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릉에서 사진으로 본 덕혜옹주의 일대기
언제 : 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어디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과 귀인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명딸이다.
황녀로서 덕혜라는 호를 하사받기 전까지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고, 1962년 ‘이덕혜’(李德惠)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
일제 강점기 덕수궁에서 태어나 경성일출공립심상소학교 재학 중에 일본의 강제적인 요구에 따라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로 보내져
일본 황족들이 공부하는 학교인 여자 가쿠슈인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 옛 쓰시마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여 1932년 딸 소 마사에를 낳았다.
그러나 이즈음 조울증, 우울장애, 반복성 우울 장애와 더불어 정신장애인 조현병(정신분열증) 증세를 처음 보였으며,
결혼 이후 병세가 악화되었다. 1946년부터 마쓰자와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1956년 이혼하였다.
1962년 기자 김을한과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의 협조로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 내의 수강재에서 거주하시다가
1989년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 부속림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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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준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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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명당은 한때 덕혜옹주의 유치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고종이 60세에 얻은 덕혜옹주가 행여 준명당 난간에서 떨어질세라 돌 위 곳곳에 방어 말뚝을 박았던 흔적이 있다.
유현문(惟賢門)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에서 준명당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문으로,
'어진 사람이 다니는 문' 의미이며, 언제부턴가 이 문을 지나면 '머리가 좋아진다' 하여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곳이다.
고종이 60세에 얻은 덕혜옹주가 함녕전에서 유치원인 준명당으로 오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게 했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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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의 수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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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재
수강재는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태종이 상왕이 되어 머물기 위해 지었는데, 폐위된 단종이 잠시 생활하기도 했다.
헌종은 할머니 순원왕후를 위해 수강재를 중수했다.
또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머물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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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묘
9세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 덕혜옹주로 봉해졌고,
1925년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으로 데려갔다’고 적혀 있다. 또 ‘1962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다 1989년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돼 있다.
▽
솔직히
덕혜옹주에 대해 큰 관심을 둬야 할 이유는 없다.
단 한가지 지난 8월 11일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고
조선왕조의 무너짐 즉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점되는 과정에서 고종과 순종 그리고 그 일가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관심이 일고
고종과 그 일가가 묻힌 홍유릉을 여태 가 본 적이 없어 걸음을 하였다.
의친왕과 덕혜옹주의 묘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데, 마침 11월 20일까지 한시적 공개가 된다고 하여
무덤을 가던 중 그녀의 일대기 사진이 전시되어 담아 올렸다.
조선 왕조의 몰락과 마지막 임금 즉 황제라고 일컫는 고종과 순종의 릉을 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며
덕혜옹주의 묘역에 가는 길에 지난 영화를 기억하며 가을 날에 머물 수 있음이 행복이었다.
내가 잊고 있던 사이에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도 지났다.
들국화에도 서리가 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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