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호 소양강 처녀像의 만추(晩秋)
언제 : 2015년 11월 19일 목요일
날 잔뜩 흐린 날,
맛난 것 먹자며 모처럼 지인과 늦가을 춘천 여행길에 나섰다.
용산역에서 ITX 좌석에 앉자마자
지인이 배낭에서 바리바리 꺼내는 먹거리와 소주 그리고 커피잔 크기의 종이컵을 꺼내
아침 술은 마시지도 않는데,
기분 맞추며 맛난 안주류에 술 마시다가 춘천 도착할 즈음 정신이 마비되었다.
원래는 남춘천역에 내려 소양강댐으로 이동하여 청평사를 둘러보고 춘천 명동에서 닭갈비에 소주를 마시고
소양강 처녀상을 볼 순서였는데,
춘천역에 내려 곧바로 소양강 처녀상으로 향했다.
소양강 처녀 像으로 가는 길에 춘천대첩기념 평화공원이 있다.
건립취지문
50년 전 한국전쟁 개전 초기 춘천지구에서 국군 6사단을 중심으로 애국시민, 학생, 경찰이 하나되어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하는 북괴군 6,600여명을 사살하고 전차 18대를 완파하는 등 파죽지세의 적 부대를 3일간 지연,
저지시킴으로서 수원방면으로 진출하여 국군 주력을 포위하려던 북괴군의 남침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에 따라 한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UN군의 증원 시간 확보와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가능케 하여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하였기에 '춘천대첩'으로 명명하고 이를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이 구국의 전승을 기념하여 1975년 9월 28일 춘천시 소양로1가 65-10대지 위에 '자유 수호의 탑'을 건립하였으나
소양2교 확장공사가 시행됨에 따라 임시 철거하고 6.25한국전쟁과 「춘천대첩」50주년을 맞이하여
이 전승 기념 조형물을 세우고 「춘천대첩 기념 평화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무공탑
6.25한국전쟁 및 월남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무공수훈자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시민들에게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며 민족정기 선양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2003년 10월 2일
무공수훈자회 강원도지부 회원들과 춘천시민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춘천대첩의 승전 격전지였던
춘천시 소양강변 평화공원에 이 탑을 세웠다.
△
6.25참전 학도병 기념탑
▽
학도병 像과 6.25 참전국가 국기게양대
노래비에 도착하니 소양강 처녀가 흐린 의암호반을 울려 퍼진다.
날 흐려 사람은 없고
술 취한김에 소양강 처녀를 따라 열창하고 나니 가슴이 탁 트인다.
12m 높이의 소양강 처녀상
소양강 처녀에 대한 사연
가수 김태희가 불러 크게 히트를 한 소양강 처녀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이 노래의 탄생 사연이 있단다.
이 노래의 모델은 춘천출신 가수 지망생 윤기순(당시 18세)양이라는데, 소양강 처녀 노래말을 탄생시킨
작사가 반야월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지금으로부터 44년을 거슬러 올라간 1968년,
을지로 명보극장 앞 네거리에 '한국가요반세기가요작가동지회'라는 사무실이 있었다.
(지금은 강서구 우장산동으로 옮김)
이 사무실에는 윤기순(尹基順)이라는 18세 소녀가 여사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여기서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장차 가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쳇말로 그녀는 가수의 화려한 꿈을 안고 서울에 온 강원도 촌구석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가사를 돕는데 책임이 막중한 소녀였다.
이런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인정파 젊은 가요작가 김종한 선생이 개인 레슨을 해주며 한을 풀어주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었다.
평소에 레슨비도 제대로 못내는 윤기순은
죄송스러워 어찌지 못하다가 한가지 묘안을 내어 스승인 김종한 선생을 비롯해서, 회장인 반야월 선생을 비롯해
여러분들을 자기의 고향인 소양강 상류에 초청했고,
소양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 가는 어부였던 윤기순 아버지도 자기 딸을 지도해 주는
서울 손님 맞을 채비를 했다.
윤기순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인다, 토종닭을 잡는 등 부산을 떨고 있을 때
여가를 틈 타, 윤기순은 반야월 선생에게 "회장님. 저기 조그마한 갈대 숲 섬이 보이시지요.
거기 가면 아주 경치도 좋고 놀기도 좋아요. 우리 저 섬으로 놀러가요."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노는데에 일가견을 가진 그들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일행은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갔다.
그야말로 시상(詩想)이 절로 떠오르는 주위 경치에 일행은 시상을 가다듬었다.
바로 이때였다.
청천벽력으로 시커먼 비구름이 몰려오면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왔다.
소나기 비바람이 몰아치며 잔잔하던 강 물결이 산천초목을 삼킬 듯이 일렁거리고 갈대 숲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소나기에 흠뻑 젖은 윤기순이 "아이고 무서워!"하면서 반야월 선생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바람은 10여분간을 몰아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을 거두고 다시 해맑은 여름 햇살이 내려 쪼이는
변화무쌍의 심술을 부렸다.
일행은 다시 뭍으로 나와 젖은 옷을 말렸고,
반야월 선생은 이때 느낀 감정을 메모해 두었다가 다듬고 다듬어 <소양강 처녀>라는 가사를 만들어 이듬해(1969년) 봄,
이호 선생이 작곡, 가수 김태희가 부르게 되었으며 <소양강 처녀>는 대 히트를 했다.
소양강 처녀의 곡은 매우 쉽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어느 한 군데라도 어렵게 넘어가는 부분이 없다.
또 오래도록 사랑받는 곡의 가사가 그렇듯이 누가 들어도 웬지 자신의 얘기처럼 느껴진다.
소양강 처녀가 우리들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움의 연정을 살살 흔들어 놓기 때문이 아닐까.
95년 춘천시에서는 작사가 반야월 선생을 초청하여 “소양강 처녀”작사에 따른 사무실 직원 윤기순의 일화를 들었고,
여기서 노래비와 배경에 소양강 소녀 동상을 만들기로 결정이 되어 “소양강 소녀상”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사연이 있는 노래가사는 그 사연을 떠올리고 생각하며 듣거나 부르면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소양강 처녀>에 얽힌 윤기순 처녀의 사연은
KBS-TV <이것이 인생이다> 시간을 통하여 방송(2000년)되기도 했다한다, <펌>
햇빛이 났다면 좋았을 터인데, 하늘이 잔뜩 흐려 사진이 밝지 못하다.
춘천2교 기념비
소양강 처녀상을 둘러본 후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까지 걸어가며 춘천의 구석들을 보았는데, 도청으로 가던 중 산비탈에 있는 판자촌은 유독
마음에 걸렸다.
취기가 가시지 않았는데, 용케도 닭갈비 골목을 찾아
내 나이로 보이던 인심 좋은 사장님(실제론 50중 후반)과 여사장님 그리고 숯불 담당하시던 인상적인 털보 아자씨 덕분에
숯 향 베인 맛 난 숯불 닭갈비에 거나하게 춘천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마신 술과 숯불 닭갈비에 마신 소주로 ITX에서 잠만 자고 용산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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