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서원(靑溪書院)
경남 문화재자료 제56호
언제 : 2016년 12월 25일 일요일
어디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청계서원과 남계서원은 같은 동네에 위치하여 불과 300m 떨어져 있는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부유한 서원이라면, 청계서원은 탁영 김일손의 위패를 모신 평범한 서원으로
두 분 모두 무오사화 때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다.
연산군은 원래 사림파의 간언(諫言)과 권학(勸學)에 증오를 느끼고
학자와 문인들을 경원(敬遠)해 평소 사림파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연산군은
「조의제문」을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한 글이라는 유자광 등 훈구파의 주장을 문제삼아
김일손과 표연말(表沿末), 정여창(鄭汝昌), 최부(崔溥) 등 김종직 일파 20여 명을 비롯해 모두 40여 명을 사형에 처하거나 유배시킨
사화가 바로 무오사화다.
청계서원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은 불과 300m 떨어진 한 마을에 있는 서원이다.
청계서원 관리하는 사람도 있더만 홍살문 상단을 고쳤으면 좋겠다.
청계서원
강당
강당 앞 소나무
만일 이 소나무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황량하게 보였을지.
동재
구경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서재
역가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내삼문
청계사
사당에서 내려다 본 청계서원
서원(書院)은
조선중기 이후 선현에 제사를 올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사림들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이다.
서원은 당나라 때 처음 생겼으며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던 송나라 이후에 크게 성행하였는데,
조선 중종 때 주세붕이 안향을 모시기 위해 백운동 서원=소수서원을 세운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서원들이 전국에 세워졌다.
조선후기에는 전국에 서원이 너무 많아졌고, 특정 인물 또는 문중의 중심지로 당파싸움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탈세 등 여러 문제점이 생겨났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47개 서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훼철되었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유허비
김일손(金馹孫, 1464년~1498년 7월)
조선 성종.연산군 때의 문신이며 학자, 사관, 시인으로,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이극돈(李克墩) 등의 비행과 윤필상 등의 부패 행위도 사서에 기록했다.
1498년에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이극돈을 통하여 연산군에게 알려져 사형에 처해졌고,
다른 많은 사류(士類)도 함께 화(禍)를 입었다.
조의제문(弔義帝文)
세조를 비방하고, 노산군(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으로. 곧 체포되어 심한 고문 끝에
대역죄로 음력 7월 광통방(廣通坊)에서 능지처참 되었다.
남덕유산이 가까이 보인다.
청계서원을 나서며 돌아본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은 함양 화림동계곡의 거연정과 농월정을 찾아가다가
이정표를 보고 찾아갔는데,
이 기회에 무오사화에 대해 잊었던 기억들을 되살리고 탁영 김일손과 일두 정여창 선생에 대해 다시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
다시
수려하게 솟은 남덕유산을 바라보며 우리의 목표인 함양 화림동계곡 거연정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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