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박물관 소장 "이집트 보물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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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수의
룩소르,데이르 엘 메디나 - 기원후 100~225년 - 로마시대 - 아마천에 채색
로마 시대에 만들어지 이 수의에 그려진 초상화의 주인공은 "네페르호테프"입니다.
이 초상화 수의는 나무로 된 뚜껑을 대신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1948년에 프랑스 고고학자 베르나르 브뤼예르가 발견한 것으로
당시에 이미 일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는데, 1970년대에 이를 복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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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664~525년 - 제26왕조 - 석회석
카노푸스 단지는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신체 내장기들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한세트가 네 개로 이루어져 있는 카노푸스 단지의 뚜껑은 각각 호루스의 네 아들인 "자칼(두아무테프, Duamutef),
매(케베세투프, Qebehsenuef), 사람(임세티, Imsety), 개코원숭이(하피, Hapi) 모양으로 표현됩니다.
이 단지들은 미라 제작 방법이 변화하여 장기를 꺼내지 않게 되면서 뚜껑이 열리지 않는 단순 봉헌 용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미라 붕대
기원전 332년 ~ 기원후 1세기 - 프롤레마이오스시대~로마시대 - 아마천에 잉크
아마천으로 만든 붕대는 미라 자체를 보호하기도 하였지만,
죽은 이를 사후세계로 잘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인 "자자의 서(Book of the Dead"의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전시된 붕대에는 죽은 이가 이집트의 특정한 장소를 지키는 신들의 이름을 외우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이 있는
"사자의 서" 제112장에서 제116장까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사자의 서" 제 145장에서 제146장까지의 내용인 "갈대 밭(Field of Reeds)에 있는 오시리스의 집으로 들어가는
21개의 문들이 묘사되어 있는 붕대도 있습니다. 각 문에는 이를 지키고 있는 신과 문지기들이 있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이 신들의 이름과 모습을 알아야만 사후세계로 확식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미라 가면
기원후 2세기 - 로마 시대 - 석고에 채색
로마 시대에 석고롤 만든 가면은 이집트의 전통을 이은 마지막 단계의 것입니다. 이 개성적인 로마 양식의 가면은 전통적인
이집트 가면과 마찬가지로 미라의 얼굴을 덮을 때 사용한 것입니다. 머리모양과 수염은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모습을
그대료 표현하였습니다. 현재는 피부가 하얗게 보이지만 원래는 이집트 초기의 남성 미라 가면처럼 짙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관 덮개
토우라 기원전 664~332년경 - 제26왕조~제31왕조 - 테라코타에 채색
흙으로 만들어진 관 덮개는 비교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들은 특징이나 모양새가
제각기 달라 전문적으로 관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라 가면
기원 후 1세기 - 로마 시대 - 석고에 채색
실물보다 다소 작은 이 가면은 젊은 여성들의 머리 모양을 보여줍니다. 머리는 모두 뒤로 넘겨 빗어 정수리 쪽에서
묶었고, 드러나 이마 위는 짧은 곱슬머리가 살짝 덮고 있습니다.
머리와 눈은 검정색으로 칠했고, 목의 양 옆에는 끈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 여인이 이집트 머리장식을 쓰고
있었음을 추정하게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와 로마 시대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수의로 주검을 싸흔 풍습이 유행하였습니다.
현재 일부부만 남아있는 이 수의에는 중앙에 위치한 오시리스의 하반신 양 옆으로 이 수의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성과
그의 충실한 보호자인 네프티스가 서 있습니다. 경배의 표시로 한 손을 들고 있는 이 남성은
다른 손에 장례화한을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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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수의
시카라 - 기원 305~39년 -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 아마천에 채색
'바(ba)'가 그려진 관의 일부
기원전 945~712년경 - 제22왕조 - 나무와 석고에 채색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인 '바'를 사람의 머리를 한 새로 표현하는데, 관 안쪽 면에 주인공으로 짐작되는 이의 얼굴을
한 '바'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습니다. 뒷면에는 죽은 이를 보호하는 '이시스의 매듭(Knok of Isis)'이 그려져 있습니다.
미라 가면
기원전 1938~1292년 경 - 제12왕조~제18왕조 - 판지
이 가면은 크기가 작고 금으로 장식된 점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아이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의 앳된 모습을 잘 표현하였지만, 사후세계의 왕인 오시리스를 상징하는 수염을 함께
표현한 것이 특이합니다.
아이의 관
기원전 300년경 - 토기
흙으로 빚은 그릇 같은 이 관은 어린 아이의 무덤에 사용된 것입니다. 윗부분에 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뚜껑이 있었던 것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이 이와 같은 형태의 관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사자의 서
사카라 기원전 1070~945년경 - 제21왕조 - 파피루스에 염료
'사자의 서'는 죽은 이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사후 세계로 안전하게 들어가기 위해 외워야 하는 주문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파피루스에는 태양신에게 봉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 세로로 쓰여진 글들을 죽은 이를 향한
신의 인사와 죽은 이의 이름 및 가계도 등을 적은 것입니다.
신 앞에 개인을 묘사하는 그림은 중왕국 시대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승의 서
테베(룩소르) 기원저 1075~945년경 - 제21왕조 - 파리루스에 안료
이 '저승의 서'는 제21왕조에 살았던 한 사제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승의 서'가 처음 만들어졌던 제18왕조 초기에는
왕실 무덤의 벽에만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400~500년 가량 지난 후에는 일부 부유한 계층도 이러한 내용이 담긴 파피루스를 제작하였습니다.
저승의 서
테베(룩소르) 기원전 945~712년 - 제22왕조 - 파피루스에 안료
인물(파디마헤스)볼록형 조각상
레온토플러스 기원전 680~650년경 - 제25왕조~제26왕조 - 화강암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파디마헤스'로 웅크리고 앉아 팔짱을 끼고 얼굴을 들어 앞을 져다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조각상은
신전의 바닥에 놓여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식과 행렬을 바라보는 '파미다헤스'의 모습을 표현했을 것입니다.
인물 조각상을 신전에 모시는 이유는 자신의 영혼이 무덤에서 나와 신전에 모셔진 조각상에 들어가 신에게 바져진 재물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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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가우트세셰누)
테베(룩소르) 기원전 700~650년 - 제25왕조 - 아마천, 석고, 안료
이 관의 주인공인 '가우트세셰누' 는 '연꽃 꽃다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관에는 여러 신들이 그려져 있는데, 사후세계의 왕 오시리스, 죽은이를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
카노푸스 단지의 주인공인 호루스의 네 아들이 표현되어 잇습니다. 하늘의 신인 날개 달린 딱정벌레 케프리,
활짝 편 날개와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따오기 모습을 한 지식의 신 토트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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