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207호
대한제국 황제가 묻힌 홍릉(洪陵)의 가을
언제 : 2016년 10월20일 목요일
어디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어느새 10월도 하순에 들었다.
풍요의 계절 가을이 이렇게 깊어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얼마전에 본 영화 "덕혜옹주" 가 생각이 나
경기도 금곡 홍유릉에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그의 후손들이 묻힌 곳이다.
가는길은 금곡까지 경춘전철이 있으나
용산역에서 용문행 전철을 타고 도농에 내려 버스로 환승하여 홍유릉 입구에서 내렸다.
입장료 1,000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홍릉 연지
고종황제가 홍릉을 새로 조성할 때 작은 연못을 연지로 크게 확장하여 공사한 것으로,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방형(方形) 연지가 아닌 원형(圓型)연지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홍릉(洪陵)
홍릉(洪陵)은 대한제국 초대황제이며
조선 제26대 고종 광무제(高宗 光武帝 :1852~1919 , 제위 : 1863~1907)와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 : 1851~1895)의
합장릉이다.
고종황제는 흥선대원군의 아들로,
서양 각국과 수교하며 개화 정책을 펼쳤고 1897년에는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나 을사늑양(1905년)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한 헤이그 밀사 파견 사건(1907년)으로 퇴위되어 덕수궁(경운궁)에 태왕(太王)으로 있다가
1919년에 세상을 떠났다.
고종황제의 장례일을 계기로 3.1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명성황후는 민치록(閔致祿)의 딸로 1866년에 왕비가 되었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는 외교 정책을 펴다가
1895년에 을미사변으로 참변을 당했다. 1897년에 청량리(현 홍릉수목원 자리)에 모셨다가, 1919년에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천장(遷葬)하여 합장하였다.
선대 왕릉들과는 다르게 황제릉으로 조성되어
정자각 대신 일자의 침전을 조성하고 홍살문과 침전 사이에 삼단으로 구성된 참도 좌우에는 문석인, 무석인을 배치했으며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등의 석물을 순서대로 배열하였다.
침전
조선 왕릉 정자각 대신 침전이 조성되어 있다.
문석인 : 금관조복을 입고 황제와 황후를 보좌하는 인물상
무석인 : 투구와 갑옷을 입고 황제와 황후를 호위하는 인물상
기린석 :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조각한 석물
코끼리석 : 코끼리를 조각한 석물
사자석 : 사자를 조각한 석물
해태석 : 뿔이 달린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조각한 석물
낙타석 : 낙타를 조각한 석물
석마 : 말을 조각한 석물
침전에서 바라본 석상과 홍살문
△
홍릉
능 아래에 출입금지 울타리가 있어 능을 자세히 볼 수 없어 멀리서 바라본다.
▽
▽
대한
고종태황제홍릉 - 명성태황후부좌
홍릉 재실(齋室)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등이 상주하던 곳이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모든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제물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과 그 외 부속 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 전면
재실 후면
수라간(水剌間)
수라간은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쓸 제사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등의 준비하는 곳이다.
제정(祭井)
산릉제례에 사용할 물을 긷는 우물이다.
구한말
외세의 침입과 새로운 문물 그리고 자주적 근대화의 실패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비극의 역사라고 말한다.
조선 제25대 강화도령 철종이 후손이 없자 철종의 6촌이 되는 왕족 지위를 갖게 된 이하응(흥선 대원군)은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정조의 동생 은신군의 양자가 되어)
후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헌종의 어머니 조대비 도움으로 차남 이명복(고종)을 익종의 양자(헌종과 형제관계)로 삼아
왕으로 즉위시키는데 이가 바로 고종이다.
*익종 - 헌종의 아버지
고종은 1919년 1월에 죽어 3월 홍릉에 초장봉릉되었고,
명성황후는 1895년 8월 학살당하여 같은 해 10월 청량리 홍릉에 장사했다가 1919년 1월 홍릉으로 이장했다.
구 홍릉(洪陵- 청량리)은 고종 32년(1895년)에 조성된 명성황후의 능으로,
1919년 고종의 인산일(3월 1일)에 황후의 재궁을 초장지 홍릉에서 지금의 홍릉에 합봉하였는데,
이날 3. 1 운동이 일어났다.
홍·유릉의 특징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받았다는 데 있다.
즉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으며,
양석과 호석 대신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으로 석수를 세웠으며,
또 문인석의 금관조복과 무인석의 성장이 강조되었다.
고종과 명성황후 아들 - 순종(1874~1926) - 후손 없음
홍유릉 밖
- 고종과 귀인장씨의 아들 -의친왕/이강(1877~1955) 의 묘
- 고종과 순헌황귀비/명성황후 시해 후 황귀비로 진봉 - 황태자/영친왕/이은(1897~1970)+이방자 -황세손/이구(1931~2005)의 묘
- 고종과 귀인양씨 - 덕혜옹주(1912~1982)의 묘
홍유릉 밖
영원(英園)에 영친왕과 영친왕비의 합장묘가 있는데 황릉의 형식을 버리고 전통적 조선왕릉으로,
희인원은 황세손 이구의 묘
그리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의친왕과 덕혜옹주의 묘가 조성되어
2016년 9월 1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임시 개방되는 덕혜옹주묘, 의친왕묘가 있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 남양주) 영친왕이 묻힌 영원(英園)과 의친왕의 묘 (0) | 2016.11.17 |
---|---|
(경기 남양주) 사적 제207호 -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의 유릉(裕陵) (0) | 2016.10.30 |
(경기 파주)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 (0) | 2016.10.23 |
(경기 양평) 가을이 오는 두물머리 (0) | 2016.10.07 |
(경기 시흥) 시흥갯골과 소래습지의 가을 (0) | 2016.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