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박물관 소장 "이집트 보물전" -3
영원한 삶을 위한 껴묻거리
영원한 삶은 풍요로움과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세의 삶이 사후세계에서도 지속되기를 바라던 상류층 사람들은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보석으로 만들어진 장신구, 화장도구, 음식을 담았던 많은 항아리 등은
사후세계에서도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껴묻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후세계에서 하인처럼 부릴 수 있는
"삽티(Shabty)"라는 인형을 무덤에 함께 넣어 현재의 윤택한 삶이 사후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빵, 맥주, 아마천 등을 바치는 그림이 새겨진 새김돌에서 풍요로운 내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한 심판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죽은 이는 자신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정의를 상징하는 깃털과 무게를 잽니다.
만약 죄가 많으면 심장이 무거워지게 되고, 심장은 괴물 아무트(Ammut)에게 먹히게 되어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죄가 없으면 깃털과 균형을 이루게 되어 영원한 삶을 얻게 됩니다.
가족상
사카라 기원전 2371~2298년 경 - 제5왕조~제6왕조 - 석회석
상류층 이상인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들의 가족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조각상에는 아버지가 다른 가족 구성원들보다
크게 표현되어 가부장적 사회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부인은 남편의 종아리를 붙잡고 앉아 있고, 아이는 아버지의 오른쪽에 서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습니다.
석관 덮개(파이인푸)
하르다이(키노풀리스) 기원전 305~30년 경 -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 석회석
이 거대한 석관 덮개는 왕실 서기이자 제사장인 "파디인푸"를 위해 제작된 것입니다.
이집트 상류층 중에서도 일부만이 정성스레 만들어진 석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상류층 중에서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질 낮은 나무나 흙으로 만든 관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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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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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덮개
사카라 기원전 1295~1185년경 - 제19왕조 - 나무에 회칠 후 채색
나무로 만든 미라 덮개로 일상복을 입고 있는 죽은이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주인공이 왼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ankh)"입니다.
인물 조각상
룩소르 기원전 1539~1390년 - 제18왕조 - 석회석
이집트에서 서기는 문자를 기록하는 역할을 했고, 상류층에 속할 정도로 신분이 높았습니다. 머리 부분이 없는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서기였던 "제후티'입니다.
서기의 조각상은 이렇게 글을 읽거나 쓰소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무릎 위에 놓인 기도문에는 의식에 참여한 사제와
다른 서기들이 "제후티"를 위하여 봉헌 문구를 소리 내어 읽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사람 모양 장식
귀거리와 목걸이
묵걸이
기원저 1539~1292년 - 제18왕조 - 파이아스
신왕국 시대의 목걸이 중에는 부적의 의미를 담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목걸이에 조상들과 소통 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조상들의 흉상, 부활의 의미를 가진 수레국화, 재생을 상징하는 개구리 그리고 어머니와 갓난아이를 보호하는 여신
티와레트의 상징인 임신한 하마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장식들이 달려 있습니다.
항아리
아부 자이단 기원전 3300~3100년 경 - 나카다 3기 - 테라코타
이 단지는 현재까지도 이집트에서 쓰이는 것으로 아랍어로 쿨라(Qula)라고 물병과 유사합니다. 이 용기에 물을 보간하면
시원하게 유지되고, 위쪽의 여과기는 물 속에 들어 있는 모래를 거르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머리받침대
사카라 기원전 1539~1190년 경 - 제18왕조~제19왕조 - 나무
머리받침대는 평상시 잠을 잘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미라의 머리를 받치는 용도로도 사용하였습니다.
이 머리받침대는 지지대 부분에 봉헌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껴묻거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파타이코스
나쟁이 신 파타이코스는 뱀과 악어로 부터 죽은이를 보호하는데, 이를 위해 이 부적을 끈에 연결하여 죽은이의 목에 걸었습니다.
네페르툼
네페르툼은 농작물의 성장을 돕고 질병을 치유하는 의술의 신으로 여겨집니다.
와제트 눈
와제트 눈은 호루스의 왼족 눈으로 "완전함, 밝은 통찰력, 풍요함"을 상징합니다.
