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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일본 규슈) 혼자 떠난 구마모토 기차 여행 - (가등청정-加藤淸正) 신사

 

혼자 떠난 구마모토 기차 여행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加藤淸正) 신사


 

 

 

계획대로 구마모토에 내리지 않고

 곧바로 가고시마로 내려갔다면 남국의 풍경에 감탄하고 만족하며 일정에 차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봐야 할 곳을 보지 않고 지나침은 여행자에겐 모욕이다.

 

정말

구마모토 성벽은 한편의 예술품이었고, 견고하기로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그런데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 성을 쌓은 것은 임진왜란 때 울산 서생포 왜성을 쌓으며 경험한 기술이었다니 .....

 

한순간

자연의 꿈틀거림으로 구마모토 성은 상처만 남았으며, 꿈틀거림의 의미와 파장을 두 눈으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살면서

 우연이 쌓이다 보면 곧 인연이 되는 것처럼,

다시 좋은 기회가 있으면 더 나이든 모습으로 다시 구마모토 성과 가토 기요마사 신사를 찾아

오늘을 추억하리라.

 

 

 

가등청정 신사 가는 길

구마모토 성 곳곳이 지진으로 무너져 아직 복구도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가등청정 신사 입구

 

솔직히

지난번 오사카 성을 소개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를 소개할까 말까 망설였음은 사실이다.

내 교육 수준으로 그는 우리 선조의 철천지원수였기 때문이다.

 

이번 구마모토 성을 소개하면서 가토 기요마사 신사를 소개할까 말까를 다시 망설였음은 사실이다.

행여

사실과 다르고 미화되지 않을까? 염려해서.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加藤淸正)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도와
일본 전국의 통일에 기여했고 열렬한 불교신자여서 기독교 박해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히데요시의 친척인 그는 성인이 되면서
군인이 되었고 곧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592년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선봉에 서서 잔인하게 싸웠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그를 '악귀 기요마사'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때 제2군 사령관이었고 정유재란 때에도 참전하였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의 섭정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이묘[大名]들의 연맹에

대항해 지위를 확보하는 데 협조했다

여러 차례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일본 남동부에 있는 구마모토 대영지의 세습영주가 되었다.

구마모토에서는 자기 영지의 하안 개발계획과 자신의 성(城)을 건축하는 데에 힘을 쏟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죽자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는 그의 봉토를
호소카와 씨[細川氏]에게 넘겼다.

 

 

 

신사 내부 풍경

 

 

 

 

오사카 성 앞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신사가 있더만,

구마모토 성 천수각 건너편에는 가등청정 신사가 있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는 서생포 왜성이 있는데,

이 왜성은 1593년 임진왜란때 가또 기요마사(가등청정)이 울산 서생포에 쌓은 성으로 울산 왜성 혹은 서생포왜성이라 부른다.

왜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쌓았던 일본식성(日本式城)을 말하며,

현재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 남아 있는 문화유적이다.

 

 

 

신사 내부 풍경

 

 

 

가등청정 신사

 

 

 

 

 

 

 

신사 안에 곧 어떤 제식이 벌어질 듯 젊은 연인이 앉아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오래 머물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가등청정 신사에서 본 구마모토 시내

 

 

 

 

 

 

 

 

 

신사를 나서며

어그러진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쌓아둔 위험한 길을 통과해 가등청정 신사에 와서 공물을 바치는 일본인들은

무슨 마음일까?

 

 

우리에겐 가등청정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침략자의 우두머리로 매우 일그러진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원수인데,

가등청정 신사를 찾아 공물을 바치는 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며 그에게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역사는 그 민족의 언어이고 자연은 온 인류의 언어이다.

 

비록

오늘 가등청정 신사를 돌아보며 조선사의 아픈 날을 기억하고, 일본인에게는 무엇으로 비치는지 궁금증을 담고

구마모토 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