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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강원 여행

(강원 삼척) 관동팔경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관동팔경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보물 제213호

 

 

 

 

언제 : 2016년 11월 16일 수요일

어디 :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지난 6월 30일

3박 4일 여정으로 동해안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여행하면서 고성 청간루와 강릉 경포대를 보았는데

올여름 특별한 더위로 남은 구간을 나서지 못하다가

11월 16~18일,

2박 3일 여정으로 삼척 죽서루와 울진 망양정 그리고 평해 월송정까지 여행길에 나섰다. 

 

만추의 여행길

05:35

솔직히 약간의 설렘으로 집을 나서

동서울터미널에서 08:00 삼척행 고속버스에 올라 삼척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1:40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죽서루는

삼척 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약 10분이면 닿는다.

 

 

 

 한강과 잠실 롯데월드몰

아침 7시 즈음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동서울 터미널까지 오는 시간이 많이 걸려 08시 버스를 타야 했다.

 

정오에 삼척 죽석루에 도착했다.

 

 

삼척 죽서루 : 보물 제213호

이 누각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정종 때의 문인 김극기가 쓴 죽서루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후반에는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1403년(태종 30 당시 삼척 부사 김효손이 고쳐 지었다.

절벽 위 자연 암반을 기초로 하여 건축되어 있고, 죽서루 아래의 17개 기둥 중 아홉 개는 자연 암반을 기초로,

나머지 여덟 개의 기둥은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워 17개의 기둥 길이가 각각 다르다.

 

누각에 걸린 글씨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1662년 (현종 3) 부사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와 "죽서루"는 1711년(숙종 37) 부사 이성조의 글씨이고,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1837년(헌종 3)

부사 이규헌이 쓴 것이다.

이 밖에 숙종, 정조 그리고 율곡 이이 선생 등 많은 명사들의 시(詩)가 걸려있다.

 

 

〈죽서루도〉

 

죽서루도

1788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죽서루의 모습으로 오십천이 S자형으로 크게 감돌아가는 석벽이 눈에 띈다.

 

 

 

죽서루

관동 8경 중 유일하게 바다가 아닌 강을 품고도 제 1경으로 꼽히는 삼척 죽서루.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의 맑은 물,

깎아지른 듯 한 천 길 벼랑 위 고고하게 서 있는 죽서루

 

 

 

누각의 전면에 걸려 있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은 1715년(숙종 41)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글씨로

죽서루를 관동에서 제일가는 누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누각 안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허목의 글씨로

이것은 오십천의 계류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죽서루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 '제일계정(시냇가에 있는 정자로는 제일)’ -

 

 허목이 삼척부사로 부임해왔던 때는 그의 나이 68세였다.

남인의 영수였던 그는 서인의 영수 송시열과의 ‘1차 예송논쟁’에서 패배해 삼척부사로 좌천됐다.

 

 

 

죽서루와 오죽

 

 

 

죽서루 북쪽 누각 출입구 기둥은 3개이나

남쪽 출입구 기둥은 4개로 같은 건물에 출입 기둥이 다른 것도 특이하다.

 

 

 

북쪽에서 본 누각 안에는 많은 사람의 글이 있다.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1837년(헌종 3) 부사 이규헌이 쓴 것이다.

- 바다 신선이 노니는 곳 -

 

 

 

조선 21대 정조 어제시

- 정조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김홍도 그림을 보고 지은 시 -

 

조석전애기일루 - 돌을 쪼고 절벽 깎아 누각 하나 세웠구나

누변창해해변구 - 누각 옆에는 푸른 바다 해변에는 갈매기

죽서태수수가자 - 삼척 고을 태수는 어느집의 아드님이신가

만재홍장벽야유 - 기생을 가득히 싣고 밤 뱃놀이 하겠구나  

 

 

 

 

 

 

 

송강 정철의 글

관동지역의 경승을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정철이다.

정철은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그는 내금강과 외금강,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조선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관동별곡〉을 지었다. 죽서루에 올라 시를 남겼다.

 

 

 

죽서루 내부의 풍경

 

 

 

죽서루

출입문 기둥도 남측은 4개 북측은 3개로 다르다.

 

 

 

죽서루 마루를 받치는 기둥들은 자연 암반을 초석하여 기둥 길이가 다르다.

 

 

 

 

 

 

척박한 바위를 의지하여 서 있는 고목

 

 

죽서루 옆에 있는 구멍바위에는 문무왕의 전설과 다산과 화목의 상징인 선사시대 성혈 자국을 살펴볼 수있다.

 

신라 문무왕이 죽어

동해를 지키는 용이되어 바다를 순행하다가 삼척 오십천으로 올라와 강변 절벽을 주변 경치에 어울리게 깎아 놓고

 승천할 때 바위를 뚫고 올랐다는 용문

 

용문 - 구멍 바위

 

 

 

죽서루에서 오십천을 바라보다.

 

 

 

죽서루를 벗어나 오십천으로 간다.

 

 

오십천

푸른 강물이 S자형으로 휘감아 흐르는 약 20m 절벽 위에 죽서루가 도도히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 보고 있다.

 

오십천은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흐른다.

동해안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까지 50여 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오십천이 죽서루를 벗어나 이렇게 흘러 동해로 든다.

 

 

 

죽서루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죽서루에 닿으니

오색 단풍잎 바람에 날리어 평일 한가한 죽서루 뜰에는

낙엽만 서성인다.

 

척박한 절벽 기대어 쪼골쪼골 나이 든 고목들

용의 허리 닮은 들쑥날쑥 기암들

신비한 구멍 바위 허리 구부려 죽서루 볼 수 있음은

늦은 나이 행복이다.

 

오십천 푸른물은 죽석루 담고

가난한 내 가슴은 한사람 담아

그렇게 살으리 그렇게 살으리

 

오십천 절벽 위

고고히 두 발 딛고 임 향해 맹서하며

휘감아 나가는 푸른 물에 오죽의 푸른 잎 띄운다.

 

 

 

내가 죽서루에 올 것을 알고 코스모스는 여태 기다리고 있었다.

 

 

 

백발을 날리는 억새도 죽서루 아름다운 자태를 찬양하고

 

 

 

이름모를 들풀도 노란꽃을 피워 죽서루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죽서루는

조선시대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로,

 지방에 파견된 중앙관리들이 묵던 숙소의 부속건물로서 접대와 향연이 펼쳐지던 곳이다. 예정보다 오래 죽석루에 머물다

점심을 들고 다시 터미널로 이동하여

 추암 촛대바위로 향한다.

 

 죽서루에서 오십천 다리를 건너면 맞은편 산 허리에 우뚝 솟은 건물은 동굴신비관이다.

동굴 신비관은

동굴의 종류, 동굴 생성과정, 서식 동물, 생성 물질 등 동굴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3층의 아이멕스영화관이 인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