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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북 여행

(전북 군산) 근대화의 도시 군산 시간여행 - 1

 

근대화의 도시 군산 시간여행 -1

 

 

 

 

언제 : 2016년 5월 12일 목요일

 

 

벚꽃 피는 4월에 계획했던 군산 여행,

아카시아꽃 피는 5월에 1박 2일 일정으로 불쑥 집을 나섰다.

 

오래전

아내와 선유도 여행을 하려고 군산에 들렀다가 풍랑으로 인해 발길을 돌렸던 군산이었고, 지인과 함께 변산반도를 여행하고

군산에서 장항으로 배를 타고 건너 기차를 타고 수덕사까지 여행했던 적이 있던 군산이지만,

언제나

군산은 나에게 낯선 곳이다.

 

 

 

인천에서 군산가는 길에 본 화성 습지

 

 

 

서천휴게소

 

 

금강 하구

 

  

군산에서 봐야 할 곳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외모가 다른 유럽이나 동남아 여행도 잘 다녔는데,

우습게도

물어보지도 않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처음 본 버스를 탔다가 시내방향으로 가지 않아 이마트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서부터 일정이 틀어졌다.

(이곳이 첫 번째 여행코스인 경암동 철길 마을이었는데)

 

"모르면 물어라"

여행에서 모르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그렇게 잘 물어보던 짓을 하지 않고

경암동 철로마을을 두고  "근대역사거리"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당연히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이 내가 사는 인천인데, 군산의 근대화 거리를 돌아본다.

 

 

 

옛군산세관 본관

1908년

군산항을 드나들던 물품에 대해 세금을 거두던 곳으로, 군산항을 개항한 조선은 1899년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했다.

1906년에는 인천세관 군산지소를 설립하고 1908년에 이 청사를 준공했다.

독일인이 설계한 이 건물은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을 수입하여 지었다. 바깥벽은 붉은 벽돌이지만 내부는 목조로 건축했으며,

슬레이트와 동판으로 지붕을 올리고 그 위에 세 개의 뾰쪽한 탑을 세웠다.

1908년부터 1993년까지 85년간 사용했던 건물로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 수입 벽돌로 건축한 단층 건물로

 한국은행 본점 및 서울역사와 양식이 비슷하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1945년 해방까지 주로 호남과 충청지역의 쌀, 곡식 등을

 일제가 수탈하던 창구로 이용됐는데 지금은 호남세관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군산시 내항 뜬다리(부잔교)의 역사

밀물 때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때 수면만큼 내려가는 수위에 따라 다리의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선박의 접안 시설물이다. 1899년 군산항 개항이후 3천토급 배 4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4기 다리로써 하루 1백 50량 화차를

이용하여 호남평야의 쌀들을 이 다리로 일본에 반출하였다.

※ 현재 3기만 남아있다.

 

 

 

 

 

군산 내항 어선들

 

 

 

고기잡는 어선들

 

 

 

금강하구둑

좌측은 충청남도 서천 - 우측은 전라북도 군산

 

 

 

세계 최초의 함포 전투 진포대첩(世界 最初의 艦砲 戰鬪, 鎭浦大捷)

 

1380년 고려 수군이 군산 앞바다에서 왜구를 상대로 크게 승리한 해전.

 

1380년(우왕 6) 8월 진포에 왜구들이 500척에 이르는 대선단을 거느리고 곡식을 노략질 하기 위해 군산 방면으로 침입해 왔으며,

군사의 규모는 대체로 10,000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구는 약탈한 곡식들을 함선에 적재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큰 밧줄로 배들을 서로 잡아매고, 일부 병력을 남겨둔 채

육지를 돌아다니며 곡식을 비롯한 재물을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왜구의 대함대가 침입했다는 급보를 받은 고려 정부는

심덕부, 나세, 최무선의 지휘 하에 화약 무기를 적재한 신형 함선 100척을 출동시켜 왜선을 소탕하도록 하였다.

 

고려 함선들은 진포에 이르러 밧줄로 서로 묶여있는 적함을 향해 일제히 화전과 화통, 화포를 사용해 집중 사격을 퍼부었다.

화공을 통해 고려 함대는 적선 500척을 모조리 파괴·소각시키고 왜구들에게 붙잡혀 있던 330명의 고려 백성을 구출하였다.

