간엔 정문으로 재료는 인근 산에서 서식하는 녹나무이다.

문 윗부분에는 시마즈 가문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다는데 확인하지 못했네.

 

 

 

기념품 상가

 

 

 

주석문

이 문은 19세기 말까지 저택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지붕이 주석으로 덮여있는 것이 특징으로

일본에서는 주홍색 문을 만들수 있는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뿐이었다.

 

 

 

저택에서 본 사쿠라지마 화산섬

이런 날은 허연 연기를 내뿜으면 더욱 멋지게 보일 사쿠라지마인데.

 

 

 

저택

번주의 별장으로 지어졌으나 1871년 이후 살림집으로

 

 

한무리 학생들이 여행을 와 단체 사진을 찍는다.

 

 

 

 

 

 

사자 석등롱

이것은 원내에서 가장 큰 석등으로 지붕과 같이 보이는 돌은 약 13㎡이며

그 위에 올려진 것은 상상 속의 동물인 「사자」라네.

 

 

 

보가쿠로(望嶽樓)

이 건물은 「보가쿠로」라고 불리며 17세기 조에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왕이 상납했다.

마루에 깔린 "센"이라고 불리는 기와는 중국 진나라 시대의 아방궁의 것을 묘사했다고 전해지며, 내부에 걸렸던 편액은

중국 성서 왕희지의 글을 모방하였던 것이리가 전해진다.

 

 

 

센진간

바위에 새겨진 「센진칸 千尋」의 의미는 「가장 큰 바위」라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든 1814년 3,900명 이상의 사람이 3개월에 걸쳐 새긴 것으로 일본에서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일은 거의 없는데,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교쿠스이정원

이 정원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시를 짓고 즐기는 「교쿠스이 연회」가 열린 장소로,

상류에서부터 흐르는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완성해야만 한다.

센간엔의 교쿠스이 정원은 200년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일본 교쿠스이 정원 중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

 

ㅎㅎㅎ

우리는 천 년 전 이미 포석정을 만들어 그렇게 놀다가 927년 경애왕과 왕비,녀, 신하들이 후백제 견훤에 죽임을 당했는데

일본은 200년이 조금 넘었다고

 ▽

 

 

 

 

 

푸른 바다와 가고시마 시내가 보인다.

 

 

 

가고시마 앞 바다

 

 

 

사쿠라지마

 

 

 

 

 

 

 

깊고 튼튼하게 잘 정비된 수로

 

 

 

센간엔의 안의 조그만 신사

 

 

 

기념품 진열창에 비친 사쿠라지마

 

 

 

고양이 사당

이것은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고양이를 모시는 사당으로

16세기 말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 출병을 명 받고 그때 그가 데리고 간 7마리의 고양이 중에 살아 돌아온 2마리를

모신다네.

 

그냥 지나치려다 하다못해 고양이로도 우리에게 아픔의 흔적이 남아 속이 아렸다.

 

한마디 하고 싶다. OOO들!!!

 

 

 

18:00

업무 종료가 되어 옷 갈아 입고 퇴근하려는 모습

 

 

쓰루가네 신사

센간엔 입구 좌측에는 시마즈가문 역대 당주와 가족을 모시는 신사가 있다.

 

그리고

신사 옆으로는 쇼코 슈세이칸 - 1865년 준공한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기계공장이 박물관으로 공개 되고,

사츠마키리코 공장 - 슈세이칸 사업으로 컷 글라스 제조 공정을 무료로 볼 수 있는데,

18:00

시간이 지나 볼 수 없었으나 이 집성관이 일본 근대화의 거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부러웠다.

 

 

이 버스가 시티투어 버스로 시로야마 전망대도 둘러보고 센간엔을 보고 다시 가고시마 추오 역으로 돌아간다.

 

 

영주 정원 "센간엔"과 근대화의 거점 "집성관"

 

센간엔은 사쓰마 번주의 별저로 제 19대 시마즈 미쓰히사에 의해 만지 원년(1658년)에 지어졌다.

경치가 유난히 아름다운 영주 정원으로 알려진 이곳은 집성관 사업의 무대이기도 하다.

동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해외와 교류하던 사쓰마는 외국들의 움직임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19세기 초 서방 국가들이 모두 아시아로 진출하자

제28대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군비를 근대화하고 산업을 일으켜 국력을 강화하고자 1851년 집성관 사업에 착수했다.

바다에 인접한 이곳은 원재료와 자재운반에 편리했고 세키요시로부터 끌어온 물은 공업용수로 활용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구 집성관 기계공장과 반사로 유적 등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이 된 유산들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갑신정변, 중국은 신해혁명,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일어나 근대화로 변화를 시도하지만

혁명에 성공한 나라는

근대화에 성공했고 실퍠한 나라는 서구 열강에 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