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삼각산 화계사(華溪寺)의 만추(晩秋)
언제 : 2015년 11월 18일 수요일
어디 : 서울 강북구 화계사길 117(수유 1동)
학창시절
흑석동에서 화계사까지 다니던 버스가 있었는데, 그땐 불교에 관심이 없어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이제 나이 들어 육십 중반에 와서 문득 화계사가 궁금했다.
어렸을 적부터 봤던 버스 종점이라는 화계사이며 서울에 있고, 시내버스도 다니는데 지금껏 잊고 있다가
늦가을 비 내리는 날 걸음을 했다.
은행잎이 홀딱 비 젖어 바싹 땅에 몸을 낮춘다.
삼각산 화계사 일주문
이정표
북한산을 둘러보려해도 비와 안개로 보이지 않는다.
부도전
비석들과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전에는 고봉선사, 덕산, 적음선사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는데
문이 닫혀있어 길에서 본다.
화계사 일주문 지나 절로 올라가는 길에
마른 잎이 밟혀도 바스락 소리에 마음 아린데, 비 젖어 일그러진 낙엽을 밟으려니 마음이 짠하다.
저만치 고목들 사이로 비 내리는 화계사가 드러난다.
화계사(華溪寺)
백운봉(白雲峰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봉(萬鏡峰 787.0m)으로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삼각산(三角山)의
동남쪽으로 칼바위 능선을 지나 흘러내린 끝자락에 화계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굳세던 산의 기세가 이곳에 이르러서 계곡과 울창한 숲을 이루며 푸근해진다.
서울 시내에서 아주 가깝고 주택가와 인접해 있으면서도 산수가 수려하고 산기슭의 울창한 숲에 감싸여 있어
시내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화계사는 불교 조계종 직할교구로
화계사는 고려 광종(949~9750 때 법인대사 탄문스님이 인근의 부허동에 창건한 보덕암을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선사가 서평군 이공과 협의하여 남쪽 화계동으로 법당과 요사채를 옮겨 짓고
화계사(華溪寺)라고 이름을 고치며 창건 되었다.
범종각
삼각산 화계사가 씌여진 범종 옆 천장에 매달린 동종(보물 제11-5호)
화계사 전경
▽
화계사와 흥선대원군
화계사는 흥선대원군의 원찰이라 불릴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특히 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여름날 남루한 차림의 이하응이 화계사를 찾았다. 너무 목이 말랐는데, 때마침 느티나무 아래 동자승이 기다렸다는 듯
물사발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신기해서 연유를 물으니 만인(萬印)이라는 스님이 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하응은 만인스님을 만났는데,
이하응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는 자손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충청도 덕산의 가야사(伽倻寺) 금탑 자리가 제왕지지(帝王之地)이니 남연군 묘소를 그곳으로 이장하면제왕이 될 귀한
왕손을 얻을 것' 이라고 한 것이다. 후에 이하응은 가야사를 찾아가 돈을 써서 금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남연군의 묘를 썼다.
본래 남연군의 묘는 경기도 연천에 있었으니 약 500리나 되는 곳으로 옮긴 것이다.
묘를 이장한 지 7년 후인 1852년에 둘째 아들 재황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조선의 제 26대 왕인 고종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대원군은 절 중창을 위해 사주를 하였으며 전각 곳곳에 자신의 글씨를 써놓기도 하였다.
염화실
조실스님이 거처하는 곳
종무소
대웅전
화계사 중심 법당으로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판은 근세의 명필 몽인 장학교가 쓴 글이다.
대웅전 내부
비는 내리고 젖은 우산 등 신발 벗기가 어려워 닫힌 창밖에서 담아 흐릿하다.
삼성각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오백 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경전을 결집한 오백의 성자를 기리기 위한 전각이다.
흔히 나한(羅漢)을 모신 건물은 '오백나한전' 또는 '나한전', '응진전' 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곳만은 특이하게 전불이 덧붙여져 있다.
천불(千佛)이 모셔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천불전과 나한전을 겸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내부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앞 마당에는 바라는 소원을 적어 묶는 곳이 있다.
대적광전(大寂廣殿)
1991년 조성된 정면 7칸, 측면 4칸, 4층의 건물로 화계사에서 가장 크고 복합건물이다.
1층은 식당, 2층은 강의실(제일선원), 3층은 법당, 4층은 템플스테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대적광전의 연등
대적광전 중앙에는 비로나자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 좌우측으로 삼신불이 모셔져 있으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셨다.
△
보화루
대웅전 앞마당에 큰건물로 이 보화루에서 궁녀들이 머무르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1933년 한글학회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국문학자 9인이 보화루에 기거하면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
유서 깊은 곳이다.
▽
삼각산(북한산)에는 크고 작은 절이 너무 많아 어떤 골짜기에는 못해도 한골짜기에 너댓개의 절이
있기도 한 것은 삼각산이 영험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어 북한산 만추는 못 보았지만, 비 내리는 화계사를 보았다.
화계사도 어떤 인연으로 내가 걸음 하였을 것이다.
어렸을 적 십 대부터 궁금했던 화계사였는데, 어느새 나이 육십 중반에 서서 늦게나마 걸음 할 수 있음이 큰 행복이며 기쁨이다.
비 젖은 낙엽을 밟는다는 것이 마음 짠하다면
북한산 만추를 보지 못한다 해도 부족할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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