진포대첩은 1350년 왜구들이 고려에 본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한 이래 30년 만에 고려 수군이 거둔 최초의 승리이며,

또 대왜구 투쟁에서 고려가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이기도 하였다.

 

 

 

 

 

 

 

함명 : 위봉함

상륙함(LST) - 상륙작전 및 군수물자 수송

건조일자 : 1945년 1월 16일

톤수 : 4,080톤 - 전장 99.6m - 전폭 15.3m - 흘수 3.96m - 마스트높이 23.5m

수송능력 : 승무원 125명 - 작전병력 500여명 - 수륙양용전차 15대 - 트럭 15대 등

 

 

내부 및 침실

 


 

 

 

 

진포대첩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진포대첩은 세계 해전사에서 처음으로 화포를 사용한 전투였다.

지금까지 세계 최초로 화포를 사용하여 적선을 격침시킨 해전으로는 1571년 레판토 해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포대첩은 레판토 해전보다 191년 이른 것이다.

 

둘째, 진포대첩은 왜구의 침입을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진포대첩으로 왜구의 기세가 크게 꺾였던 것이다.

 

셋째, 진포대첩은 조선 왕조 개창에 일조하였다. 진포대첩으로 이성계의 황산 대첩이 가능하였다. 이성계는 황산 대첩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져 조선왕조 개창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진포대첩은 조선 왕조 개창에 일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진포대첩은 조선 수군 전술의 모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역시 진포대첩 전술을 사용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진포대첩의 전술은 200년 이후에 일어난 임진왜란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선진적 전술이었고,

또 조선 수군의 전술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록문화재 제374호 - 1922년 건립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대륙의 경제 수단을 목적으로 일제가 세운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건립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하였다. 정면에 돌출 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우고 양쪽에 각각 1개씩 반원형

아치를 두었으며, 외벽 중간 보머리를 상징하는 화강석을 끼워 장식하였다.

 

지붕은 우진각 형식으로 함석판 잇기로 마감하였으며 몸매를 매우 급하게 처리해 장중한 느낌이 난다.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에 나오기도 하는 등 군산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채만식(蔡萬植) :호- 백릉(白菱), 채옹(采翁)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난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임피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8년 상경하여

중아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 졸업하였다.

그 해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 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하였으나 1923년 중퇴하였다.

그 뒤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 개벽사 등의 기자로 전전하였다.

 

1924년 단편(세길로《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한 뒤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 단편소설과 희곡, 평론, 수필을 썼다. 특히, 1930년대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당시의 현실 반영과 비판에 집중되어 있다.

 

식민지 상황 아래에서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제 강점기의 작가 가운데 가장 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진 사실주의 작가의

 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Tv나 인터넷에서 군산 여행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서 한 곳인 이성당 빵집이다.

뚜벅뚜벅 걸어 여행하는 사람은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할 수 없이 약 1시간 줄을 선 끝에

빵을 사서 나올 수 있었다.

 

 

내일 사랑스러운 외손자가 온다기에 앙금 빵과 야채빵을 샀는데,

들고 다닐 수 없어 배낭에 담아 온종일 메고 다니는데 고생했으나 귀가하여 두 가지 빵 맛을 본 아내가

빵이 맛있다는 말에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

 

 

해망굴과 일본식 가옥 그리고 초원사진관은 따로 소개하고 곧바로 군산항쟁관으로 간다.

 

 

 

군산 항쟁관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종걸 주지스님이
10일 전북 군산항 개항(117년 전) 당시 모습이 담긴 엽서사진을 최초 공개했다.
이 사진은 동국사 앞쪽 오룡동 고개에서 현재의 월명동과 영화동 방향을 촬영한 것이다.
2016.05.10. (사진= 동국사 제공)

 

 

 

 

고우당(古友堂)

고우당은 '고우다'의 전라도 사투리 '고우당께'를 표현아름다운 이름을 가진곳으로 일제시대 건물을 활용하여

숙박과 편의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나라를 잃고 서러웠던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고자 만든 공간이다

 

 

 

1박 2일 계획은 나름 잘 짜였다.

 

첫날은 군산 시내 여행으로 - 경암동 철길 마을(택시) -(택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 진포 해양공원 - 이성당 - 초원사진관 

- 해망굴 - 신흥동 일본식가옥 - 고우당 - 군산항쟁관 - 동국사까지 도보로 둘러보고

야간엔 은파호수공원 야경

 

둘째날은 선유도 관광으로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