제드 기둥
제드 기둥은 우뚝 선 오시리스의 모습과 관계가 있으며 상징적으로는 "안정"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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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스카라브
쇠똥구리는 "생성과 재생'을 뜻하는 케페레르(Kheperer)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 부적에는 사후 심판의 자리에서
심장이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도록 하는 주문이 있습니다.
- 아래 사진은 쇠똥구리 밑에 새겨진 주문을 거울로 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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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모습의 "바(ba)"
"바"는 영혼을 의미하며, 흔히 사람의 머리에 새의 품으로 등장합니다. 사람과 새의 결합은 다른 영역까지
갈 수 있는 "바"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이시스의 매듭
이 부적은 이시스의 옷에 있는 매듭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시스의 매듭"이라고 부르며
"생명"과 "삶"을 의미합니다.
칼
기원전 1938~1759년경 - 제12왕조 - 구리, 흑단, 상아
선왕조 시대부터 무덤에 껴묻거리가 등장하는데, 성별에 따라 그 종류가 달랐습니다. 특히 남자의 경우, 장례용으로 만든 칼을
무덤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지팡이 머리 부분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달도끼와 같이 나무로 만든 손잡이에 끼워 쓰는 도구
새김돌(네페루 여왕)
테베(룩소르), 데르 엘바흐리, 네페루 여왕 무덤 기원전 2008~1957년경 - 제11왕조 - 석회석에 채색
화장용 팔레트
게밸리온 기원저 3500~3100년경 나카다 2기~나카다 3기 - 편암
이집트인들은 납작한 돌판으로 만든 팔레트에 방연석(方鉛石)을 빻아 동물서 지방과 섞어서 콜(Kohl)이라 부르는
눈 화장품을 만들었습니다.
세네트
테베(룩소르) 기원저 1390~1353년경 - 제18왕조 - 파이앙스에 유약
"세네트"는 우리나라의 윷놀이와 비슷한 놀이입니다. 두 명이 단추처럼 생긴 말과 고깔처럼 생긴 말을 각기
7개씩 나누어 가로 3칸, 세로 10칸의 격자판에 막대기처럼 생긴 주사위를 굴려서 자신의 말을 옮겨가며 진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놀이에서 승리한 사람은 사후세계에서 환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믿어졌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세네트는 3천 년 이상 이집트에서 인기 있는 놀이였고, 무덤에 부장되기도 하였습니다.
접시가 있는 봉헌 받침
사카라 기원전 2500~2350년경 - 제5왕조 - 석회석, 화강암
접시가 올려진 봉헌 받침의 앞면과 그릇 안쪽에 새겨진 글자로 보아 곡물 창고를 감독하는 "이루카프타(Irukaptah)"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봉헌 받침은 방문객들이 봉헌물을 바칠 수 있도록 무덤 입구 가까이에 놓였습니다.
단지
에드푸 기원전 2675~2625년경 - 제3왕조 추정 - 섬록반암
단지
기원저 2675~2170년경 - 고왕국 시대 - 사문석
돌로 만든 이 단지는 죽은 이를 위해 바친 음식물을 저장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단지는 단단한 돌을 끌로
전체겆인 모양을 만든 다음 표면을 모래로 갈아서 만들었습니다.
접시
기원저 1539~1190년경 - 제18왕조 ~제19왕조 - 동석
거위 두 마리가 정교하게 조각된 이 접시는 실제로 음식을 담는 데 사용되기도 했지만, 무덤의 껴묻거리로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거위를 재료로 한 음식은 연회에 자주 등장했으며, 죽은 이를 위해 자주 바쳤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봉헌용 오리 모형
기원저 1539~1292년 경 - 제18왕조 - 설화 석고
샵티의 머리
텔 엘아마로나 - 기원전 1352년 경 - 제18왕조 - 석회석
이 네 점의 샵티 머리는 "아케나텐 왕"을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샵티 가운데 일부로 각각 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돌의 색에 따라 붉은색은 태양신 레(Re), 검은색은 비옥한 토양을 상징하는 오시리스(Osiris)와 관련이 있습니다.
무덤에 부장되는 작은 인형을 '샵티(Shabty)'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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